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니 May 06. 2021

웹소설 작가가 되겠다던 백수의 망상

2020년 2월, 웹소설 강의를 듣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밥을 챙겨 먹고, 강의를 듣고, 또 듣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메모하면서 듣고, 쓰면서 하루를 보냈다. 이로써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강의를 듣고, 새로운 배움을 얻는 것은 너무 행복했지만 동시에 매우 슬픈 일이기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주제로 강의를 골랐는데, 막상 배워보니 정말 잘 할 수 없는 일이구나, 싶은 순간을 마주해야만 했다. 웹소설 쓰기가 특히 그랬다.


로맨스 웹소설은 특성상 사이다 형식의 글이 인기였다. 강의에서도 그 점을 강조했다. 강사님은 왜 우리가 출퇴근 지하철에서 웹소설을 보는지, 왜 자기 전 웹소설을 보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작은 핸드폰 화면 안에서까지 고구마 같은 일은 보고 싶지 않다고, 퍽퍽하고 팍팍한 것은 삶에서 충분하다고.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맘에 들었다. 톡 쏘는 사이다를 쓰지 못할지 언정, 적당한 청량감을 주는 밀키스 같은 글을 써보자며 전의를 끌어올렸다. 시대를 이리저리 점프하며 왔다 갔다 하는 고난도의 구성은 초짜인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으니 현대판 웹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물론 시점이 현대라고 쉬운 건 아니었지만.)


음, 남주는 개부자에 개 잘생기고 완벽한 조각미남으로 정하고, 여주인공의 특성을 정하는 일까지는 괜찮았는데, 스토리를 짜내는 일은 정말이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른 수건에서 물기를 짜내는 일만큼 말도 안 되게 어려웠다. 물론 강사님은 훌륭하셨고, 강의의 내용도 좋았지만 그것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니까.


그러니까 강사님은 12첩 밥상을 차려주셨지만, 나는 수저 들 힘조차 버거웠다. 이상하다? 나 글 쓰는 거 좋아하고, 자기 전에 천장 보면서 망상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인데? 결혼이 문제인가? 설레는 글이 왜 안 써지지? 뭐야 나 연애세포 죽었나? 아니면 글을 못 쓰는 사람인데 오해하고 살았던 것인가. 하는 식의 급발진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수많은 생각을 거친 뒤에야, <나는 웹소설과 맞지 않아>라는 파격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로맨스 만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꽁냥꽁냥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왠지 뒷덜미가 간지러워지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대신, 초등학교 5학년 때 <사랑과 전쟁>으로 사랑에 입문했고, <인어아가씨>로 배신과 복수를 배웠으며, <겨울연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공부했었으니, 아무리 훈훈하고 짜릿한 사랑이야기를 써보려 해도, 차선을 넘나드는 초보운전자처럼 계속 배신 혹은 복수의 길로 이야기는 새고야 말았다. 웹소설 이야기에도 복수와 배신이 들어갈 수야 있지만, 내가 쓰는 글은 그게 99프로인 것만 같은 느낌, 그런 느낌적인 느낌.


그제야 엄마 말을 들을 걸 후회했다. 그런 것 좀 그만 보라고 할 때, 말 좀 들을 걸.. 이 같은 이유로, 나의 워드 페이지는 1달 동안 1장을 채 넘기지 못했다. 씁쓸한 맘을 정리하기 위해 개인 블로그에 강의 후기를 적었고, 며칠 뒤, 알람이 울렸다. 다름 아닌, 웹소설 강사님의 댓글이었다.


"ㅋㅋ가감 없는 리뷰네요...(중략) 스토리텔링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포맷에 담아내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아마 ㅇㅇ님에게 더 맞는 다른 방식을 찾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블로그 글 쓰는 것도 대단한 정성이니까요. 어떤 걸 하실지 모르겠지만 잘되시길 바랍니다"



예.....???? 음????? 무려 10만 원으로 고작 실패를 샀다며 좌절하고 있던 나는, 블로그 비댓으로 달린 강사님의 텍스트에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렁거리는 감명과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맞아, 나의 이야기가 굳이 꼭 웹소설이어야 했나? 그건 아니었다. 복수와 사랑, 치정과 사랑, 사랑과 전쟁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찾는 게 우선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방방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털썩) 다시 한번,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불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도로위에 놓여진 외로운 드라이버가 된 기분, 다들 쌩쌩 달리는 데 나혼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느낌, 그런데 그때였다. 저 멀리서 작은 불빛 하나가 보일랑 말랑 했고, 작은 불빛들은 사람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서둘러 사람인으로 뛰어갔다.(두둥) 그리고 그곳에는 정말 빛이 있었으니..








2020.02.
실험일지 야심 차게 도전 한 웹소설은 나와 맞지 않는 걸로, 나와 잘 맞는 분야를 찾고 싶다. 그런데 그런 게 있긴 할까?
이전 04화 좋아하는 것에 숨겨진 힌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