“I”라고 핑계대 보지만 게을러 보인다면 그것도 맞겠지요
뒹굴뒹굴, 눈을 떴다 감았다, 다시 뒹굴. 방 안 구석구석 환하게 밝히는 햇살에 양심이 찔려 올 때쯤 슬그머니 기지개를 켠다. 벌떡, 일어나는 일은 잘 없다. 핸드폰으로 오늘의 사건사고 소식을 봤다가, SNS를 휙휙 넘겨 보고, 게임도 잠깐 했다가, 전날 옆에 던져둔 책을 몇 장 넘겨 봤다가. 그렇게 또 한참이다. 세월아 네월아 침대 위에서 미적대며 긴 예열을 거친 뒤에야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어쩔 때는 일어났다 다시 눕는다. 그리고는 또 뒹굴.
약속이 없는 날은 시간 맞춰 강제 기상할 필요가 없는 날. 게으름의 극치를 달린다. 힘드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예전에는 직장 핑계라도 댔지. 아니, 과거에는 직장에서의 풀리지 않는 피로가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정말 일어나기 힘이 들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는데도 크게 달라지진 않더라. 다만 물에 젖은 솜뭉치 같던 몸이 이제는 좀 깃털같이 사뿐하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스스로 한탄한 적도 많다. 소위 청춘일 때에는 좀 더 빠릿빠릿해지고자 노력도 해 봤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건 더 큰 게으름. 잠은 죽어서 자 보려다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그 뒤로는 인정했다. ‘아, 지금 이대로가 나구나. 부지런한 친구들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겠구나.’
최근 몇 년 새 MBTI가 유행하고부터는 몇 가지 이득을 봤다. 하나는 나의 성향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난 단순히 게을러서라기보다는 타고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었다. 천부적으로 눕는 삶을 살 운명이었달까. 마음속 묵은 체증을 MBTI가 날려 버리고 납득시켜 주었다. 무적 방패의 말도 얻었다. “I여서 그래.” 물론 반은 핑계다. I라고 모두 나 같진 않을 테니, 혹은 나만큼은 아닐 테니. ‘집에서 누워만 있다’는 말은 과거 논쟁거리였다. 열심히 항변해 보아도 눈빛 공격과 함께 게으름의 표본으로 핀잔받기도 했다. 이제는 당당히 “I”임을 밝히는 순간, 절대 이해 못 하던 “E”들도 한 수 접어는 준다.
그렇게 3n년을 살아왔음에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남들은 하루 24시간 계획표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데 나만 헐렁한 기분이다. 게을러서라면 그것도 맞을 것이요,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맞을 것이다. 열심히 놀지도, 자기 개발하지도, 자기 계발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쉬기만 한 것 같다. 문득문득 자기반성의 시간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다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역시, 나태 지옥에 가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Love Myself 하자면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다. 어른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없는 에너지 쥐어 짜내며 한 몸 건사했으니 말이다. 극악일 때는 새벽 6시에 퇴근하여 씻고 옷만 갈아입고 9시에 다시 출근했던 나 자신. 일주일 내내 야근을 감행한 나 자신. 강제로 주말에 불려 나온 나 자신... 갑자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치고 절은 나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게으르긴 무슨! 아니, 다시 겸손해진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저마다 고난의 시기 한 번 겪지 않는 이 없을 테니.
회상하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일상은 일과 일이 아닌 삶으로 딱 양분되어 있었다. 적은 에너지로 커버하려니 아슬아슬 시소 타기가 되면서 에너지 밸런스가 파괴되었고. 그래서 한쪽은 에너지 소모에, 한쪽은 에너지 충전에 올인했나 보다. 성공하려면 리밸런싱이 중요하다던데, 앞으로의 삶은 다시 한 번 찬찬히 고민해 봐야겠다. 작고 푹신한 나의 네모난 세상에 누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