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기 위해 필라테스

회사를 나오니 몸이 다 펴졌네

by 평정

남 부끄럽지만, 나는 6년째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다. 어디서 당당히 말하기 부끄러운 이유는 운동한 연수에 비해 숙련도는 막 입문했을 때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첫 번째 이유는 타고난 운동치인 것, 두 번째 이유는 평생 운동과 담쌓은 저질 신체, 세 번째 이유는 (지금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직장인인 것이었다. 그중 마지막 이유가 필라테스를 시작한 계기이자 여전히 ‘초급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가장 큰 이유였다.


어느 날부터 밤에 자려고 누우면 다리가 저렸다. 심각하진 않아 한두 번 툭툭 털면 증상이 금세 가시곤 했는데 거의 매일 반복되다시피 하니 이상했다. 침대가 문제인가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아니, 디스크?!? 대한민국 사무직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 디스크가 원인일 수 있단다. 벌써부터 이럴 순 없었다!


부랴부랴 또 검색에 들어갔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PT... 필라테스...’ 순백에 가까운 몸이라 어떤 운동을 하든 처음에는 선생님이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마음은 필라테스로 기우는데 비용이 부담이었다. 몇 개월 주저하는 동안에도 몸은 꾸준히 신호를 보냈다. ‘더 이상은 안돼.’ 때마침 동네에 소규모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신규 오픈하여 눈 질끈 감고 찾았다.


좋게 말해도 선생님의 진단은 처참했다. 근력 부족, 코어 부족, 유연성 부족, 밸런스 부족, 골반 틀어짐, 어깨 말림, 짧은 햄스트링... 문제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통장 잔고와 맞바꾼 생존형 필라테스인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필라테스를 한 뒤로는 다리 저림이 사라졌다. 바빠져서 한동안 쉬면 어김없이 다리에 반응이 오니 중단할 수도 없었다. ‘살기 위해 운동한다’는 백 번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반올림하면 강산도 변할 세월인데, 왜 아직도 초급이냐. 물론 처음보다는 여러 모로 나아지긴 했다. 단적으로 체어 위에서 미친 듯이 달달 거리던 다리가 이젠 꽤 버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운동한 보람도 잠시였다. 다음날 출근해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그 효과는 싹 사라졌다.


쉽게 말해 내 몸은 종이다. 여기저기 접히고 구겨진 부분을 필라테스로 다림질하듯 쫙쫙 펴 놓았는데, 회사에 있는 동안 꾸깃꾸깃 도루묵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요.” 어쩔 수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필라테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동아줄 삼아, 생명줄 삼아.


퇴사한 뒤로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뻣뻣하기만 했던 몸이 좀 따라준달까? 똑같은 동작을 해도 더 유연하게 수행됐다. 말려 들어간 어깨가 항상 문제였는데 많이 펴졌다고 칭찬도 받았다. 안 좋은 자세로 인해 금방 여기저기 틀어지기 일쑤였다면, 요즘은 운동 후에도 균형 잡힌 몸 상태가 제법 유지되었다. 내가 봐도 예전과 비교하면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그럼에도 필라테스를 놓을 순 없었다. 일일 활동량이 많이 떨어진 지금, 다른 의미로 살기 위해.


그냥 막 때려 넣던 커피처럼 꾸역꾸역 하던 필라테스였는데, 이제야 운동 그 자체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밀린 숙제 같기만 했는데 몇 없는 고정 루틴으로 자리 잡았달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베네핏이었다. ‘퇴사가 만병통치약’이라더니, 천 번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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