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6개월 차 회고록

긍정 백수의 시간은 5G보다 빠르네

by 평정

어느덧 10월이다. 지난 4월 말 퇴사했으니 딱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벌써 세 계절을 보냈다니, 시간이 손틈 사이로 후루룩 빠져나간 것 같다. 하루하루 시간이 남아돌았던 것 같은데, 눈 깜짝할 새에 반년이 순삭된 기분이다.


그동안 무얼 했더라. 초반에는 부지런을 좀 떨었다. 이럴 때 아니면 못 간다며 큰맘 먹고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고, 고향집에 한 달 살이하며 밀린 딸 노릇도 했다. 평일 한낮에 여유롭게 약속 잡아 놀기도 하고, 쌓아만 뒀던 책들을 한 권씩 도장 깨기 했다. 자전거도 배우고, 말로만 듣던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해 봤네. 그리고는 빈둥빈둥 잠자고, 먹고, 하릴없이 늘어졌다, 참.


퇴사할 때 세운 목표가 하나 있었다.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안 하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잃어버린 여유와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서. 회사 밖에서 마주할 현실은 저 멀리멀리로 날려 보냈다. 직장 다닐 땐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못했던 수많은 목표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의식하지도,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쉽게 목표 달성이다. 백수가 체질인 거겠지. 속 시끄러운 현실 상황을 애써 외면한 것도 맞을 테다. 혼자만의 무릉도원에서 눈 감고, 귀 닫고 그렇게 고요하게 지냈다. 스스로 완충될 때까지를 기다리며.


퇴사 후 3개월 안에 이직해야 한다, 6개월은 넘기면 안 된다 등 누가 만든 건지 모를 법칙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 틀에 갇혀 아등바등 조급해했더랬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미래를 떠올릴 때 한숨이 안 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대로 커리어는 멈춰 버리는 걸까, 더 이상의 직장 생활은 없는 걸까? 불현듯 잠 못 드는 밤도 있었다. 이따금씩 과거로 돌아가 ‘만약에’라는 상상도 해본다. 이내 떨쳐 버리려고 노력하지만.


또 다른 다짐으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이젠 앞을 향하는 선택지밖에 없다. 후회와 미련 따위는 스스로를 갉아먹을 뿐이다. 겨우 자가 치유에 성공한 나를 다시 흠집낼 순 없지 않은가. 인생이 이렇게 긴데 어떻게든, 무엇이든 또 시작하겠지.


‘무계획이 계획’이란 말이 있다. 현실은 어차피 곧 마주하게 될 테다. 그러니 스트레스받지 말자. 어두운 생각에 잠식되지 말자.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자. 멈춘 시계가 다시 흐를 때, 세상의 기운이 모여 탁 하고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스스로 주문을 건다. 뜻하는 바, 다 이루어질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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