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어쩌다 컴퓨터 강사가 되었는가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한! 달! 만! 강의를 맡게 된 김 프리라고 합니다."
2020년 1월 첫 주의 월요일. 바람은 세찼고 날은 맑았다. 마이크를 들고 인사했던 첫 수업의 날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 거지라는 후회가 스쳤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도무지 탓할 사람을 찾지 못했다. 마이크를 쥐고 강의를 해보겠다고 말한 사람은 나였으니까.
"어디서 오셨나요?"
"예? 거기에서 오셨다고요?"
"먼 데서 오셨대, 아이고"
"아 남부에서 오셨네, 너무 멀지 않으십니까 선생님."
광역버스 두 번 갈아타고 왔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강의실은 이내 나의 출퇴근길에 대한 주제로 논쟁이 벌어졌다. 버스 한방이면 된다, 아니다~지하철을 타는 게 훨씬 빠르다, 그럴 리가 버스 갈아타고 또 지하철을 타야만 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럴 때는 강사가 <자, 여러분. 조용히 해주시고 수업 시작할게요>라는 말로 카리스마 있게 소란을 제압해야겠지만,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아... 저.. 알아서 잘 왔어요..라는 말을 뱉고 속으로 쥬르륵 눈물을 흘렸다. 아, 나 X 됐네.
해당 강의는 65세 이상의 노인분과, 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연령대가 꽤 높은 편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등원하시는 어머님, 허리가 많이 굽었지만 한 번도 지각 한 적 없으셨던 할머니, ㅇㅇ노인협회 지부를 맡고 있다는 할아버지부터 오전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3살 친구까지. 이곳이야말로 전국 노래자랑급 화합의 장이 아닐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살아있는 전통이자 역사인 송해선생님처럼 프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일주일간 수업할 내용은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그리고 컴퓨터 기초 총 4과목. 포토샵 과목도 있었지만 그건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강하게 밀어붙여, 1월에는 포토샵 강의가 사라져 버렸다. 강의를 날려버리는 강사, 그게 나였다. 그러니까 자격증 몇 개 가지고 나도 강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어이없는 것이었다. 그건 마치 케이크를 좋아하니까 내일부터 케이크 가게 사장이 되어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꿈을 만들었던 초등학생의 마인드였다. 나는 친구들울 만나도 먼저 말을 하기보다, 잘 듣는 것이 익숙하고 편한 사람인데, 그걸 아는 내가 감히 강사를 한다고 했다니.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 나를 여기까지 몰아온 것일까. 그러니까 나는 누구인가....
첫날은 오리엔테이션이라는 멋진 방어막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수강생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매우 높아서 내 실력이 들통 날 뻔했다. 위험했다. 기가 빨린 채로 집으로 돌아와 밥을 우걱우걱 먹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수업계획을 다시 짜야했다. 한글 수업에서는 한글로 표를 넣고, 글씨 색을 바꾸고, 그림을 집어넣어 이쁜 달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한 달의 목표로 잡았었는데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이미 한글로 줄넘기를 만들어 뛰어다닐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급히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나는 말발이 없으니 나의 말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줄 파워포인트에 힘을 실었다. 어르신분들이 대부분이니 글씨를 크게 키웠고, 한 슬라이드 당 많은 설명을 쓰지 않았다. 내가 만들었지만, 슬라이드만을 보아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수업자료를 든든하게 만들어놓으니 0으로 내려갔던 자신감이 40 정도는 올라왔다.
1주, 2주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조금씩 강의하는 것에 익숙해져 갈수록 재미있는 일들이 발생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마이크를 잡고 너스레를 떨기 시작하고, 수업 시작 전 스몰토크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맨 앞에 앉으신 어르신이 내게 물으셨다.그분은 이미 수없이 많은 자격증을 가진 능력자였다.
"선생님, 이거 하나만 봐주세요. 메일 머지가 말썽인데.."
"네?, 메일 머지요?"
"아~~ 아.. 우와.. 아.... 그러게요, 이게 왜 안되지?"하고 옆으로 몸을 비틀어 빠르게 핸드폰에 검색을 했다.
<메일머지 오류>
(메일 머지: 한글에서 상장 같은 것을 편하게 만들 수 있는 도구)
우리는 오늘 한글 다단 설정을 배웠는데, 갑자기 메일 머지 오류를?? 머릿속에서 삐빅!삐빅! 오류소리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솔직히 태어나서 메일 머지 기능을 써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진짜 머지? 자격증 공부할 때 나왔겠지만 이건 정말 머지? 아 해본 적은 있는 거 같은데, 이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싶던 나는 "와, 이런 거 저는 사실 처음 봤는데. 와 이런 게 있구나, 죄송한데 이건 제가 한번 알아봐야 될 거 같아요."라고 빠르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에는 땀줄기가 이어져 산맥이 벌써 몇 개나 만들어졌다. 결국 쉬는 시간 인터넷을 쥐 잡듯이 뒤진 후에야 어르신의 고충을 해결해드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모르는 것을 정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강의를 해도 되는가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답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한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도 아니고! 모를 수도 있지! 그런데 그래도 적어도 수강생보다는 많이 알아야지! 열공해야겠다는 반성을 했고, 그날도 오랜 시간 수업자료를 준비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준비, 준비 그리고 준비였으니까. 닥치면 무엇이든 하게 된다는 게 나의 모토인데,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게 인생인가 싶다.
어쩌다 시작한 강사일은 어쩌다 보니 약속된 시간의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고, 아무튼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맘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불꽃을 터트릴 생각으로 끝을 향해 달려가던 그때, 회장님은 나를 조용히 회장실로 부르셨고, 이렇게 말하셨다.
"송강사, 다음 달의 계획이 무엇인가?"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