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느냐 마느냐, 기로에 선 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어김없이 눈을 뜨고, 씻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준비물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침 운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내 모습에 뿌듯했다. 이것이 ‘갓생’의 삶인가! 귀차니즘을 이겨낸 스스로를 셀프 칭찬하며 긍정과 활력의 기운을 풀 충전했다.
‘무조건 발을 떼고 자전거를 타리라!’ 마음가짐이 다른 날보다 더 비장했다. 오늘이 스스로 정한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3주 차로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음 주부터는 주행 연습이라는 데 뒤처지면 민폐일까 괜히 걱정도 되었다. 그렇다고 실패한다고 해서 큰일 나진 않을 것이다. 그냥 영원히 자전거를 못 탈 뿐이지, 내가! 이제 물러설 곳은 없었다.
사실 어젯밤 자전거 교실을 검색하다, 한 후기가 보았다.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는데, 3일째 되는 날 자신 빼고 모두 탈 수 있게 되자 4일째부터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극소수였기에, 한 사람의 성공이 부각될수록 자신의 실패가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되려나?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호기롭게 문을 나섰다.
[Day 4] 제자리에서 출발하기
오늘도 어제와 같이 경사로에서 시작했다. 다만 개인의 진도에 따라 반이 전날보다 더 구분되었다. 계속해서 경사에서 연습하는 무리와 트랙까지 연결해 한 바퀴 돌고 오는 무리. 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강사님께서 허락하는 사람은 곧장 트랙으로 내달렸다. 한 명, 두 명, 세 명, 우루루루. 트랙으로 보내지는 사람이 훨씬 많아져도 나는 나가지 못했다. 페달을 돌리긴커녕 여전히 걸음마하며 아슬아슬 두 발 떼기에 머물러 있었다. 더디고도 더딘 느림보였다. 타고난 운동 신경은 나이와 상관없다지만,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르신들도 달리는 모습을 보니 시무룩했다. 결국은 안 되는 걸까?
잠깐의 휴식 후에는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모두 다 같이 트랙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걸음마 없이 제자리에서 바로 출발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Step 1) 왼발은 땅에, 오른발은 페달에 둔다. Step 2) 오른쪽 페달을 힘껏 밟는다. Step 3) 동시에 왼발을 잽싸게 올려 빠르게 밟는다. 다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번갈아 밟다 보면 자전거가 달려 나간다. 끝. 강사님의 설명과 시범은 늘 간단했다. 자신은 없었다. 이전 진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온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와 함께, 저 밑 단전에서부터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아자!
역시나 초반엔 실패했다. 당연하단 생각에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무념무상으로 다시 출발선에 섰다. 그런데 얼라리? 세 번, 네 번 연습이 거듭되자 출발을 되었다! 내가 페달을 돌렸다! 비록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고 갈지자를 그리며 불안했지만, 내가 탄 자전거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뭐지? 왜 되는 거지? 타는 중에도 의아함과 신기함을 감출 수 없었다. 준비 동작 없이 출발하는 방법이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른 흐름에 얼떨떨했다.
따지고 보면 오늘도 열등생이긴 했다. 남들은 원형 트랙을 연달아 돌 때까지도 잘 타지 못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직진만 하며 출발과 페달 돌리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연거푸 출발에 실패해도, 휘청거려도 괜찮았다. 다시 천천히 자세를 잡고 출발하면 됐다. 끝내 오지 않을 것 같던 시작이 시작된 순간, 반은 온 것이다. 마침 자전거 수업도 딱 절반이 남았다.
오. 운. 완. 드디어 자전거를 탔다는 소식을 동네방네 자랑했다. 한껏 상기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남들 눈엔 별거 아니겠지만, 나에겐 평생 꿈꾸지 않던 일에 도전해 해낸 것이다. 만사 시큰둥해하며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나를 부채질하여, 이런 기쁨을 알게 해 주신 고모에게 무척 감사했다. ‘일단 해보자’는 말의 위력을 느꼈다. 자전거를 마스터할 생각에 기대되었다. 빨리 다음 주가 돌아오길 바랐다.
지난날을 복기해 보니, 그동안 발을 못 뗀 건 힘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걸음마 출발은 내 힘으로 자전거를 끌면서 속도를 내는 건데,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힘이 없으니 속도가 안 붙고, 속도가 없으니 발을 떼는 즉시 휘청거리고, 그러니 발이 땅에 붙어 있을 수밖에. 덧붙여 하나 고백하자면, 서 있을 때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걸 무서워 싫어한다. 그래서 번지 점프는 해도 제자리 점프는 잘 못하는데, 이것도 영향이 있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