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인간 Nov 24. 2021

어중간하고 애매한 인간


 어중간하고 애매하다.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라며 새삼스레 놀라워한다. 그리고는 올 한 해 나는 어떤 시간을 보냈는가 되짚어본다. 명확하게 떠오르는 사건은 없고, 그저 희미하게 머릿속에 두 단어가 떠오른다. ‘어중간하다’와 ‘애매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을 살고 있다는 걸 무의식이 눈치채고 있었나 보다. 사실, 올 한 해만 그런 게 아니다. 작년도 재작년도,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나는 어중간하고 애매한 시간을 살아왔다.


뛰어나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성적을 유지해서 명문대도 아니고 지잡대도 아닌 그 어디 어중간한 대학을 나와 복지와 임금이 애매한 직장들을 거쳐 위치와 집값이 애매한 곳에 살고 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시간에 쫓겨 떠밀리듯이 확신을 갖지 못한 결정을 하고 만다. 넓디넓던 인간관계 역시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연락이 뜸해지고 애매한 관계들이 정리되어 믿기지 않게 좁아지고 말았다. 

심지어 “뭐 먹고 싶어?”라는 일상적인 물음에 한참 답을 내놓지 못한다.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지금 먹고 싶은 게 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애매하게 말끝을 흐리다가 결국 “난 아무거나 다 좋아. 네가 먹고 싶은 거로 해.”라는 대답을 한다.


이렇게 어중간하고 애매하게 살아온 인간은 앞으로의 남은 인생도 아마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할 확률이 매우 높다.




어중간하고 애매하다는 말은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운 뉘앙스를 풍긴다. 마치 노력 따위는 하지 않는 생각 없이 멍한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는 대단한 능력일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뒤쳐지는 것 없이 중간의 위치를 유지했다는 거다. 문제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데, 중간에서 머물렀다는 데 있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상위로 갈수록 버티고 있을 자리는 좁아진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어중간하고 애매한 인간이라 불행한가. 

불행하지는 않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꼭대기에 한 번쯤은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풀어지지 않는 욕망 때문에 인생이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지워낼 수 없다. 


지금까지 어중간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내가 노력해서 성취하고 싶은 분야 한 곳에서만큼은 애매한 위치를 벗어나 보고 싶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벗어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어중간한 위치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바둥거리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못 먹어도 G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