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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Nov 11. 2021

단짝 없는 게 엄마 탓인가요


 ‘아이가 1학년이면 부모도 1학년이다’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 입학하고 아이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건 모든 학부모의 공통적인 마음이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릴지. 수업 시간에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을지. 화장실은 혼자서 갈 수 있을지. 머리로는 아이를 믿어야지 하지만, 마음은 학교생활 하나하나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이는 유치원 때도 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물어봐도 “음.....”하며 조금 생각하는 듯하다가 “몰라!”라고 말하기 일쑤였다. 보통 여자아이들은 물어보지 않아도 하나에서 열까지 다 이야기한다던데, 우리 아이는 해당되지 않았다. 


유치원이야 선생님과의 소통이 원활한 편이니 큰 불편을 못 느꼈는데, 학교는 달랐다. 아이가 말을 해주지 않으면 학교생활을 알 방도가 없었다.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말만 일관하니, 나도 점점 묻지 않게 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1학년 아이들은 학교 옆 공원으로 우르르 나와 뛰어놀기 시작한다. 엄마들은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대부분 3, 4월은 학원 대신 잠깐이라도 놀린다. 때문에 공원은 아이들로 바글바글 했다. 80명인 1학년이 거의 다 나와 있는 듯했다. 


공원 한쪽에 서서 아이가 노는 것을 보니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학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지켜보았다. 2주가 가고, 또 2주가 가서 한 달이 지나도록 아이가 겉도는 게 보였다.

 

애가 탔다. 어디 물어볼 곳도 없어,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아이 자존감’에 대한 책을 읽었다.

책의 결론은 ‘아이를 믿고 기다려라.’였다.


나도 이미 이론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단단하게 먹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곤 했다. 



    

입학한 지 한 달이 지나 학부모 상담기간이 되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이가 학교생활을 씩씩하게 무리 없이 잘해나가고 있다고 했다. 다만 단짝이 없다며 걱정을 하셨다.

1학년이 단짝이 꼭 있어야 할까 의문이 들어 물었다.

“단짝이 꼭 있어야 하나요?”

“여자 아이들은 있는 게 좋더라고요. 저도 딸이 둘인데, 경험상 여자 아이들은 단짝이 있어야 학교생활을 더 잘할 수 있어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이시니 틀린 말씀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내가 난감해하자 선생님께서 ‘단짝 친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세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첫째, 친구와 학원을 같이 다닌다.

“어머님. 아이가 단짝 친구를 만들기 가장 좋은 방법은 학원을 같이 다니는 거예요. 지금 OO이가 학원을 어디 어디 다니고 있죠?”

“태권도 다니고 있어요.”

“아이들 대부분 3~4군데의 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 같아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이 밖에서 잘 못 노니 학원에서 많이 친해지더라고요.”

친구를 사귀기 위해 학원을 간다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 방법은 앞으로도 절대 실천하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둘째,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친해져 아이들도 친해지게 한다.

“어머님이 다른 어머니들과 친해지셔서 아이들 데리고 자주 만나셔야 해요. 저희 딸도 1학년 때 제가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못해줘서 많이 속상해하더라고요.”

엄마가 만들어준 친구가 과연 진짜 단짝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자리를 마련해도 성향이 맞지 않으면 단짝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목적을 갖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내 친구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그 엄마와 친해지려 노력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셋째,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자주 만나서 놀게 한다.

“어디 보자.... 우리 반에 OO이랑 같은 아파트 사는 친구가 여자 친구는 OO이 한 명뿐이네요. 제가 다음 달 자리 바꿀 때 가까이 앉히도록 하겠습니다.”

“아... 선생님. 사실 지금 다니는 태권도장에 그 친구와 같이 다니고 있기는 한데요. 성향이 맞지 않는지 그리 친해지지 않더라고요.”

성향이 맞지 않는 아이와 자주 만나봤자 놀이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위의 방법에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수많은 의문을 뒤로하고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놀이터에도 매일 가고, 같은 반 아이들과 숲 체험도 하고, 태권도도 반 친구들이 많은 시간대로 보내기도 하고 나름 노력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는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속이 상했다. 놀고 있는 걸 지켜보면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듯했다.  



   

다시 선생님의 조언을 끄집어내 생각해 봤다. 처음엔 조급함에 내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말에 의존하여 판단하고 실행했다. 뭔가 뒤틀린 느낌이었다. 

위의 세 가지 방법 모두 엄마가 개입되어 있다. 모두 엄마가 노력해야만 하는 일인 거다. 학원을 보내는 것도, 엄마들과 친해지는 것도, 같은 아파트의 친구와 붙여주는 것도. 

선생님의 조언에는 '엄마의 노력이 부족해서 아이에게 단짝이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친구를 사귀는데, 왜 엄마가 개입되어야 할까.

저학년 때는 아이 친구를 만드는 데 있어 엄마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오롯이 공감할 수 없다. 아이는 스스로 경험을 해봐야 한다. 친구와 대화하는 방법과 친구와 함께 놀이하는 법 등을 말이다. 

엄마가 개입해 버리면, 아이가 경험할 기회들을 모조리 박살 내는 것과 같다. 나름의 좌절과 어려움을 겪어내며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는 게 맞다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조언한 방법대로 엄마가 직접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닌, 아이가 놀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해 주고 믿어주는 거다.

놀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해 준다고 해봤자 별건 없다. 매일 아이가 공원과 놀이터에서 놀고 싶을 때까지 놀게 하는 거다. 하지만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크다. 그러니 밥을 든든히 먹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놀이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잘 헤쳐 나가리라 믿고 계속 지켜보는 거다.

그렇게 1학기가 흘러갔다. 

    

2학기가 시작되고, 아이가 변하는 게 보였다. 친구들과 어울림이 자연스러워졌고, 즐거워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단짝은 없다. 그래도 성향에 맞는 친구를 만나면 어려움 없이 잘 어울리니 다행이었다.

아이는 자신과 맞는 단짝 친구를 못 만났을 뿐,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단짝이 꼭 필요한가에는 의문점이 있다. 두루두루 친해지면 안 되는 걸까.


그래도 아직 마음 한구석에는 ‘앞으로 교우관계가 원만할까’라는 걱정이 남아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나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뿐이다. 이게 심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이러한 고민들을 남편에게 쏟아내고 나면, 결국 해결책도 내가 내어버리고 마무리가 된다.

“내가 대신 학교 다녀줄 것도 아닌데, 스스로 헤쳐나가게 해야지. 걱정하지 말자. 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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