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닳도록 엄마 엄마 소리를 듣는 시기에 홀로 외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나가려면 주먹을 불끈 쥐고 '나가자!' 하고 외칠 정도의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외출을 마음먹으면서부터 머릿속에 줄줄 떠오르는 잡다한 이유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기관에 있는 동안 누워서 잠을 자고 싶기도 하고, 밀린 집안일을 방해받지 않고 바람처럼 해 치우고 싶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보고 싶기도 하고, 더운 여름 땡볕에 땀을 줄줄 흘리고 싶지 않기도 하는 등의 이유 말이다.
나는 오늘 수많은 나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뿌리치고 외출을 했다. 물론 오래전부터 잡아놨던 약속을 펑크낼 수 없다는 책임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버스와 전철을 타고 먼 길을 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버스 시간에 맞춰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다리가 절로 움직였다.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 대는데도 쉬지 않고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등을 위한 우선석을 노리지 않아도 비어있는 한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전철역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전철을 타고 가다가 역에서 출발할 때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다.
* 일본의 역에는 발차멜로디(전철이 문을 닫고 출발하기 직전에 흘러나오는 음악)가 나오는 곳이 있다.
山手線(야마노테선 : 한국의 2호선 같이 수도권을 뱅글뱅글 도는 녹색 노선)을 타면 독특한 음악이 나올 때가 있는데 타카다노바바도 그중 하나다. '우주소년 아톰' 음악이 흘러나오면 왠지 따라서 흥얼거리게 된다. 너무 좋아!
근사한 모닝세트도 먹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먹는 맛이란. 또 가고 싶은 맛.
버스를 타고 오며 생각했다. 나는 오늘 왜 만족스러웠던가. 아이들을 빼고 홀로 나가서인가? 아니다. 매일 이렇게 나간다고 즐거울까? 아니다. 지겹다고 말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그럼 뭘까. 생각건대, 매일 시장통처럼 북새통을 이루는 집안에서 바락바락 악을 쓰다가 잠시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나를 위해 쓰는 잠깐의 시간이 소중함을 알아서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