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리의 테이블 Mar 11. 2023

주어진 것에 대하여

일상의 소소한 깨달음

주어진 것들

나는 시골에서 살고 있습니다. 태어나기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서 원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했습니다. 결혼한 이후에는 성남, 분당, 수지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은 여기 서산시 대산읍 영탑리라고 하는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시골 중에 시골, 꿈의학교의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서산에 내려온 지 10년이 넘도록 나 자신을 서산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나는 경기도 사람, 분당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이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학교에서 제공한 관사에서 살다가 가족이 살기에 너무 좁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곳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내가 서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마음에는 "나는 수도권 사람이지, 시골 사람이 아니다"라는 우스운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진작 서산 사람 이어야 했습니다. 아니 13년 전 학교로 내려오면서 저는 이미 서산 사람이었습니다.

주소도 이전했고, 서산시에 세금도 내고 있었으며, 어딘가로 갔다가 서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도 이곳에 있었고, 집도 이곳에 있었습니다.


신께서는 이미 나의 삶에 서산이라는 공간을 주셨지만, 여전히 나는 과거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는 것

우리 아이 중 셋째, 넷째는 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정확히는 분당과 수원에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자마자 서산으로 왔기 때문에 이곳이 우리 아이들의 고향입니다.

위에 두 아이는 홈스쿨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에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래 두 아이는 지역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여기 사람입니다.


하루는 우리 아이들이 '서산' 사람이라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서산' 사람으로서 이곳을 사랑해야 하나?"라는 이상한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는데, 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왜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하지? 왜 내 가족을 사랑해야 하지?" 등의 비슷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에는 국가를 사랑하느니, 지역을 사랑하느니 하는 것들을 Propaganda (선전, 선동)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세뇌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국가라는 실체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조작된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치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북한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일정정도 이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프로파간다가 가능한 것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토대가 인간의 정신 또는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조작해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사랑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조작이 가능한 이유는 이유는 인간의 내면에 '사랑함'이라는 토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함'이라는 내면적 토대가 없는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국가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사랑하는 좋은 마음을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마음 자체는 인간 내면의 본성적인 것이며, 신이 주신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정리가 되자, '주어진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첫걸음은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는 것

저는 좋은 인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이란 내가 만나는 첫 번째 대상이며, 그 대상을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의 사람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사랑하는 존재이기에 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인물 중 '닉부이치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로 태어났습니다. 몸통에 있는 지체는 작은 다리 하나뿐입니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당연한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의 얼굴에서 깊은 평안과 행복을 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절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신의 선함을 믿었고, 신이 자신에게 허락한 삶에는 이유가 있음을 받아들였으며, 그렇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닉부치치와 가족

이화여대 이지선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23살 나이에 온몸과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그녀 역시 기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보통이라면 화상을 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을 피하고, 매일을 한탄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그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사랑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까지도 말이죠.

이지선 교수의 사고 전과 후

나에게 주어진 것들

저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는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았습니다. 그 덕분에 거친 성격을 가지고 계셨고, 가장으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무학 자셨습니다.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단돈 500만 원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무일푼으로 대출을 얻어 살림집을 마련하고, 직장을 다니며 빡빡하게 살았습니다.

30대 초반부터 탈모가 시작되어 40대처럼 보였고, 키도 작고, 뚱뚱했습니다.

한때 이런 삶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수많은 행복과 선물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으며, 동생들이 있었고, 고향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있었고, 보살펴 주시는 전도사님이 계셨고,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녔고, 예수를 믿었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했고, 자녀를 주셨습니다.

머리는 더 빠졌지만, 수염을 길러서 예술가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꿈의학교에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내 삶에는 고통이 있지만, 저는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기대합니다.

나는 서산 사람입니다. 내가 서산에 살고 있기에 서산을 사랑합니다.

서산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며, 삶이 이기에 사랑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 그것이 나이고,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길이며, 사랑의 존재로 행복을 누리는 방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