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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Nov 06. 2020

영상 질감은 영상이 추구하는 디자인 언어다.

영상 질감은 영상이 추구하는 방향. 즉 디자인 언어다.

영화는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을 이야기에 몰입시켜야 한다. 드라마는 방영 기간 동안 시청자들이 이야기를 계속 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영화는 만들어진, 드라마는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구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장편영화는 보통 2시간에서 90분. 자칫 짧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정작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생각보다 이야기 흐름이 길기 때문에, 관객들이 서사에 계속 집중할 수 있게 강약 조절을 잘하면서 시나리오 배분을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스토리는 강약을 조절하고 기승전결을 유지해야 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카이로스'는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카이로스는 매회가 '엔딩 맛집'이라고 불릴 만큼 '서사'구조를 '엔딩'에서 폭발하도록 강약을 조절한다. 드라마 '24'의 시나리오 전개는 '시간'이다. 매 에피소드마다 전자시계 화면이 나오며, 각 시간에 어떤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는지 알려준다.

드라마 24에서 시간을 드라마 전개의 중심이다. 시간 단위로 쪼갠 스토리텔링은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영화 촬영에 이용하는 다양한 기교와 효과. 이러한 것들을 아껴야 한다. 효과가 남발되면 관객들은 그걸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심지어 너무 남발되다 보면 관객들은 짜증을 느낀다. 컷 설계 시에는 이게 과연 필요한가? 얼마나 유용한가? 이 컷씬과 샷 들이 관객들에게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샷’을 아끼는 절제와 덜어냄이 필요하다. 

기교를 남발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연출에서 감응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오히려 일부러 못 찍거나, 더 멋있게 찍지 않는 면면들이 시나리오가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을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관객(시청자) 들은 그 '덜어냄'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에서 자신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상상한다.

비밀의 숲을 집필한 이수연 작가는 극 안에서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전체 사건을 이어주는 조각들이 되도록 시나리오를 설계했다. 비밀의 숲 촬영팀은 이를 매우 충실하게 영상으로 담았다

대표적인 예가 '비밀의 숲'과 '마블 유니버스'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나오는 사건 하나하나는 종종 무덤덤하게 지나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무덤덤한 사건과 의미 없어 보였던 영상들이 드라마틱하게 맞춰진다. 그 순간 시청자들은 말할 수 없는 전율에 휩사인다. 마블 유니버스도 마찬가지다. 마블은 영화가 끝난 후 쿠키영상을 넣어 차기작을 예고했다. 또한 매 작품마다 이스터에그를 넣었고, 관객들을 이를 통해 이야기를 유추한다. 관객들은 이를 유튜브에 업로드했고, 이러한 영상들이 마블만의 팬덤을 만들었다.

마블은 인피니티 워 쿠키영상에서 캡틴 마블을 상징하는 로고와 아이템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과연 캡틴 마블은 인피니티 워 후속작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라고 자기들끼리 토

'덜어냄'은 핵심을 전하기 위한 응축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그림이 나왔다고 해도 그걸 써야 할지 포기해야 하는가는 고민하는 일. 덜어냄은 이걸 무수히 고민하고 내리는 과정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영상은 디자인하듯이 만들어서 찍는 경우도 있고, 얻어걸리는 듯하게 찍을 수도 있다. 조명에 인물을 맞추고 찍을 수도 있고, 동선을 정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우연히 포착된 듯한 인위적인 느낌이 없는 느낌으로 담을 수도 있다.

차이타 타운에서 김혜수 배우는 체중을 늘린 후 본인이 가진 가진 아우라를 합쳐 '엄마'라는 캐릭터를 만든다.

특정 배우들은 그들 자신이 가진 아우라 자체가 너무 강해 영상 설계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종종 배우가 가진 이미지 그 자체가 극 분위기를 잘 끌어내기도 한다.이를 조절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영화와 드라마가 무수히 많은 이미지의 합이자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상 설계는 덜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영상 콘텐츠(영화 혹은 드라마)는 음악과 비슷하다. 클래식 교향곡 흐름처럼 탄탄하고 영리하게 영화를 끌고 가야 한다고 해야 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DLDvbnK_Sqk&ab_channel=DeutscheGrammophon

가장 유명한 교향곡인 비발디의 '사계'를 생각해보자. '사계'는 각 계절(봄여름 가을 겨울) 풍경을 음악으로 전한다. 사계절이 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더라도 음악을 듣다 보면 ‘맞아! 봄은 이렇지, 겨울은 이렇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천천히 낮은음이 나오다가 점차 높은음이 따라간다. 어느 순간에는 평온한 흐름이 깨지기도 한다. 평화롭기도 하고 겁나기도 한다. 평온하다가 앞으로 전진해지기도 한다. 

막스 리히터는 비발디 사계를  편곡하는 과정에서 거의 느끼지 힘들지만 매우 세밀하게 신시사이저 음악을 넣어 사계에 현대인의 정취를 가미했다. 출처: 뉴욕타임스.

평온과 긴장이 만드는 변칙. 비발디의 사계는 계절 가진 다양한 속성을 다양한 음악적 기교와 변주로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 구성은 매우 치밀하고 역동적이다. 그 가운데에는 '덜어냄'이 있다. 새싹이 피어나는 봄을 묘사하는 바이올린 선율은 여름의 폭풍우를 묘사하기 위한 현란한 기교로 변한다. 계절을 묘사하기 위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가진 특성을 '사계'에 맞도록 덜어내고 배분했기 때문이다. 독일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신시사이저를 통해 비발디의 사계에 지금 시대 분위기와 정서를 집어넣기도 했다. 영상도 마찬가지다. 영상은 이러한 변칙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도록 처음에는 관객들의 감정선을 차분하게 만들어야 한다.

차이타타운은 색보다는 대비와 선명도로 건조하고 차가운 질감을 만들었고, 아수라는 그림자를 통해 어둠을 극대화한 후 이를 인물묘사에 반영했다.
밀정은 빛과 그림자로 인물을 보다 더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화이는 빛이 인물과 공간에 드러나 더 거칠고 날것의 느낌을 만들게 했다.


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이 화면 '색'보다는 '질감'이 중심이 될 때도 있다. 햇빛을 영화 전반에 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색감보다는 대비로 건조하고 차가운 질감을 만들었다. 영화 '아수라'는 그림자를 통해 어둠을 조절하고 이를 통해 영화 분위기를 만든다. 만일 배우가 차가운 감정을 연기한다면 영상은 그 차가운 감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잡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화이'는 빛이 인물과 공간 안에 들어오게 해 더 거칠고 '날것' 느낌이 강하다. '밀정'에서는 같은 성질을 가진 빛으로 그림자와 인물 경계를 영화 전반에 잘 보이도록 배치하고 설계했다. 밀정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도록 말이다.

눈과 클로즈업은 인물 감정을 극대화해 묘사하는 아주 좋은 촬영기법이다.

빛은 주인공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한다. 여기서 매력적이란 멋지거나 예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시나리오에 적합함'을 말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은 아이 라이트다. 등장인물들의 클로즈업에 신경 쓰면 얼굴 속 암부와 명부를 통해 영화가 지향하는 '감정'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눈가에 비치는 빛. 작은 차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걸 어떻게 넣고 빼느냐에 따라서 효과적인 인물 감정표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물 표정 안에는 영화 혹은 드라마 속 주요한 서사가 있으니까.

빛’을 인물과 공간에 동시에 최대한 비추어 거칠고 날것의 느낌을 연출한 화이의 촬영방식은 여진구 배우의 눈빛을 더 입체적으로 포착한다.

디지털 후보정은 통해 영상 질감 자체를 손 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울 열었고, 이 일관성을 더 구체화하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필름 작업이 사라진걸 꼭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만일 과거 향수가 생각난다면? 비록 완벽하게 필름은 아니더라도 디지털로 구현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은 디지털로 더 잘 찍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민일 필름 룩처럼 질감을 잡겠다면, 이를 위한 콘셉트 및 설계 후반 작업을 생각할 수 있다.

밀정에서 송강호 배우의 연기는 단연코 압도적이지만, 후보정은 그 압도감을 응축해 관객들에게 전한다. 

시대 느낌이 더 나게, 영상 선명도를 더 많이 넣고, 기술적으로 거친 느낌을 디지털 기술로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를 더욱더 세밀화해 구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런 면이 디지털 작업이 아날로그 작업과는 다른 묘미다. 컬러리스트들이 작업하는 컬러링 작업 역시 영상 질감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때때로 너무나 세련된 영상이 시나리오를 눌러버리는 효과도 볼 수 있다. JTBC의 '우리 사랑했을까?'가 대표적인 사례다. 출처: 넷플릭스.

'영상이 촌스럽냐? 세련되었냐?'라는 말이 영화와 드라마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영상미가 시나리오가 지향하는 방향에 맞는가? 아닌가? 가 더 중요하다. JTBC'우리 사랑했을까?'는 영상미와 디테일에 큰 공을 들여 영상이 시나리오를 누를정도로 좋다. KBS '출사표'는 광각렌즈를 너무 많이 사용해 눈이 피곤한 면이 적지 않다. JTBC '뷰티 인사이트' 클로즈업신 사용과 전환이 빠르고, 음악사용이 너무 과하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드라마 초반 고문영(서예지)의 룩이 매우 강력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고문영을 묘사하기 위해 고문영이 가진 강력한 '룩'을 지속적으로 부드럽게 바꾼다. 드라마 초반만 해도 검은색, 보라색, 빨간색 옷들은 파스텔톤 핑크를 거쳐 마지막에는 흰색으로 바뀐다.

다르마 싸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고문영의 옷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수록 더 밝아지고 화려함은 사라져 간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영상은 멋이나 기교가 아닌 시나리오를 표현하는 디자인언어다.

텍스트로 구성된 시나리오를 '시각 디자인'으로 구현한 게 영상이다. 영상은 언제나 시나리오가 추구하는 텍스트를 시각으로 바꾸었다는 걸 기억해야 헷갈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상 질감은 영상이 추구하는 방향. 즉 디자인 언어라고 볼 수 있다. 글로 비교하면 문체, 브랜드 관점에서 보면 브랜딩과 디자인 언어다.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 감독은 영화(혹은 드라마) 그 자체를 연출하고, 촬영감독은 그에 맞는 각 영상 조각을 담고, 배우들은 그 조각에 맞는 연기를 해야 한다. 카메라는 영화와 드라마 성격을 묘사하기에, 배우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이미지를 분석하고, 카메라 워크를 시뮬레이션해보고, 어떻게 변할 상황에 맞추어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배치해야 할지 고민하며 이를 자신의 편집력에 반영해야 한다. 우리는 결과물과 보기에 이 과정들을 상세히 모른다. 비록 메이킹영상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와 드라마에 관한 뉴스들은 휘발성이 강하다. 휘발성이 강하다는 건 매우 소비지향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식이 휘발성이 강하다고 관객들도 영화와 드라마를 휘발적으로 접근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오히려 관객 혹은 시청자들이 매의 눈을 켜고 영화와 드라마를 봐야 발전한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자.이미 유투브와 SNS같은 공간이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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