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인간 Nov 09. 2021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자세

엄마도 모르는 게 있어


 궁금한 것이 생기면 아이는 곧바로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을 통해 아이의 지적 성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물을 가리키며 “이건 뭐야?”라고 이름을 알아내기 위한 질문부터 초등학교 1학년생인 요즘은 단어의 뜻을 가장 많이 물어봅니다. 단순한 사물의 이름부터 단어의 뜻까지 질문의 수준이 상당이 높아졌습니다.


질문하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 강력하고 순수한 호기심이 느껴져 기특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답은 꼭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질문을 해오면 제대로 답을 해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질문에 간혹 귀찮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귀찮다니. 30년 전 나의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엄마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긴 어린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질문을 합니다. 어떤 질문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엄마의 뒷모습과 말투와 주방의 모습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질문하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엄마는 등을 보인 채로 대충 답해줍니다. 엄마의 답 안에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겨 또 질문했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눈을 마주쳐 주지도 않고 개수대에서 채소를 다듬으며 귀찮음이 가득 베인 말투로 말했습니다. 

“사전 찾아봐.”


무안해진 나는 내 방으로 쪼르르 들어가 사전은커녕 질문 자체를 잊고서 다른 놀이를 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호기심이 많은 만큼 질문도 많았던 나는, 그 후로 엄마에게 질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등을 보이며 짜증스러운 말투는 어린 나에게 호기심을 억누르는 촉매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큰 후, 가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별거 아닌 사소한 일이었을 수도 있는데, 어린 나에게는 아니었나 봅니다. 당시 엄마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되며, 미래의 내 아이에게는 답변을 정성껏 해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된 지금은 30년 전 나의 엄마가 왜 그랬었는지 이해가 되긴 하지만 여전히 납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모르는 게 있으면 어른에게 물어봅니다. 어른은 뭐든 다 알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어른이라고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식의 깊이는 나이와 상관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질문을 해오면 아는 것은 대답해 주고, 모르는 것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엄마도 잘 모르겠어. 우리 같이 찾아볼까?”


최근엔 단어의 뜻을 물어보는데, 분명 알고 있는 단어인데, 뜻을 설명하려니 말문이 막힐 때가 많습니다. 뜻을 알지 못하면 그 단어는 모르는 거라고 하던데요. 정말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단어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국어사전을 샀습니다. 아이가 질문을 하면 같이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사실 바쁠 때 질문을 해오면 “모르겠어~”라며 얼버무릴 때도 간혹 있지만, 되도록 대답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꺾어버리기 싫으니까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만약 30년 전 나의 엄마가 귀찮은 투로 무안을 주지 않고 “엄마도 잘 모르겠으니, 사전이나 책에서 한 번 찾아봐.”라고 말해줬더라면. 나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만큼 쏟아져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엉뚱하고 황당한 질문이었더라도, 그 속에서 생각이 발전하여 상상력이 깊어지고 사고가 발달하였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아이와 대화할 때는 꼭 눈을 마주 보고, 생각을 존중해주리라 다짐합니다. 실언으로 아이의 호기심 세상을 무너트리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8년 만에 연락 한 그가 청첩장을 내밀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