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moon Osmanthus_2

만남

"어서 오세요. “


어디선가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수조에 넋을 놓고 있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잔뜩 움츠린 몸이 마치 겁에 질린 작은 동물 같았다. 기다란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서 있었다. 앞머리 자를 타이밍을 놓쳐버린 모양이었다. 커튼처럼 내려와 양 볼을 다 가린 그것 사이로 동그란 것이 2개 반짝이며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엄마야!”


다리에 힘이 쪽 풀렸다. 불썽사납게 주저 않는 와중에 바지에 지도를 그리지 않도록 가랑이에 힘을 꽉 주었다. 귀신인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칠흑 같은 눈동자가 갑자기 반달 속으로 쏙 들어갔다. 잠깐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여전히 거기 서서 머리를 쓸어 올리는 것을 보니 사람인 듯 싶었다. 잠깐 드러난 얼굴에 이번엔 홀리듯 입이 벌어졌다. 꿈같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튀어나온 손가락이 하얗고 참 길었다.


“죄송해요. 냥이들 밥을 주는데 아가들이 매달리는 통에... 좀 그렇죠?”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이 손목에 달랑대던 고무줄로 머리를 묶었다. 초승달처럼 가느다래진 그녀의 눈이 드러났다.


‘귀엽다.’


“어디 다치신 거 아니죠?”


저쪽으로 달아난 삼선 슬리퍼를 들고 와 다리 맡에 주저앉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때까지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눈앞을 하늘거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넋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소리 없는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는 찰랑대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 여전히 초승달 같은 눈매를 한 그녀가 슬리퍼를 발에 끼워 넣어 주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어 토끼처럼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쪽이 팔렸지만 어차피 팔린 쪽. 분위기를 바꾸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말을 하자.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제가 요즘 좀 잠을 못 자서 아니 밥을 못 먹었는데... 아.. 제가 뭐라고 하는 거죠? “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구멍이 있으면 쏙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잠시 눈이 마주친 우리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게 웬 실성한 짓인지.


"아, 그리고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녀의 목에는 거울 같은 것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언뜻언뜻 아까까지 내 눈을 빼앗은 피라루크의 붉은빛을 띤 비늘이 비췄다. 좀 전까지 보고 있던 이 가게 명물이다.


이곳은 아파트 상가 반층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수족관이다. 아니 애완동물가게인가? 이름이 적힌 간판 하나 없어 대충 큰 물고기 수족관이라 불렸다. 입구에 눈을 끄는 커다란 물고기가 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피라루크였다. 화가 나서 꾹 다문 입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오리 같은 입을 하고는 둥근 원통모양의 길쭉한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것의 모습은 압관이었다. 다 큰 어른인 내 몸이 우습게 보일만큼 커다란 몸통을 한 녀석이 입이라도 벌리며 다가올 때는 꼭 잡아먹힐 것만 같이 심장이 다 오그라들었다.


방금 전 나는 그 커다란 녀석에게 거의 잡아먹힐 뻔했다. 녀석은 나에게 눈을 맞춘 채 입을 크게 벌리고 똑바로 다가왔다. 아니. 요즘 야근에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생활을 계속했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가게가 참 크네요. 동물들이 참 많아요. 여기서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겠어요. “


"저희 부모님이 동물들을 좋아하시거든요. 자꾸 들이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통일성도 좀 없고... 손이 하도 많이 가서 가끔씩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가게는 저희 부모님이 하시는 거고요. “



그날 이후 나는 별 일이 없어도 거의 매일 그 가게에 찾아갔다. 집에 '애완'이라는 글자가 붙은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여전히 유모차에 아기처럼 소중히 넣어 밀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귀엽다고 털이 복실대는 것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때마다 나는 ‘귀엽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입은 동물들을 향해 있었지만 내 눈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과 눈을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사다주며 길고 하얀 손에 내 손을 포개었다. 가끔은 일이 없는 그녀와 영화관에 가서 의자에 몸을 찰싹 붙이고 앉아 뜨거운 팝콘과 부드러운 입술을 나누며 영화를 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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