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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Aug 24. 2021

더 현대 서울이 생각하는 가까운 미래의 백화점.

가까운 미래의 백화점은 '편집과 연결'을 토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야

[이 글은 앞서 올린 '더 현대 서울'글의 통합본입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은 더 늘어났다. 이미 ’ 소비’는 온라인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이제 물건이 필요하면 '문'을 나서기보다 '스마트폰'부터 먼저 보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오프라인은 ‘이 물건이 왜 필요해?’에 대한 답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 답을 명료하게 전하면 그 공간에서는 소비가 일어난다. 그렇기에 오프라인은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는 프레임을 넘어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미디어는 언제나 '왜'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미디어만의 관점을 만든다. 출처:unspalsh

미디어는 ‘관점’을 구체적으로 전해야 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왜?’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을 전하기 위해 온라인은 다소 불편하다. 물론 온라인은 각종 콘텐츠를 통해 얼마든지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서 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나 정보일 뿐이다. 정보를 읽는 일과 직접 만지고 보는 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공간에 담아도, 남들이 좋아하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안에 관점은 분명 존재한다. 출처: unsplash

오프라인은 온라인과 다르게 콘텐츠가 정보는 무한대로 진열할 수 없다. 당연히 오프라인은 공간에 맞도록 정보를 선별해야 한다. 사람들은 잘 선별된 정보는 보면서 자신이 보는 물건이‘왜’ 필요한지 당위성을 찾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정쩡한 추임 세나 모방은 여차 없이 걸러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LG전자가 무인매장을 선보이는 이유는 손님들 '스스로'가 물건을 사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브랜드가 오프라인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정직함’이다. 오히려 브랜드가  자신을 알리는 과정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소비자는 가차 없이 외면한다.

새롭게 문을 연 나이키 서울[명동] 쓰지 못하는 나이키 제품을 수거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출처: 나이키.

공간과 자원을 다루는 방식은 우리 삶을 새롭고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애플과 나이키는 자신들이 제품을 수거해 신제품의 소재로 재사용한다. 나이키는 새롭게 문을 연 나이키 명동지점에 폐제품 수거 코너를 만들 정도다. 오래가는 제품. 이해하기 쉽고, 쓸모 있으면서도 환경을 고려한 제품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깊은 성취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이걸 이제 ESG라고도 한다. 


코로나19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일한 미디어를 경험하고, 가상세계에서 삶을 나눈다. 지금 세대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주도하면서 지식이 풍부한 세대다. 브랜딩과 브랜드 디자인만으로는 부족하다. 브랜드에 대한 과장 광고들. 제품 자체보다 진짜 혹은 가짜 꼬리표를 더 중시하면서 제품 고유의 질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품이 이미 너무 많다. SNS를 통해 다양한 마케팅이 가능해졌지만 '값싸면서 속임수 넘치는 제안이 판치는 시장'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또한 제품만 늘여놓으면 제안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상품이 가진 가치보다는 겉면인 브랜딩에 지나치리만큼 공을 드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이스 웨더에는 그들만이 추구하는 생각이 담긴 상품으로 가득하다.

모든 이들이 디자이너가 된 지금 시대다. 우리 모두 우리 스스로 실현한 아이디어 제품의 품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공간을 만드는 일을 포함한 모든 '디자인'은 항상 고민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불편했던 경험, 내가 추구하는 가치, 미의식 등 무엇이든지 디자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겸손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태도도 제품을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화분 하나도 공간을 살리는 '감성'이 된다.

오프라인이 ‘메시지’를 전하는 매체는 물건이다. 물건이 가진 '물성'. 오프라인에서는 이 '물성'을 미디어로 바꾸는 게 중요하다.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 같은 질문 이전에 어떤 ‘미디어'로서 메시지’를 정립할지 중요하다. 메시지가 정립되면 공간은 알아서 나온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 성격은 무엇인가? 둘 중 하나다.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그게 아니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에게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역사에서 이 같은 두 가지를 매우 드라마틱하게 합쳐 보여준 인물이 있다. 스티브 잡스를 기대했다면 아니다. 바로 로마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로마 군단의 이상을 스스로 보여준 카이사르]


로마 군단은 군단장 아래 고위 장교와 백인대장이 있다. 군단장은 모든 병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백인대장들은 자신이 맡은 인원을 통솔하고 그들을 면밀하게 파악한다. 잘 훈련된 백인대장은 전체 군단이 상황과 전략에 맞게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백인대장은 보통 80명 정도 통솔한다. 단 제1 백인대장은 160명 정도를 통솔한다.]

카이사르가 통솔하는 군대는 로마다움. 그 자체였다. 갈리아 전쟁 이후 내전에 돌입했을 때 카이사르에게 항복한 군사들은 순식간에 훌륭한 군사로 변하기도 했다. 출처:crushpixe

카이사르는 총사령관으로서 무엇을 병사들에게 전해야 할지 알았다.'로마다움''로마 군대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갈리아 전쟁에서 카이사르가 이끈 제7,11군단은 카이사르가 매 전투마다 그가 원하는 전략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현했다. 하지만 갈리아 전선에 처음 투입된 15군단은 훈련이 덜된 병사들이었다. 갈리아같이 거친 환경에서 15군단이 제대로 된 전투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그들을 데리고 몸소 진두지휘했다. 그 덕분에 1년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15군단은 매우 훌륭한 군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카이사르의 군단들은 그 당시 로마 전역 군단장들이 이끈 로마 내 다른 군단보다 뛰어났다. 그 이유는 '카이사르 휘하'에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크지만, 무엇보다도 카이사르는 로마 군단이 가진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단지 로마 군단이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상황에 맞게 매우 유연하게 대응했을 뿐이다.

출처:wallpaperacess.

카이사르 휘하 군단에서 군인들은 진정한 로마 군인이 무엇인지 보았다. 그들이 본 총사령관은 징병할 수 있는 ‘임페라토르’ 지위를 가진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본건 같이 싸우는 사령관이었다. 카이사르는 병사들과 함께 먹고, 모범을 보였으며 순발력 있는 전략으로 '로마군'이 무엇인지 손수 보여주었다. 오합지졸인 군단도 카이사르 밑에 가면 그가 보여주는 ‘실제 로마 군대’에 빠져들었으며, 빠른 시간 안에 오합지졸에서 훌륭한 병사로 변했다. 그 이유는 병사들이 카이사르가 제시하는 ‘로마다운’ 관점을 지지하면서 스스로 배워 갔기 때문이다. 

{**임페라토르는 고대 로마 특히 공화정 시대의 로마군  최고 사령관, 장군의 칭호다. 로마 공화정 시기에는 대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군사 지도자의 칭호로 쓰였다. 임페라토르를 부여받은 이는 군사를 징병할 수 있었다.}

로마의 공화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제정으로 가는 길을 만든 카이사르. 그는 가장 로마다운 로마인중 한 명이었다. 출처:네셔날 지오그래픽.

카이사르는 그 스스로가 가장 로마다운 로마인이었기에, 수많은 이들이 그를 추종했다. 카이사르 휘하 군단은 진정한 로마 군대였다. 무엇보다 그 구심점은 카이사르라는 전략가와 그가 만들어내는 '로마'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이끈 군대. 카이사르의 군대는 카이사르가 추구한 로마 정신이 숨 쉬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역사서를 찾아보면 가장 로마다운 곳은 '원로원'과 '로마'가 아니었다. 갈리아에서 싸우는 카이사르 군대였다.

어떤 공간을 만들 때 크기를 막론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색깔, 음악, 음식, 책들 모든 것들은 철저히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에서 나와야 한다.

이처럼 어떤 공간을 만들 때 크기를 막론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색깔, 음악, 음식, 책들 모든 것들은 철저히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은 공간들은 모방에 불과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생각이 깃들지 않은 공간에는 어떠한 색깔도 있을 수 없다. 만일 공간이 매우 크다면 과연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이는 한 가지 답만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색깔'과 같은 '결'을 가진 콘텐츠를 가져와 엮어야 한다. 그 결이 강하고 지속력이 강하면 공간은 저절로 힘을 얻기 시작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더현대 서울은 브랜드를 이끄는 군단이 되고자 한다.


더 현대 서울은  카이사르가 이끌었던 ‘로마 군단’처럼 봐야 한다. 더현대 서울이 ‘오프라인의 미래’를 제시한다는 말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특정 쇼핑몰 혹은 백화점은 변화를 제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들이 가진 공간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이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 현시대에 맞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 면이 더 정확하다.

대기업은 인력이 많기 때문에 많은 브랜드들을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은 기업처럼 많은 브랜드를 모두 관리할 수 없다. 누군가는 작은 브랜드는 그 영향력이 작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작은 브랜드는 보다 세밀하게 개인 취향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나에게 맞지 않는 브랜드라고 해도? 그게 다른 이들에게는 취향을 저격해 마음을 설레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백화점은 '덩어리'된 개인을 포괄하는 브랜드를 모아 정제된 메시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공간을 통해 브랜드를 어떻게 엮어야 하는가? 백화점이 가지고 가야 하는 과제다.

백화점은 조각조각 나눠진 브랜드와 취향을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백화점이 추구하는 공간은 자신들의 관점이 담긴 공간이어야 하며, 백화점은 '이것'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백화점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라는 말은 어렵다. 백화점은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취향을 연결하는 전체 공간에 가깝다. 예를 들어 로마 군단에서 백인대장들은 그 말대로 자신 휘하 80명의 장병들을 통솔한다. [제1 백인대장은 160명]철저히 병참과 전략으로 이기는 로마 군단 구조를 본다면? 브랜드들은 각기 백인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재현한 로마 군단기와 푸시킨 박물관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로마 군단기. 로마 군단기는 로마군대의 자존심과 명예 그 자체였다. 출처: 위키디피아.

그렇다면? 백화점은 하나의 군단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 군단에서 군단기는 그 군단의 명예와 존재 그 자체다. 로마인에게 최대 굴욕은 군단 기를 빼앗기는 일이다. 전투에서 지더라도 군단기는 절대 빼앗기면 안 된다. 그렇다면 백화점의 명예는 무엇인가? 자신들 로고가 군단 기다. 백화점은 자신들이 가진 편집력을 극대화해 취향을 연출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브랜드들이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인테리어, 공간설계, 재질, 음악 및 각종 콘텐츠가 필요하다. 이렇게 규모를 촘촘하게 키운 백화점이 많을수록 그 흐름은 보다 덩어리화 되며, 이는 지역색깔을 가지게 된다. 그 색들이 모여 도시단위로 커진다.

브랜드를 배치해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군단을 만드는 일. 백화점에게 주어진 과제다. 동시에 백화점 로고는 이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군단기다.

아마존 고에 적용된 기술을 사용한 매장을 백화점 안에 놓는다고 해서 그 백화점이 '기술친화'적인 장소가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더현대 서울 6층에 입점한 언커먼 스토어는 더현대 서울의 전체 공간에 비하면 매우 작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공간은 사람들에게 '소비'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충분하다. 동시에 AWS기술을 통해 구현한 매장은 '전체' 공간에 ’ 혁신기술, 인공지능'같은 하나의 섹션이 된다. 마치 그림 속 하나의 획이 되는 셈이다. 비록, AWS의 기술을 접목한 공간이 사운드 포레스트 같은 강렬한 공간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다. 관계없는 것들은 공간으로 잘 엮어내면 그 자체가 창의성이 깃든 공간이 되니까. 그렇기에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비약'해서도 안된다. 반대로 '전체'만으로 부분을 '전체화'해서도 안된다. 유기적인 연결성이 떨어진다면? 그 역시도 서서히 트렌드와 시간에 맞추어 삶의 속도와 맞추면 된다.

비록, AWS의 기술을 접목한 공간이 사운드 포레스트 같은 강렬한 공간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다. 관계없는 것들은 공간으로 잘 엮어내면 그 자체가 창의성이 깃든 공간이 된

만일 쿠팡이 '더 현대 서울'에 매장을 만들었다면? 그건 참으로 이상하다. 이는 쿠팡과 더 현대가 지향하는 방향, 두 회사가 선보이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쿠팡은 온라인과 배송에 최적화되어있지만 '더 현대 서울' 공간 안에서 전하는 '제안'이 더 중요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통'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전자는 플랫폼 성격이 강하고, 후자는 미디어 성격이 강하다. 두 기업 간 추구하는 결이 다르기 때문에, 그 기반에서 나오는 아름다움도 다르다. 다만 백화점은 사람들이 원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매우 '구체적'으로 전해야 한다.


소비가 빠져버린 백화점에 남은 건 ‘공간’뿐.

이곳에 사람이 없다면? 그저 공허한 공간에 불과하다.

'소비'가 빠진 백화점에 남은 건 공간이다. 그렇다면 공간을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필연적이다. 공간을 구축한다는 건 그 공간이 자리할 지역이 가진 속성, 정취, 감성. 그곳을 이용할 세대. 주축이 돼가는 세대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비가 빠진 백화점에 채워야 하는 건 결국 '사람과 문화'다. 그것도 구체적인 사람과 문화 말이다. 오히려 백화점같이 큰 공간을 가진 곳은 MZ세대가 원하는 니즈를 채워 넣는 일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앞으로 소비주축이 될 그들의 문화, 소비, 지향점, 가치관을 잘 섞어야 한다. 동시에 그걸 백화점 스스로가 해석하기보다는 편집해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모르는 것은 과감하게 인정하고 입점하는 브랜드가 알아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시대 백화점은 백화점이 아닌, 백화점이 위치한 ‘도시’ 혹은 ‘지역’을 담아야 한다. 소위 도시가 가진 '속성'을 백화점 브랜드. 그들만의 관점으로 다시 해석하는 일. 이것이 바로 지금 시대 백화점이 해야 할 일이다. 그것도 자신만의 관점으로 말이다.

더현대 서울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는 현대백화점이 해석하는 '서울'이다. 

이런 관점에서 더현대 서울이 ‘더 현대’라는 이름과 ‘서울’을 붙인 건 결국 (주)현대백화점이 해석한 ‘서울’의 모습이다. 현대백화점이 해석한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은 누군가에게는 힙하고 트렌디할 수 있다. 반면에 누군가에게는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루이뷔통, 샤넬, 오프 화이트가 없는 ‘더 현대 서울’은 별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는 모든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루이비통은 오히려 지루할 수도 있다.


이미 커머스들이 똑같은 물건을 판매한다. 인플루언서를 통해 수많은 이들이 공동 구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쿠팡, 무신사, 마켓 컬리 혹은 배달 앱들이 제시하는 나쁘지 않지만 그저 그런 물건들. 나중에 후회할 물건과 음식들을 객관식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이것을 데이터 기반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데이터도 샘플수에 기반한다.'알고리즘'으로 포장되어 멋져 보이는 미사여구. 그 추천 덕에 사람들이 가진 취향, 철학과 아우라는 오히려 옅어지고 있다. 어쩌면 백화점은 이렇게 ‘옅어지고 있는 면’들을 더 옅어지지 않게 붙잡는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

작은 브랜드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 앞으로의 백화점은 이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공간이 미디어를 지향해야 한다는 말은 이것저것 다 전하는 미디어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 사람들의 취향이 옅어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관점이 선명한 ‘미디어’가 돼야 한다. 누군가는 커다란 공간을 운영하는 백화점이 그건 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한 카이사르 같은 인물들은 스스로 ‘로마다운 군단’을 정의했다. 그걸 작은 군단 조직을 통솔하는 백인대장들에게 넘겼다. 그렇다면? 백화점들은 오히려 그 커다란 공간 자체를 만들고, 그 공간에 운영할 브랜드들에게 ‘색깔 있는 공간’과 '공간을 넘어선 미디어'를 만들기를 요구해야 한다.

나이키는 트렌드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트렌드가 이런 식으로 흐른다고 하니까 우리도 유행에 동참하자. 트렌드가 이러하니까. 시장이 이렇게 흘러가니까 그 흐름에 동참하자!"라고 말하는 건 자칫 '내러티브'에 감정을 내어주어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는 판단을 그르치는데 동참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트렌드 안에 있으면서도 색깔을 잃어서는 안 된다.'내러티브'에는 항상 목적이 있다. 백화점은 내러티브를 만드는 위치에 있다. 백화점은 서로 다른 내러티브가 균형점을 이루도록 편집을 잘해야 한다.



미디어로서의 백화점, 미디어로서의 공간.


많은 브랜드가 오늘도 생긴다. 하지만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를 위한 프레임과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스토리가 사실인지 아닌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브랜드가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기저로만 있으면 된다. 흥미로운 건 이제 이러한 부분을 사람들도 안다.

슈프림은 스트리트 브랜드를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로 끌어올린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로고 자체가 스트리트 문화를 상장하니까. 출처:unsplash.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게 가능하다. 온라인으로도 라이프스타일 구축이 가능해지면서 '라이프스타 제안'이라는 소비 프레임은 그 수명이 다했다. 그렇다면 '라이프스타일 제안'의 다음 프레임은 무엇일까? '미디어'다. 어떤 미디어인가?'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의 미디어인 나 자신이다. 미디어는 라이프스타일보다 더 추상적이다. 요즘에는 인플루언서들도 '독립 미디어'로 취급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플랫폼과 미디어'로 화두가 넘어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많은 MCN기업들이 '플랫폼'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중개업’이다. MCN기업을 보면, 겉은 화려하지만 대부분 적자다. 그들이 인플루언서 집단이라고 해도, 그들의 수입원은 '누군가의 상품'이자 '소비'를 이끌어내는 광고이기 때문이다. 가치와 제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소비'만 자극하는 매체는 미디어로 성장할 수 없다.


경험이 만드는 '은유'는 공간을 미디어로 나아가게 만든다.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견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연적으로 경험하는 무언가로부터 그 개념의 '역할'과 '관점'이 정의된다. 개념은 단순히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으로만 정의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개념은 기본적으로 상호작용, 경험에서 정의되기 쉽다. 즉, 사람들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메시지'와 '제안'을 보는가에 따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개념이 변한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150KG이 넘는 바벨을 드는 게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이다. 출처:unsplash.

정의는 어떤 개념을 적용하기 위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관계하는 혹은 경험하는 무언가에 따라 정해지기 더 쉽다. 누군가에게 150KG이 넘는 바벨을 드는 게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이다. 그 경험이 자신의 모든 걸 정의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왜 저렇게까지 무게를 들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도 있다. 그렇기에 은유는 어떤 개념을 더 자세하게 정의하고, 그 개념을 적용할 범위를 키운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간 자체도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이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는 게 따라서 달라진다. 우리가 공간을 미디어와 메시지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개념화할수록? 우리는 그 안에 있는 세밀한 요소와 그 안에서 공간을 더 구체적으로 강화한다.

경복궁도 '조선왕조의 권위'를 들러낸다는 분명한 목적 아래 지어졌다. 경복궁에 대한 경험이 조선에 대한 경험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간이 제시하는 콘텐츠를 경험함으로써, 나 자신과 그 공간 간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선명해진다. 공간에 있는 특정 콘텐츠를 더 접할수록? 우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에게 더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다. "이게 이거구나? 생각보다 크기는 작네?""생각보다 실물이 더 예쁘네", "내가 딱 원하던 색깔이야."같은 표현들은 이 같은 과정에서 나오는 말들이다.

온라인이 대세이지만, 결국 모든 건 오프라인을 통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공간에서 라이프스타일의 이미지를 볼수록 우리는 더욱 구체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그려보게 된다. 특히 그 안의 세세한 콘텐츠들은 우리가 라이프스타일을 자세히 구현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케아가 대표적이다. 카탈로그에서 본 제품은 '이미지'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구현된 이케아 매장 쇼룸에 가면 이케아의 제안이 더 와닿는다. 이는 이미지에서 시작한 추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이 공간에서 구체적인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간에서 경험한 콘텐츠들. 신발을 신어보고, 색조화장품을 발라보고, 사진을 찍어보고, 음식을 먹으며 사진 찍는 일. 나의 구체적인 행동들이 내 취향을 알게 모르게 구체화한다. 공간 안에서 느끼는 모든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은유를 전하고, 그 은유에 근거한 형태가 사람들과 직접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쇼룸은 라이프스타일 이미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은 언제나 라이프스타일을 이미지화한다. 이미지로 만든 은유를 공간 내 각종 물건들로 공간화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된다. 많은 브랜드 매장들이 자사 제품에 대한 체험 및 관련 서비스를 만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제품을 사람들이 직접 체험할수록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구현을 고민하게 된다. 공간이 '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화점. 용적률과 브랜드 경험, 그리고 디자인.]


보통 토지에서 건물을 얼마나 높게 올릴 수 있는가를 용적률이라고 한다. 우리가 겪는 라이프스타일 경험도 브랜드 제품을 통해 경험이 용적률처럼 확장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이전에 포스팅한 '용적률과 라이프스타일 제안의 확장.'글에서 살펴보았다. }

https://brunch.co.kr/@freeoos/600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일상은 애플 제품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차이도 있다. 아이폰만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은 iOS로 끝난다. 반면에 아이폰과 맥북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OSX를 통해 iOS경험이 더 확장된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갤럭시 노트+맥북]으로 사용하던 시기와 [아이폰+맥북]으로 사용하던 시기의 경험이 완전히 다르더. 그렇다면 애플을 통해 이루어진 라이프스타일 구축과 확장은 개인 라이프스타일 건축 용적률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에서 만든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용적률은 달라진다. 출처:unsplash

건축은 숫자가 보이는 수치로 말할 수 있으나, 경험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애플은 '-100%'일 지도 모른다. 하나 누군가에게는 '+1000%' 일수도 있다. 이는 삼성, 구글, MS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엘지 냉장고, 삼성 비스포크, 발뮤다 토스터기, 스타우브 주물냄비, 비타맥스 믹서기 등 개인마다 제품에서 얻는 경험은 다르고, 그로 인한 만족감도 다르다.


내가 가장 사고 싶은 조명은 오로지 단 한 개. 세르주 무이 조명이다. 그렇다면? 세르주 무이가 내 라이프스타일의 용적률은 어떻게 올릴까? 적어도 100% 이상은 될 거다. 건축에서 말하는 용적률은 브랜드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경험, 삶, 팬덤들까지 모든 걸 총괄한다. 내가 변함없이 이야기하는 부분. '브랜드가 개개인의 아름다음을 구축한다'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 용적률에 따라 달라지는 건물 모습과 같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기획’을 구현하는 그릇이다. 백화점 내 브랜드 배치는 공간 안에서 강력한 규칙을 만들며 백화점 공간 안에 균형감을 만든다. 물론 이는 백화점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백화점은 '소비 예술의 결정체'로 불리지만 언제나 공간 안에 있다. 다시 말해 백화점과 공간이 하나라는 말이다. 공간도 백화점의 구성원중 하나다. 공간 안에서 내다봤을 때 백화점은 공간에서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만든다. 이 제안은 세 가지를 중시한다.'어떤 상황에서 이용하는가?''누가 이용하는가?''방문하는 이가 어떤 심리 상태로 오는가?'다. 


백화점에 남는 것은 공간과 브랜드뿐이다. 브랜드로 구성된 백화점은 무척 소비지향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하지만 백화점은 '소비'를 넘어선 다양한 가능성을 백화점 안에 담아야 한다. 물론 현대백화점만 해도 '더현대 서울'에 마이크로 웹페이지를 적용해 온라인 경험을 끌어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이라는 공간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고 있다. 사람들이 현대백화점을 판단하는 기준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에 조금 더 가중치를 둔다. 이는 앞에서 말한 사람들이 '은유'를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화점은 자신들 공간에 '자신들의 선명한 관점'으로 콘텐츠를 채워야 한다. 브랜드도 콘텐츠이지만, 브랜드와 합을 이루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관점들을 맞춰나가야 한다. 물론 브랜드는 조합 가능성을 키운다. 백화점에서는 브랜드를 이렇게 놓고 다른 브랜드는 이렇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완전히 바뀐다. 브랜드를 통해 공간에 어떤 균형을 넣을지 고민해야 하는 곳이 백화점이다. 브랜드와 공간을 배치해 다양한 가능성이 확인하며, 배치한 브랜드를 통해 만들어진 백화점 속 경험. 백화점 안에 브랜드와 콘텐츠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가장 어울리는지 머릿속에서 그려보아야 한다. 이 과정을 세밀하게 조절하면서  백화점이 이 추구하는 '제안'을 다듬어야 한다.

지금까지 백화점은 많은 브랜드를 모은 공간 그 자체에 불과했다.'1층에는 꼭 명품과 하이엔드 패션매장, 고급시계와 보석 브랜드가 입점해야 한다.'이래야 하는 식이였다. 그렇기에 백화점을 비롯한 브랜드 가게는 단순히 브랜드 소개에서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공간이 물건 진열이 아닌 '물건의 역할'을 사람들에게 직접 전하면 그 경험은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온다. 동시에  그 영향력의 정도도 커진다.

YETI 같은 경우 캠핑과 함께할 수 있는 매우 좋은 파트너다. 출처:unsplash

모든 브랜드는  사람들의 삶에 ‘동반자’ 들어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건 브랜드가 개별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백화점이 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그 동반자를 찾는 걸 도와야 한다. 그렇기에 백화점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미디어가 되어야 한다. 백화점은 자신들의 색깔을 공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고, 고객 취향과 그에 맞는 브랜드를 큐레이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즉, 백화점의 미래는 미디어 성격을 가진 디자인 회사다.


더현대 서울은 어떻게 공간 안에 부드러움을 넣었을까?


내가 '더 현대 서울'에 들어가자며 떠오른 장소는 도쿄 미트다운 롯폰기였다. 차분하게 정렬된 공간들. 부드러운 음악 선율과 차분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더현대 서울의 공간은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물론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는 롯폰기라는 ‘고급스러움’을 반영하고자 일본 특유의 직선미를 강조했다. 반면에 '더 현대 서울'은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와 다르게 곡선미를 다채롭게 사용해 직선과 곡선 간 '조화'를 추구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편하게 백화점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건물 통로와 벽을 곡선으로 마무리했다. 

더현대 서울과 도쿄 미드타운. 비슷해보이지만 사뭇 다르다.


지상 2층에서 4층까지 입점한 브랜드 매장을 지나가는 길들은 통유리와 나무를 사용했다. 사람들이 걷기 편하도록 통로도 넓게 만들었다. 걷기 편한 통로 덕분에 마치 길을 ‘걷는’ 느낌을 받는다. 원형 조명도 다양하게 사용해 곡선미가 공간 안에서 더욱 살아나게 했다.

통유리, 원형 조명, 나무, 곡선은 더현대 서울을 관통하는 공간감이다.


물, 식물, 채광, 흰색 벽은 직선을 상쇄하는 곡선과 함께 동반 전체에 편안함을 더한다. 천장 유리창에서 떨어지는 빛은 아늑함을 이끌어내어 낸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채광은 '중정' 같은 느낌도 연출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분수의 물소리는 더현대 서울을 '부드러운 공간'으로 최대한 끌어올린다. 이처럼 겹겹의 장치를 통해 직선미를 부드럽게 만든 '더 현대 서울'은 백화점이라는 공간임에도 편안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과 물소리는 마치 이탈리아 중정을 연상시팅다.

공간설계만 부드러운 게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입점한 브랜드들의 매장을 곡선 형태로 배치했다. 이 덕분에 공간의 곡선미는 깨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곳이 1층의 코스매틱 코너다. 코스메틱 코너에서는 입점 브랜드들을 유선형으로 배치해 곡선미를 유지한다.

직선고과 곡선을 조화롭게 사용한 더 현대 서울,.
직선미를 강조한 도쿄 미드타운 롯본기.

아케이드 방식으로 입점한 브랜드들은 개별 갤러리 혹은 아틀리에를 연상시킨다. 어떤 면에서 건물을 둘러싸 입점한 상점들은 도쿄역 키테,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 오모테산도힐즈, 신세계 센텀시티 일부와 비슷하다. 물론 백화점 건축이 아케이드 건축과 시장을 합친 형태이기에 이 같은 구조가 새로운 건 아니다. 단지 '더 현대 서울'은 시장과 아케이드를 혼합한 기존 백화점 방식을 좀 더 고객 입장에서 개선했다는 게 포인트다. 또한 에스컬레이터를 좌, 우, 중간에 배치해 사람들의 동선을 분산시켰다. 화장실도 구석으로 뺐다. 이 덕분에 '더현대 서울'의 공감 흐름은 시종일관 차분하고 부드럽다.

사운드 포레스트가 위치한 5층에 올라오면 블루보틀 커피 향과 고기 및 음식 굽는 냄새가 곧바로 코에 들어온다.
지하 1층 F&B코너도 음식 향이 가득하다.


후각과 청각도 부드러운 공간을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더현대 서울은 F&B코너가 [지하 1층]과 [지상 5,6층] 두 곳에 있다. 지상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음식 냄새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지상 4층에서 지상 층으로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사운드 포레스트가 있는 지상 5층으로 올라가는 순간 커피 향, 고기와 빵 굽는 냄새가 즉각적으로 코에 들어온다. 여기에 흘러나오는 사운드 포레스트의 음악은 [지상 1-4층]의 경험을 순식간에 바꾼다. 물론 5층에서 가장 많아 눈에 보이는 건 식물과 건축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물소리와 음식 냄새는 '더 현대 서울'을 계속해서 활기 넘치고 부드러운 공간으로 유지시킨다.

사운드 포레스트에 올라가는 순간 공간 경험이 달라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q5svn8sLc&ab_channel=GreenHillMusic

비지 어데어의 음악은 부드러운 선율이 단연코 돋보인다.

더현대 서울의 공간에서 음악은 중앙에서 각 매장으로 흘러가는 구조다. 공간 전체에 흘러나오는 음악은 부드러운 재즈가 많다. 선율이 강한 재즈는 흰색 벽, 채광, 물소리와 잘 어울린다. 여기에 돌로 마감한 외벽, 아늑한 전구색 조명과 식물은 재즈의 부드러운 선율을 공간에 잘 흡수되도록 돕는다. 특히 사운드 포레스트의 음악은 식물과 함께 [지상 5,6층]을 부드럽게 만든다. 이처럼 부드러운 공간을 지향하는 '더현대 서울'은 기존 백화점의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백화점 공간을 휘감는 정서가 빽빽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스타벅스 로스터리 도쿄처럼 말이다. 과거 백화점이 백화점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면이 강했다면? '더현대 서울'은 현대백화점이 앞으로 백화점이 나아갈 방향을 '자신들만의 관점'으로 고민해 만든 흔적이 많다. [링크로 걸어놓은 비지 어데어의 음악을 들어보기를 권한다. 우리는 그녀의 음악을 통해 더현대 서울이 지향하는 공간감을 유추할 수 있다.]


부드러운 건축의 연장선:

죽어있는 공간을 살려 부드러움을 더해라.

통로에 제품을 진열에 공간이 죽는 걸 막았다. 더현대 서울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상 1-4층]은 모두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전통적인 백화점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백화점 안에 입점 브랜드만 보이면 무엇인가 적막하다. 통로를 제외한 다른 공간들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이같이 죽는 공간에도 각 브랜드 제품을 오브제처럼 배치해 공간이 죽는 걸 방지했다. 또한 각 층의 대리석 벽에 입점 브랜드 이름을 새겨 브랜드와 공간이 통일성을 가지도록 했다. 이는 가로 골목에서 시도한 것도 동일하다. 또한 에스컬레이터 앞 각층마다 빔프로젝터로 층을 설명해 죽는 공간을 최소화했다. 무엇보다 공간을 유기적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다음 사진은 더현대 서울의 공간이 추구하는 기본방향을 잘 보여준다.

다음 사진은 더현대 서울이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었는지 잘 알려준다. 사진을 보면 디자인적으로 아무런 효용가치 않을 수 있는 벽에 철골구조물을 설치했다. 철골구조물에는 교체 가능한 안내판을 달았다. 천장에 설치된 원형 조명들은 공간의 직선을 상쇄한다. 또한 입 범 브랜드가 사용한 전구 색조명은 공간을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게 만든다. 위의 사진은 '더현대 서울'이 추구하는 기본 공간이라고 보아도 무관하다. 마치 샌드박스처럼 말이다.

빔프로젝터를 사용한 층별 안내, 화분을 사용한 파티션분할, 벽에 각인한 브랜드명.
더현대 서울은 죽을 수 있는 공간에 안내문을 달아 공간이 죽는걸 막는다.

곡선이 강한 공간에 맞게 입점한 브랜드들도 곡선 형태로 배치되어있다.

1층의 하이엔드 브랜드 매장들은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이와 다르게 코스매틱 브랜드들은 유선형으로 배치했다. 사각형 구조로 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파티션 구조로 코스매틱 매장이 하나의 덩어리면서도, 동시에 각 브랜드들로 나눠지게 했다. 코스매틱 브랜드들 주변 벽에 브랜드 이름을 새겨 공간이 죽는 걸 최소화했다. 점적인 전개와 면적인 전개를 혼합한 공간 구획이 좋다. 무엇보다 '구획'을 통해 공간 속의 부드러움을 극대화한 점이 좋다.  

코스매틱 매장들의 천장은 대체로 낮다. 이 덕분에 방문객들은 코스매틱 브랜드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천장이 낮은 구역에 코스매틱 매장을 일괄 배치해 사람들이 코스매틱 브랜드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코스매틱 매장 주변에는 6층 천장으로부터 빛이 내려온다. 이러한 빛은 코스매틱 매장 주변을 ‘중정’ 같이 만든다. 지상 2-4층 일부 통로 천장에는 은빛 텍스처를 설치해 빛이 부분적으로 반사되게 만들어 세련되면서 공간이 칙칙해지는 걸 방지했다.


[부드러운 건축을 위한 디테일: 

바닥, 조명, 조명 형태, 벽]

더현대 서울은 상업공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바닥과 조명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지하 1층의 F&B코너는 판교점과 다르게 공간에 넉넉함을 두었다. 조명은 주광색과 전구색을 사용해 은은한 느낌을 넣었다. 또한 일관적으로 원형 조명을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조명 사용은 직선이 가진 딱딱함을 부드럽게 눌러주면서 공간에 차분하고 부드러운 정서를 반영하는데 기여한다. 여기에 더해진 식물은 계절감을 끌아와 부드러운 정서가 사라지지 않게 한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바닥.

더현대 서울에서 공간 바닥은 천장과 벽, 입점 브랜드, 공간 전체와 합을 이루며 통일성을 유지한다. 뿐만 아니라, '더 현대 서울'은 바닥을 공간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맞추어 사용한다. 공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살리고자 한 노력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층이 기반이 된 공간 기획에 따라 바닥질감이 모두 다르다.

기본적으로 [지상 1-4층], 5층, 6층 바닥이 각기 다르다. [지상 1-4층]의 바닥은  매장은 기존 백화점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매끈하고 고급스러운 바닥. 이 같은 바닥은 사람들이 응당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요구하는 인테리어 ‘기준’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이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말이 '식상'하다는 표현은 아니다. 기존 백화점 바닥 느낌을 사용했기에, 더사운드 포레스트가 위치한 5층 바닥이 더욱 디테일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매끈한 바닥 질감이 5층 사운드 포레스트에 들어서자마자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기존 백화점에 충실한 바닥을 사용한 지상2,3,4층.

사운드 포레스트가 자리한 5층은  벽돌 재질을 사용해 ‘걷는’ 느낌을 강조했다. 또 벽돌을 사용한 덕분에 걸을 때마다 신발 바닥에서 벽돌 질감과 벽돌 간의 높이차가 느껴진다. 이는 기존 백화점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다. 벽돌로 만들어진 거친 질감은 사운드 포레스트 내 식물들과 세밀한 높이차를 만들고 사운드 포레스트 안에서  ‘걷는다’는 느낌을 더 배가시킨다. 이렇게 더 배가된 촉감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오감으로 발전한다. 통로 폭도 유모차 3개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다. 지하 1층 F&B매장 바닥은 전구 색조명을 흡수하는 갈색과 아이보리색을 사용했다. 바닥이 공간과 통일감을 이루기 때문에 보다 부드러운 정서 속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5층 사운드 포레스트는 유모차 3대정도는 동시에 지나갈 정도로 통로 폭이 넓다.
사운드포레스트가 위치한 5층 바닥은 벽돌이다.

지하 2층은 재질과 색깔을 달리 한 바닥들은 공간마다 성격을 부여한다. 스타벅스 리저브와 [LSRxSTILL BOOKS] 매장 바닥은 패턴 문양을 사용해 지하 2층이 다채롭다는 걸 암시한다. 바닥에 벽돌을 사용해'걷는다’는 촉감을 극대화했다면 사운드 포레스트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특히 스타벅스 리저브와 [LSRxSrillbooks] 바닥을 보면 두 공간에 한해서만 바닥패턴이 잘 어울린다. 반면에 스타벅스 리저브 뒤에 자리 한 올세인츠 매장 앞 바닥은 스타벅스 리저브와 다르게 아이보리색 바닥이다.

2층의 바닥은 매우 다양한편.
바닥사용에 따라 느껴지는 공간감 차이는 매우 크다.

원형 조명.

원형 조명 사용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1층 코스매틱 매장이다. 코스매틱 매장은 브랜드 파워가 강한 하이엔드 패션매장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존재감이 미미해질 수 있다. 일단 앞서 말한 대로 코스매틱 브랜드 매장들 근처 대리석 벽에 브랜드 이름을 새겨 사람들이 보다 직관적으로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게 했다. 특히 기하학적인 느낌을 주는 원형 조명을 대량으로 사용해 바닥과 상하 대비를 만들었다. 이 덕분에 공간 위아래에서 기하학적인 공간패턴이 만들어진다.

 위는 곡선이다. 아래는 직선이다. 상하 대비를 통해 만들어진 기하학적 공간은 공간에 변주를 준다. 여기에 더해지는 부드러운 재즈는 코스매틱 브랜드가 가진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참고로 내가 방문했을 때 음악은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비지 아데어의 음악이었다. 지하 1층 F&B매장에서도 곳곳에 원형 조명을 사용해 공간에 산뜻함을 주었다.

각 층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원형조명을 사용해 공간에 변화를 주었다.


공간에 계절감을 넣는 '식물'사용.


식물은 어느 공간에서든지 항상 계절을 보여준다. 이 같은 점에서 식물은 다른 어떤 소재보다 뛰어나다. 특히 나무에 맞설 소재는 거의 없다. 봄에 움트는 새싹이 품은 싱싱함, 여름내 푸른 잎이 빚어내는 그늘, 가을 단풍, 헐벗거나 혹은 하얀 눈으로 가득 찬 겨울 풍경 등을 대신해줄 소재는 없다. 그나마 쉼 없이 변해가는 계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게 해주는 소재가 나무다. 나무는 공간에 깊이를 더하며 공간 안에 다양한 원근감을 만드는 일에도 사용된다. 이를 위해서는 나뭇잎의 색과 크기를 조정하면 된다. 잎이 큰 나무를 앞에 놓거나, 잎이 작고 가녀린 나무를 안쪽에 배치하면 원근감이 커진다. 특히 '더 현대 서울'내부 공간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촬영해보면 식물 사용이 매우 두드러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더현대 서울 내부 공간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촬영해보면 식물 사용이 매우 두드러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더 현대 서울 2,3,4층의 화분들이 원형이면서도 잎이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백화점 공간이 넓기 때문에 화분이 작으면 존재감이 미미해진다. 잎이 큰 식물이 있는 매장 뒤 상품은 차갑게 보이지 않는다. 이와 다르게 사운드 포레스트는 층 전체에 식물이 자치하는 면적이 많기 때문에 잎이 큰 나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공간 안에서 계절감을 끌어오는 일은 중요하다. 자연에는 사계절의 변화가 있다. 가을이면 경치가 황금빛이 되고, 봄이면 새싹의 청춘다운 색깔이 눈에 들어온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같이 금방 사라지는 아름다움도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자연을 느끼고 감동한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고, 자연이 가져오는 유연함과 진행이 있다. 기획에는 콘셉트,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등 다양한 변곡점이 존재한다. '나누고 완결'하기보다는 '진행'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연과 자신을 나누어 생각하면 안 된다. 자연은 사람과 언제나 연결되어있다.

도쿄 미드타운 히비야는 히비야 공원, 히가시고엔, 고쿄 등. 식물들이 주변에 많다.
도쿄미드타운 히비야는 창문을 통해 계절감을 공간안에 끌어오고, 공간 내부에 옥상정원을 설치했다.


만일 공간 안에 정원 같은걸 만들기 어렵다면? 채광과 소재를 이용해 부드러움을 만들고, 여기에 식물을 활용해 최대한 자연과 이을수 있는 '가교'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나 자연과의 상호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디자인은 디자인을 사용한 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소재가 가진 생명력을 존중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런 면에서 더현대 서울은 기존 현대백화점이 보여준 공간건축과 그 결이 다르다. 특히 사운드 포레스트는 이러한 시도가 돋보이는 곳이다. 그렇기에 지상 5,6층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지상[1.2.3.4] 층의 곡선 건물과 물소리와 연결되어 더현대 서울을 부드럽게 만든다.


더 현대 서울이 추구하는 공간은 '연결'이다.


더 현대 서울이 사람들과 추구하는 관계는 '연결'이다. 그렇기에 더현대 서울 공간은 부드럽다. 부드러운 건축은 공간에서 사람이 공간을 채우는 게 핵심이다. 더현대 서울은 이러한 면을 고려해 공간을 3 분할했다. [지상 1-4층], [5,6] 층과 [지하 1,2층]으로 집중시켰다. 이 같은 더현대 서울의 방향은 플로어 맵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하지만 자칫 공간이 지나치게 변화를 줄 경우 기존 고객들이 당황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현대백화점은 변화준 공간을 [지하 1-2층]과 [지상 5,6층]으로 분산시켰다. 이를 통해 기존 현대백화점 색깔을 유지한다. 그렇기에 더현대 서울에서 공간들은 흐트러지지 않고 각기 독립성을 가진다.

파노라마로 촬영해보면 지상 1-4,5-6층의 공간분할이 보인다.

기존 현대백화점의 공간과 다르게 (주)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에서 큰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매우 부드럽게 다가온다. 앞서 말한 대로 '더 현대 서울'을 하나의 군단으로 본다면 [지하 1,2층], [지상 1,2,3,4], [지상 5,6]은 군단 안의 백인대장이 이끄는 부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상 5,6] 층의 사운드 포레스트는 로마 군단 안에서도 다른 백인대장들보다 통솔 인원이 2배가 많은 제1백 인 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통상 로마 군단에서 백인대장은 80명의 병사들을 통솔한다. 하지만 제1 백인대장은 160명가량을 통솔한다.)

이 구조는 현대백화점이 ‘더현대 서울’ 안에서 수시로 자신들의 관점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샌드박스’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더현대 서울이 다른 백화점 공간과 차별점이 있는 이유는 '샌드박스'같은 요소를 공간에 담았기 때문이다. 만일 더현대 서울에서 '기대보다 심심한 공간'이라고 느껴졌다면? 오히려 현대백화점이 지향하는 방향. ‘서울을 어떻게 현대백화점 기준에서 볼 수 있을까?'라는 그들의 의도를 잘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관점을 유연하게 관리하기 위한 공간의 3 분할.]

부드러운 아이보리색은 이곳이 열린 공간. 부드러움을 지향한다는 걸 보여준다.

더현대 서울은 크게 공간을 크게 3가지로 나누었다. [지상 1,2,3,4] 층은 일단 [1,2,3,4층]은 기존 백화점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각 층에 입점한 브랜드 공간을 아케이드 형태와 시장형태로 완전히 분리시켰다. 공간 구획은 선명하게 했기 때문에 [지상 1-4층]은 간결하면서도 '소비'에 집중되어있다. 하지만 주방도구 및 침구류는 쇼룸 중심으로 입점시켜 기존 백화점 형태의 VMD를 개선했다. 이러한 면은 더현대 서울 플로어 가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더현대 서울을 각층 가이드를 보면 입점 브랜드 간의 간격이 미묘하게 물리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 입점 매장들은 기존 백화점 공간 논리를 벗어나지 않는 다.

기존 백화점의 매장들은 대체로 입점 브랜드가 '사각형'모양으로 입점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배치는 공간을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에서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입점 브랜드들을 유선형으로 배치했다. 게다가 유선형으로 밀집한 브랜드들과 건물 외벽을 둘러싸면서 개별 공간에 입점한 브랜드 간 긴 거리를 두어 입점 브랜드 간 '독립성'을 최대한 높였다. 이 덕분에 방문객들은 상품들을 편한 동선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브랜드를 충분히 볼 수 있도록 통로도 넓게 만들어 의도적인 적막함을 두었다. 이는 도쿄에 위치한 키테, 도쿄 미드타운, 신세계 센텀시티점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곡선'을 사용해 보다 말끔하다. {앞서서 포스팅한 글에서 더현대 서울의 '부드러움'을 서술했던 이유는 이러한 면면들을 보다 더 자세히 전하기 위함이었다.}


[개선과 실험이 돋보이는 지하 1,2층]

앞서 말한 대로 실험적인 매장들은 대부분 지하 2층에 입점하고 하고 있다. [지하 1,2층]에서 지하 1층의 F&B매장은 기존 백화점보다 공간을 조금 더 넉넉하게 잡았다.  지하 1층은 현대백화점 판교에서 느낀 답답함과 조밀한 공간 간격을 해결했다. 공간마다 거리를 많이 두고 '차량'같은 오브제를 두어 사람들이 보다 유연하게 F&B를 즐기도록 했다.  지하 1층 곳곳에 식물을 설치해 계절감을 끌어오는 일에도 힘썼다. 또한 꽃집을 입점시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물론 이 같은 구조가 새롭지는 않다. 이와 비슷한 구조는 고메 494와 신세계 본점 지하 식당가와 SSG 푸드마켓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은 지하 1층에서 6층까지 구조가 통일되어있어, 동선이 깔끔하다. 또한 지나치게 차분한 신세계 본점과 다르게 '더현대 서울'은 조금 더 아늑하다. 같은 톤을 유지하는 바닥도 이러한 공감 감에 기여한다. 게다가 지하 1층에서는 꽃집과 식물 여기에 원형 조명 사용, 나무기둥을 연상케 하는 천장과 전구색과 주광색 조명의 채광도 사람들이 보다 편하게 음식을 먹는데 기여한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어 공간이 활발하지 않지만, 코로나19 이후 공간감은 지금보다 아늑하면서도 시끌벅적할 것으로 보인다.

지하 2층은 공간 자체에 '자유'를 넣기 위해 실험한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일단 조명은  어두운 주광색에서 전구색까지 다양하게 사용했다. 공간 구획마다 조도가 제각각이라서 입점 브랜드들이 바뀌어도 그들만의 색깔을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입점 브랜드마다 다르게 사용하는 조명 색깔도 이러한 실험에 기여한다.

지하 2층에서 공간에 가장 힘은 넣는 곳은 스타벅스 리저브와 'LSRX스틸 북스'다. 스타벅스 리저브의 묵직한 갈색은 공간에 무게감을 넣는다. 그 옆에 '나이스 웨더'와 '번개장터 랩', '나이키 라이즈'까지 공간 힘이 분산되도록 돕는다.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번개장터 랩, 나이스 웨더, 반스, 나이키 라이즈까지 점차 날것의 느낌으로 바뀐다. 특히 매장명을 알려주는 LED간판은 이러한 성격을 보다 선명하게 만든다.


[지상, 5,6층:다양한 식문화를 공간감으로 즐기게 돕는 사운드 포레스트]

사람들이 사운드 포레스트에서 식물과 함께 시간을 즐긴다. 나무와 돌들이 사운드 포레스트에서 구체적인 방향과 구심점이라면? 음악은 이를 유지시켜주는 윤활유와 같다. 사운드 포레스트의 곡선미는 공간을 부드럽게 만든다. 말끔한 돌이 아닌 걷는 느낌을 주는 사운드 포레스트의 벽돌 바닥은 사람들의 촉감을 더욱 배가시킨다. 보통 백화점 바닥은 말끔하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전 바닥은 깔끔하고 부드럽다'라는 인식을 뒤집어엎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사운드 포레스트에서 얻는 경험은 완전히 새롭다. 사운드 포레스트의 경험은 식물이 아닌 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아도 무관하다.

이렇게 바닥, 식물, 곡선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그 안에 입점한 브랜드들을 보다 부드럽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공간 자체를 부드럽게 느낀다. 블루보틀 더현대 서울점만 해도 역삼점에서 느낀 쾌활함이 밖으로 나와 사운드 포레스트와 조화를 이룬다. 또한 사운드 포레스트 자체가 더현대 서울 내 차가움, 백화점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루해지는 걸 막는 환기시키기도 한다.


[지상 5.6층]은 사운드 포레스트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통해 음식문화를 즐기도록 했다. 그렇기에 사운드 포레스트가 공간을 이끄는 지상 5.6층은 유럽풍의 ‘우아함’이 돋보인다. 그와 다르게 지하 1층은 뉴욕과 도쿄 같은 트렌디함이 좀 더 우선시한다. 사운드 포레스트의 분위기와 지하 2층의 실험적인 공간은 현대백화점이 가진 '기존 백화점으로서 한계'라는 결점을 보완한다.

기존 백화점들은 브랜드에게 '실험장'이 되지 못했다. 단순히 브랜드들만 넣은 공간에 불과했다. 백화점이 '유통'을 쥐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의 [지상 5,6층]과 [지하 1,2층]은  백화점도 공간을 통해 취향을 '제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앞서 말한 두 개 층은 그동안 백화점이 보여준 결점을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현대 서울의 '3 분할공간'은 기존 백화점을 고객 수요를 비롯해 MZ세대까지 끌어들이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사운드 포레스트를 통한 식도락과 즐김을 나눈 경험을 강조한 공간이다. 특히 이러한 오브제 같은 VMD는 죽는 공간에 사용해 공간이 최대한 죽는 걸 방지한다. 공간에 대한 유기적인 해석이 좋다. 여기에 전구 색조명을 일괄적으로 입점 브랜드들이 사용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기에 천장에서 들어오는 채광은 인공 빛과 자연빛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킨다. 무엇보다 5,6층에서는 빛이 상점가로 둘러싸여 자칫 차갑게 변하기 쉬운 공간들을 보완한다.

통유리를 사용해 자연을 공간 안으로 끌어오는 건 공간 크기와 상관없다. 주변의 소소한 자연을 공간으로 끌어온 야쿠모 사료.

보통 건물에 자연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통유리를 사용하거나, 공간에 꽃꽂이, 화분을 가져온다. 더현대 서울에서는 사운드 포레스트를 제외한 각 공간에 화분을 사용해 계절감을 끌어온다. 하지만 블루보틀같이 꽃이 아닌 녹색식물이라서 계절감보다는 녹음을 끌어온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러한 면은 단순히 더현대 서울 공간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주변 지리를 볼 필요가 있다. 도쿄 미드타운 히비야와 롯폰기 같은 경우 히비야는 히비야 공원과 고쿄가 있어서 통유리를 통해 주변 자연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이와 다르게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는 부지 주변에 잔디밭을 설치하고 잔디밭과 연결된 구역 벽을 모조리 통유리와 좌석을 설치해 계절감을 극대화한다.

공간과 주변지리는 공간의 성격을 정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다.

하지만 더 현대 서울은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이 있지만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다. 파크원 1,2 빌딩 구조상 주변에는 빌딩 숲이다. 설령 통유리가 있다고 해도 주변 자연을 끌어오기 힘들다. 그렇기에 건물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과 사운드로 페스트의 식물들. 그리고 인공 폭포가 녹음을 만든다. 오히려 인공 식물원 같은 분위기. 창이공항이 사용한 방식 혹은 샤넬 오뜨꾸띠르 쇼에서 사용한 정원과 유사하다. 오히려 사운드 포레스트는 인공정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18 샤넬 오뜨꾸리로쇼. 쇼를 위해 설치된 인공정원에 우리는 잠시나마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 출처:넷플릭스,샤넬.


사운드 포레스트는 인공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인공정원이라도 계절감은 충분히 더현대 서울 안으로 가져온다.

'이탈리'가 입점한 곡선 철골 구조물을 보면 파리에 위치한 그랑팔레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인공정원은 더현대 서울 공간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에 기여한다. 그렇지만 사운드 포레스트는 물성이 약하다. 자연을 그저 부분적으로 모사한 인공정원 혹은 인공 식물원 정도다. 인스타그래머블하게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놀 수 있게 만든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공학적으로 보면 5층 건물 위에 흙을 깔고 식물원을 만들기 어렵다. 건물 하중이 견뎌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공학적으로 물성을 강조한 진짜 숲을 만들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 놀이동산 수준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백화점은 자본주의가 만든 놀이동산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사운드 포레스트는 그 목적에 충분히 부합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임시로 가벽이 된 화분들.

사운드 포레스트와 연결된 6층은 화분을 파티션으로 활용해  일시적인 취식 공간을 만들었다. 허 자먼 이는 어디까지나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한 일시 방편이다. 상당히 난잡한 구조이지는 하지만, 이는 코로나 상황이라는 걸 고려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걸 고려할 필요도 있다. 블루보틀 같은 경우 사운드 포레스트 내 가운데 들어간 공간에 입점해 블루보틀 브랜드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은 블루보틀 다이마루 커피 스탠드와 비슷하다.

더현대 서울 근방 모습. 빌딩으로 가득하다.

나는 앞 선글라스에서 '더현대 서울'과  '도쿄 미드타운 롯폰기'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다. 모든 공간은 같을 수 없다. 위치에 따라서 공간이 갖는 힘도 다르기 때문이다. 롯폰기는 그 자체로 ‘고급’이라는 분위기가 주변을 흐른다. 하지만  우리는 여의도에서 ‘청담’ 혹은 ‘한남동’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의도는 마천루가 가득한 지역이다. 어떤 면에서 다소 건조한 공간이다.

궁궐이 공간감을 이끌고, 조밀조밀한 골목길을 가진 종로와는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더현대 서울은 여의도, 마천루, 한국 자본시장, 정치 등. 지금의 서울에서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전해 야할지를 고민할 공간이다. 앞서 말한 롯폰기와 다르다. 내가 비교한 이유는 단순히 ‘느낌적인 느낌’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더 현대 서울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브랜드 입점을 통한 현대백화점만의 큐레이션이 아니다. 화려함과 멋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부드러운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게 하려는 공간 장치가 많다. 이런 면에서 더현대 서울은 여러 편집샵을 합친 형태에 가깝다. 오히려 현대백화점이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무척 많다. 그렇다고 현대백화점이 방향을 급진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더현대 서울은 기존 백화점 공간 논리에 충실한 점진적인 변화에 초점을 둔다.

1층에서 4층까지는 기존 백화점 공간 논리를 사용한다. 동시에 직관적인 안내와 죽은 공간, 공간 동선을 통해 사람들이 공간의 주인공이 되도록 노력한다. 반면에 지하 1,2층은 기존 백화점과는 다른 공간과 브랜드 큐레이션에 가깝다. 특히 지하 1,2층 은 '마루이 마루이 백화점 유락초'점과 유사한 면이 많다. 오히려 마루이 마루이 백화점 유락 초점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직선적인 공간 전개를 원형 조명과 식물을 통해 유기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간을 어떻게 분할하는가에 따라 콘텐츠도 달리 진다. 이런 면에서 더현대는 자사의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공간을 만들었다.

반면에 5,6층은 기존 백화점이 전하지 못한 백화점만이 가진 특유의 ‘우아함’을 사운드 포레스트와 식당코너를 통해 전개했다. 특히 사운드 포레스트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블루보틀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 레고, 삼성, LG 가전은 백화점이 가져야 할 공간을 충분히 구현하는데 일조한다. 글 초입에 이야기한 카이사르가 보여준 ‘로마다움’. 현대백화점은 더 현대 서울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공간 느낌을 현대백화점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을 어떻게 분할하는 가에 따라 콘텐츠도 달라진다. 이런 면에서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이라는 '자신들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공간을 만들었다.


이제 백화점은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건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할 수 없기에  ‘완벽’에 수렴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가능해진다. '더현대 서울'도 마찬가지다. 이제 막 문을 연 '더 현대 서울'은 아직 뭔가 완벽하지 않다. '더현대 서울'에서도 오프라인 공간이 가진 기획과 공간 디자인의 한계가 보인다. 사운드 포레스트에서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음악은 매우 거칠다. 또한 거칠게 나오는 스피커 주변에 식물을 배치해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도 크다. 음악은 뭉개지고 주변 공간감은 산만하다. 뭉개지는 음악소리 옆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는 그저 오브제에 불과하다. 인스타그램 사진용 소품일지도 모르지만 전체 공간과는 겉돈다. 사운드 포레스트라고 해도 사실은 화분으로 만들어놓은 인공 정원에 불과하기에 ‘식물’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이 강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연과 비교해서 말이다.

사진 속 그랜드 피아노는 화분에 묻혀 존재가 미미하다.
사운드 포레스트의 많은 식물은 화분이다.

입점 브랜드들 중에서도 브랜드에 맞는 정체성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브랜드들도 있다. 라이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타 백화점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는 점에서 '새롭지만' 새롭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세부적인' 사항이고 개선하면 된다. 정작 가장 문제는 부드러운 공간이다. 부드러운 공간은 ‘공간’은 언제나 사람이 채워야 한다. 그렇기에 더 현대 서울은 ‘사람’이 없다면 색깔을 내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 보면 '더현대 서울'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제안들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화분을 사용해 거리두기 4단계에 맞추어 급하게 취식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코로나19 탓이 크다. 실제로 '더 현대 서울'을 둘러보면 '코로나19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오프라인 콘텐츠 전개가 매끄럽지 않다.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많은 공간들은 착석 금지가 되어있으며 취식 공간도 제한되어있다. 게다가 6층에서는 취식 공간 확보를 위해 화분으로 임시 벽을 만들었다.

거리두기4단계로 인해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을 수 없다.

하지만 오픈 초기의 '더 현대 서울'을 담은 사진을 보면 1층 분수대를 비롯한 여러 공간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공간을 채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부드러운 공간이 가진 전형적인 특징이다. 부드러운 공간은 사람들이 알아서 공간을 채운다. 공간 자체가 편안하니까. 그렇기에 더현대 서울은 코로나가 '종식'된 시점부터 다시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나면 내가 위에서 말한 몇몇 '한계'들은 더욱 개선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가 적은 글들은 단편적인 ‘지적’에 불과하다. 동시에 나 스스로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된 '공간 경험'을 한 면도 적지 않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그게 아니다. 가까운 미래의 백화점은 그들 스스로가 ‘관점’을 제안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더 중요하다.


[백화점은 가까운 미래의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을 알려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코로나 이후, 6개월, 12개월 뒤의 백화점은 어떤 모습일까? 

백화점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19세기 후반은 유럽 안에서 과거 왕실과 소수 귀족에게만 한정되었던 소비문화가 중산층을 향해 확장되던 시기였다. 귀족들만이 누리던 카페 문화는 부르주아 계급에게 퍼졌다. 이 같은 면은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가 그린 그림들에도 잘 나와있다. 아케이드와 백화점은 소비욕망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과거 상점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 '흥정과 거래'만이 이루어졌다. 하나 아케이드와 백화점에서는 상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욕구가 이를 대신한다. 백화점 안에서는 '정중한 상품 안내'만 존재한다. 또한 아케이드와 백화점은 각각 독립적인 공간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둘은 하나로 만나 복합 상업건축으로 진화했다. 백화점이 아케이드를 백화점 안으로 끌어 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필드 코엑스 같은 곳이다.

르누아르가 그린 '뱃놀이 일행의 오찬'. 이 그림에서 나오는 문화는 과거 귀족들이 향유하던 문화였다.

아케이드와 백화점은 수세기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아케이드는 상점의 수평적 형태 변화에 불과했다. 백화점은 상점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게 전부였다. 백화점 인테리어가 화려한 이유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빈약한 콘텐츠를 감추기 위함이다. 백화점은 넓은 내부 공간을 지탱하는 강한 구조와 백화점을 돋보이게 할 인테리어와 튼튼한 건축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상점의 '수평과 수직' 개념을 아예 없애버린 게 온라인 쇼핑몰이다.


온라인 커머스는 그런 게 필요 없다. 소비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UI와 간편한 결제 과정만 있으면 된다. 뿐만 아니라, 호스트 비용만 낸다면 공간은 무한대로 확장 가능하다. 그 상징성을 가진 기업은 단연코 아마존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스타일을 ‘제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아마존은 언제나 ‘고객이 원하는 효율’에 중심을 둘뿐이다. 아마존은 백화점이 가진 모든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철저히 고객중심으로 접근했기에.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구매’만을 위해 백화점에 가지 않는다.

도쿄미드타운 히비야, 긴자식스는 '긴자'라는 입지덕분에 공간브랜딩이 가능했다. 입지는 상업부동산 브랜딩에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에 공통된 상점들의 성공을 위한 조건은 한 가지다. 입지다. 상점의 성공은 위치가 모든 걸 결정한다. 예를 들어 도시내 백화점과 복합 상업건축은 사람들이 발길이 낮은 지하철 주변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제 입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입지가 나쁘더라도 SNS를 활용하면 극복이 가능한 정도다. 오히려 그동안 100년 넘게 변화가 없던 공간은 이제 완전히 정체성을 바꿔야 할 정도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지금 시대가 상점의 변화의 상승 사이클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이 같은 ‘상점=입지’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편집'의 관점에서 입점브랜드를 봐야한다.

백화점은 가까운 미래의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이 무엇일지 알려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물건을 가져다 놓고 백화점을 만든 개인 혹은 기업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대형 쇼핑몰.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쇼핑’이란 무엇인가?‘소비란’ 무엇인가?라는 그 자체에 이미지를 부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곳이다. 10년 전만 해도 백화점에 가면 좋은 물건들이 있었다. 스타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아는 대로 좋은 물건과 가격대, 스타일은 이제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GAN(Generated Advanced network) 같은 기술은 온라인상에서 의류 등을 더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AI모델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술변화는 쇼핑몰과 백화점이 가진 모든 이미지를 가져갔다. 이미 몇몇 기업들은 인공지능으로 만든 모델을 통해 인스타그램에서 홍보한다.

건물의 높이와 상관없이 백화점은 언제나 사람을 보아야 한다.

건물이 높게 올라간다. 사람이 땅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람이 땅과 만나는 지점이 더욱 중요해진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도 공간은 ‘높이’와 상관없이 브랜드와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곳. 그 자체가 중요해졌다. 이제 공간의 ’ 용도’보다는 공간 '구조’가 더 중요해졌다. 상점과 카페, 주변 길과 브랜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광장 같은 공간. 연결의 구심점이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코로나 이후 공간이 지향할 방향은 확장이 아닌 연결이다. 코로나19는 온라인으로 어떤 만남까지 가능할지 그 한계를 시험했다. 오히려 코로나19를 통해 사람들은 ‘공간’보다‘연결’이 더 중요해졌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 사람과 사람 간 연결. 브랜드의 아름다움을 사람에게 연결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 이것이 브랜드와 공간이 지향할 방향이다.


고정된 건물이나 구조물에 집중하면 그곳을 사용하는 개인. 그 안에서 이루어진 관계들을 읽을 수 없다. 단순히 소재를 통한 부드러운 건축이 아닌,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스며드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공간을 조성하는 기획자들은 공간건축 ‘그 자체’ 이전에 공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합’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통해 어떤 아름다움의 ‘결’과 ‘관점’을 전할지 고려해야 한다. 더현대 서울도 여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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