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꼭 이렇게 살아야 해?
문득 2~3월까지는 버티기 힘든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던 신년운세가 떠오른다. 2월은 야근과 투자생활로 절정의 피곤함을 달리던 시기였고, 3월 역시 힘들긴 했지만 3개월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기여서 조금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작 이틀을 남기고 이렇게 될 줄이야. 그래서 더욱 무력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렇게 한번 무너진 마음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바닥이 어디인지, 있긴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아내와의 대화를 하고, 우선순위에 대해 고민을 한 결과 가장 후순위였던 그 지긋지긋한 직장이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의미가 중요한 사람에게 무의미라는 것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직장은 내 삶에서 가치를 잃어버렸고,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길었던 내 직장생활이 끝났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4월 1일. 내 인생에서 없을 것만 같던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퇴사를 전제로 육아휴직 하겠습니다.”
물론 휴직과 퇴사를 말하기까지는 상당히 부담감이 있었다. 개인 성향이 한번 말하면 끝까지 가야 하는 고지식한 타입이라 이런 결정을 내뱉는다는 것이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 측면에서는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서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하고 바쁜 시기인데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심지어 다들 고려하지도 않는 육아휴직을 하겠다니….
말을 꺼내면 무슨 말을 들을까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욕까지 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의욕이 전혀 없는 상태로 회사를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팀원들에게도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나로 인한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TO (새롭게 인원을 뽑을 수 있는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다 말했다. 퇴사를 생각하고 있고 육아휴직을 쓰려고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주 멍청한 선택이었다. 회유와 협박이 오고 가면서 정작 내 마음은 더 피폐해졌다. 나를 배려한다는 말로 플렉시블 근무를 제안했지만 어차피 일 자체에 마음이 떠난 상태라 큰 의미는 없었다. 아주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내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일이 바빠지면 나만 제시간에 퇴근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받아들인다면 결국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선택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나름의 배려가 담겨있는 제안이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다음 이야기는 휴직 말고 당장 퇴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름의 배려를 하려고 했던 꺼냈던 나의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나를 공격했다. 앞으로 유일한 수입원이 될 육아휴직 수당 112만 5천 원을 포기하라는 의미라는 것을 저 사람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자신이 얻는 이득은 도대체 무엇인가? 3년이라는 나의 시간이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더 이상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책임은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직에 들어가는 시기를 팀장님이 바라던 대로 2달 미루기로 협의했다. 가장 바쁜 시기를 넘길 수 있도록 내가 큰 역할은 아니겠지만 자잘한 도움은 될 수 있으리라. 덕분에 처음의 서로 불편했던 마음은 조금씩 사라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사무실에서 서로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었다. 부디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기를.
고작 3일이었다. 내 인생이 바뀌는 그 순간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남의 시선을 생각할 만큼의 여유로움이 내 마음속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