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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Jun 26. 2022

빵점이어도 괜찮은 거니

진심인 거니...


- 엄마! 20점은 어때?

- 뭐? 20점? 20점은 공부를 아예 안 한 거 아닐까?

- 그럼 40점은?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며, 내 눈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당황스러움과 어이없는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갈무리하며 최대한 자상하게 말해주었다.


- 몇 점을 받든 그건 네 점수인데, 왜 엄마한테 물어봐? 높은 점수를 받으면 네가 좋은 거고, 낮은 점수를 받으면 네게 안 좋은 거지~

- 아~


아이는 뭔가 깨달았다는 짧은 감탄사를 남기고 별일 없었다는 듯 자기 할 일을 하러 사뿐히 돌아갔다.



다음날 학교에서 덧셈 뺄셈 수행평가를 보는데, 연산에 약한 아이가 걱정되었다. 집에서 연습문제라도 한번 풀려보자 싶어 문제지를 내밀며 “내일 시험 잘 볼 수 있겠어?”라는 물음에 아이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저 자신만만한 표정과 대답은 어디서 나온 걸까. 너... 덧셈 뺄셈 잘 못하잖아... 매일 틀리면서.

그리곤 잠시 후, 아이가 점수 이야기를 꺼낸 거다. 반짝이는 눈으로 20점은 어떠냐며. 본인이 생각하기에 20점은 충분히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 이건 내 실수다. 

    






 나의 아이는 본인이 잘하지 못하는 일은 하려 하지 않고, 풀이한 문제가 틀리면 속상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였다. 엄마인 나는 아이가 도전하기 두려워하고, 공부에 흥미를 잃을까 걱정되어 매번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말해주었다. 뭐든 처음은 어려운 거고 그래서 배우는 거니, 못해도 상관없다고. 연습하면 다 잘할 수 있다고. 틀린 문제는 이번에 잘 알아두었다가, 다음에 맞추면 되는 거라고.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네가 정확히 알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10문제 중 반 이상을 틀려도 괜찮다고 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오해한 모양이다.

     

작년,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이는 매주 목요일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 매우 친절하게도 선생님은 받아쓰기할 문장을 미리 프린트하여 나눠준 뒤 집에서 연습해 시험 볼 수 있게 했다.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쓰면서 소리 내어 읽기를 시켰는데, 아이는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5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온갖 짜증을 내었다. 한날은 온 세상 짜증을 다 흡수한 듯한 아이의 얼굴에 공책을 덮게 했다. 


-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 지금 그 상태에서 해봤자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아.

- 싫어어~~~! 할꺼야아~~~~!~!!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네 인생에서 받아쓰기가 얼마나 중요하겠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런데 네 기분이 이렇게 나쁜 건 중요해. 하지 말자. 받아쓰기하지 않아도 돼.


아이는 울다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금세 울음을 그치고 장난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래. 하지 마라. 빵점을 받아봐야 네가 창피한 줄 알고 스스로 공부하겠지.   

하지만, 나의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 엄마~! 나 40점 받았어~~~~!


가방을 놀이터 벤치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뛰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저 아이를 어찌할꼬. 내가 너무 공부도 안 시키고, 괜찮다 괜찮다만 한 건가. 그래도 빵점일 줄 알았는데, 용케 4개나 맞았네. ‘꼴찌해도 괜찮아’, ‘1등이 아니어도 괜찮아’ 이런 류의 동화책을 읽어준 게 잘못인 걸까. 근데 저 아이는 낮은 점수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아 하네. 위축되지 않는 건 다행인데, 이걸 어쩔꼬.

이러한 고민을 주변에 이야기하며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1학년은 1학년이니 그럴 수 있다고 했지만, 2학년이 되어서도 상황은 같았다. 슬슬 그 무렵부터 아이에게 잘하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식탁에서 발을 까딱이며 연습문제를 푸는 아이 앞에 앉아 말을 건넸다.


- 뭐든지 잘하면 좋은 거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으면 뿌듯하고 좋잖아?

- 그런데 엄마. 틀려도 괜찮아. 부끄러운 거 아니야.

- 그건 맞는데, 열심히 했는데 틀리는 거랑 하나도 하지 않고 틀리는 거랑은 달라. 공부 하나도 안 하고 20점 받으면 창피하지 않겠어?

- 아니? 우리 반에 OO이도 20점인데.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점수 낮다고 그 친구 놀리면 안 돼.

- 나도 알아~

- 점수가 낮게 나오면 창피하지 않겠어?

- 괜찮은데? 


그래.. 네가 괜찮다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큰일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가 푼 문제집을 채점했다. 틀린 문제는 V자로 표시했다가, 다시 풀이해 정답을 맞히면 V 위에 갈매기 모양을 그려 하트 모양을 만들어 준다. 하트 뿅뿅!

문제지 위에 하트가 날아다닌다. 아이는 하트를 보고는 재미있다며, 본인이 그리겠다고 나섰다. 하트는 진화되어 아이스크림 모양이 되기도 하고, 꽃다발이 되기도 한다. 예전처럼 틀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덜 받아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 뭣이 중헌디. 계속 틀리다 보면 맞추는 날도 있겠지. 그 과정이 괴롭지 않으면 절반은 성공한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내년쯤엔 높은 점수가 좋은 거라는 걸 알아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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