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대 힙해질 수 없겠지만
엄마가 되어도 나로 살 수 있을까
임테기 두 줄을 확인했을 때,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찾아왔다.
나는 엄마가 되어도 나로 살 수 있을까?
더 구체적으로는 이 질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되어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점점 애를 낳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애를 낳고 키우는 사람의 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는 친구들이 재기발랄한 기획과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갈 때, 나는 아기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아니 아예 쓸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나는 매일 발 동동 구르며 사는 워킹맘이 될 텐데, 그 진부한 고생담을 누가 읽고 싶어할까.
"이제 나는 힙한 글은 영영 못 쓰겠지."
침대에 기대 울렁거리는 입덧을 오렌지주스로 누르며 P에게 말했다.
"아니야. 요새는 사람들이 애를 안 낳잖아. 낳는 게 더 힙해지는 세상이 곧 올 거야."
"지금 서점가의 대세는 비혼이랑 비건인데, 애가 소고기 이유식을 몇 그램 먹었나 전전긍긍하는 애엄마 얘길 누가 읽겠어."
그새 잠든 P는 더 이상 대꾸가 없었다. 나는 외로워졌다.
침대에 누워 계속 생각했다.
힙하다는 게 대체 뭔데. 힙한 글이라는 건 또 뭐고.
나는 힙하다는 것을 뭔가 당당한 것, 자유로운 것, 연연하지 않는 것, 자신을 긍정하는 것, 그래서 가진 게 없을지언정 궁상맞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엄마의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도 절대 힙해질 수 없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늘 걱정하고, 연연하고, 지킬 것이 죄로 궁상맞고 구질구질하며,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최고로 해주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런 삶은 드라마 <미생> 같은 오피스 드라마의 워킹맘 이야기에서도 보았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도 보았고 회사 화장실에서도 매일 본다.
“네 어머님, 죄송해요 회의가 있어서... 서윤이 감기약 잘 먹었나요?"
“응 소미야, 학교 잘 갔어? 준비물 챙겼어? 엄마가 일찍 나간다고 못 챙겨줬네.”
이런 전화를 꼭 화장실에서 하던 여자 선배들. 그 옆 칸에서 통화 내용을 본의 아니게 들으며 지금 물을 내려도 될까 말까를 고민하던 나. 아니 왜 꼭 전화를 화장실 칸에 들어가서 하는 걸까. 나도 애엄마가 되면 그렇게 될까. 자주 보조 양육자나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야 하지만 그 전화를 사무실에서 하기에는 눈치 보이고, 어디 멀리 가서 전화를 할 시간도 없어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전화를 하는 사람들. 옆에서 물소리가 나든 똥 누는 소리가 나든 개의치 않고 내가 해야 하는 통화를 완수하는 무심함. 그걸 세간에선 아줌마 같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본 장면은 남의 삶의 한 단면일 뿐이다.
화장실에서 물 내리면서 전화를 하는 애엄마는 다 비슷한 삶을 사는가? 엄마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모습으로 사는 게 아닐 텐데, 그리고 일견 비슷해 보이는 삶 속에도 무수한 결이 있을 텐데. 어째서 엄마인 여자의 삶은 유독 납작하고 전형적으로 여겨지나. 왜 나부터도 엄마가 되면 다 '그렇게' 살 거라고 보고 있는가. 왜 엄마의 삶은 다 아는 이야기라 진부해서 남들이 관심 갖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가. 누가 그걸 정하는데? 왜 나는 그 말에 따르고 있는데?
주말에 오랜만에 이케아에 다녀왔다. 간 김에 아기용품도 사면 좋을 것 같아 가는 길에 이케아 출산용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온갖 블로그에서 나열하는 수많은 ‘육아템’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아기 침대만 해도 종류가 뭐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월령에 따라 그렇게 물건들을 자주 바꿔 줘야 하는지도 처음 알았다.
예를 들어 아기 침대는 처음엔 높이 설치할 수 있는 걸 사야 한다고 한다. 몸도 회복되지 않은 엄마가 허리와 무릎을 굽혀 아기를 들어 올리고 내려놓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애가 좀 커 스스로 서기 시작하면 높은 침대가 위험해진다. 이때 낮은 침대로 바꾼다. 아기가 점점 팔 힘, 다리 힘이 세져 침대 모서리를 치기 시작하면 범퍼가드도 설치해줘야 한다. 그럼 처음부터 그냥 낮은 침대를 사면 안 되나요, 어차피 몇 개월 쓰고 말 건데?라는 초보 엄마의 질문에 돈 몇 푼 아끼려다 네 허리와 골반 다 상한다!라고 랜선 육아 선배들이 준엄한 일침을 놨다.
엄마의 삶은 계속해서 아기 물건을 검색하고 사들이고 그걸 중고로 되파는 과정인 것 같았다. 검색, 구매, 그리고 중고 판매에 쓰일 시간과 에너지와, 아무리 되판다 해도 온갖 ‘국민템’들로 꽉 찰 집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이젠 힙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니멀리즘과도 작별이다. 안녕 곤도 마리에… 좋아하지 않는 물건은 가능한 집에 들이지 않고 주기적으로 물건을 비워내며 빈 공간을 지켜내던 삶이여 안녕. 이제 나는 곤마리짱의 말처럼 설레는 것만 남기는 게 아니라 설레는 것들과 결별하는 삶을 살겠군요…
이케아에서 온갖 물건 속에서 어지러이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육아템의 홍수가 어지간히 스트레스였는지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임산부였다. 꿈에서도 내가 임신한 상태로 나오기 시작한 지 좀 되었다. 식당을 가서 혼자 밥을 먹다가 남아 포장을 요청했는데,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종업원이 나에게 무례하게 이야기하며 음식 요금을 바꿔 받았다. 내가 계산대에서 컴플레인을 하자 식당 주인은 큰소리로 나를 윽박질렀다.
기억나는 건 내가 꿈속에서 외투를 끌어안아 내 부푼 배를 가렸다는 것이다. 나는 약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꿈속의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임산부인 것은 내가 내 의견을 주장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공격을 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뱃속의 아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 꿈속의 논쟁은 잊었지만 계속해서 외투 앞섶을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끝까지 자기주장을 하던 나의 모습만은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힙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꿈에서 깨니 새벽 세 시였다. 임신성 불면증에 이런저런 고민들이 겹쳐 뒤척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침대에 누운 내 곁에 온갖 밤의 맹수들이 찾아와 맴돌았다. 온갖 걱정의 얼굴을 한 맹수들이었다. 하이에나가 찾아와 너도 이제 그냥 애엄마로 살겠지, 하고 나를 도도하게 노려보고 갔다. 표범이 찾아와 이제 다음 책은 없을 거야, 하고 어흥 입을 벌리고 갔다. 코요테가 찾아와 너만 힘들 거야, 너만 외로울 거야,라고 말하며 내 몸의 불안을 냄새 맡고 갔다.
제대로 자지도 못한 채 출근 준비를 하는 거울 속 내 얼굴이 안쓰러웠다. 배가 나온 몸에 그나마 들어가는 옷을 부리나케 찾아 걸쳐 입고 출근 버스를 타러 나갔다. 멀리서 버스가 다가오지만 나는 이제 달리기를 할 수 없는 몸. 최대한 보폭을 넓혀 빠르게 걸어 가까스로 차에 올라 카드를 찍으며 생각한다. 이제 힙이고 미니멀이고 중요치 않다고. 힙하지 않으면 어떤가? 나는 처음 겪는 몸의 변화와 새로운 삶에 당황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있다. 그걸 모르는 세상의 언어로 나 자신을 기죽이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 뱃속의 아기는 커 가고, 그렇게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했던 엄마의 삶은 한 발짝 한 발짝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아니, 걱정하고 연연하는 삶은 이미 시작된 것도 같다.
이제 절대 힙해질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그 힙하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오늘도 밤의 맹수들은 다시 찾아오겠지만 이번엔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할 것이다. 조용히 해라, 이것들아. 난 내일 출근해야 해. 뱃속 아기도 자야 해. 환한 낮에 다시 와. 그때 다시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