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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 Oct 18. 2022

나는 낡아가는 가제수건

돌봄의 무게와 돌봄의 기쁨

아이를 낳고 인내심과 성실함은 어쩔 수 없이 늘었다. 아기가 삼십 분을 재워도 뻗대며 자기 싫어할 때, 그렇게 겨우 재운 아기가 겨우 십 분을 자고 일어날 때, 애써 만든 이유식은 먹어주지 않고 스푼을 얼굴에 부비며 장난칠 때, 애 얼굴과 팔다리와 바닥에 묻은 죽을 닦고 옷을 갈아입힐 때, 그리고 다시 낮잠을 재워야 하고,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다시 이유식 먹이기를 시작해야 할 때.


한 사람을 낳고 그를 사람 만드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간 아기는 어쩜 이토록 손이 많이 가는 것인가.


아기 응가가 묻은 을 손빨래해 널고 갠다. 빨고 또 빨아 맨 처음 샀을 때보다 흐물흐물해진 가제수건을 개며 마치 나 같다고 생각한다. 가제수건을 몇 번을 빨고 말리고 개었는지 그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을 돌이켜본다. 나 혼자 하얗고 단정하게 존재할 수 있던 나날들은 끝이 났다. 이제 나는 내 뱃속에서 나온 사람을 내 몸과 시간을 써서 매일 씻고 닦고 먹이고 입히며 산다.

젖병을 씻고 아기 먹을 것을 준비하고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힌다. 단지 한 생명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많은 흔적들이 생기는지 몰랐다. 나는 그 흔적들을 끊임없이 닦아내고 지워내는 사람. 그렇게 내 몸과 시간은 지우개처럼 아간다.


나를 나답게 하던 뾰족한 모서리들은 아이를 재우고 먹이고 입히며 조금씩 마모되었다. 낡고 둥글어진 나는 세상의 여느 엄마들과 많이 닮은 사람이 되어간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아기 빨래를 개는 내 자세에서, 바닥에 머리를 꿍 부딪힌 아이가 통곡을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 마룻바닥을 '때찌, 때찌' 하는 내 몸짓에서 내가 엄마를, 할머니를 닮아 있음을 본다.

아이를 안고 거울 앞에 서면 나는 깜짝 놀란다. 태양같이 환하게 꺄르르 웃는 아이와 대충 묶은 머리로 추노 꼴을 한 여자가 서 있다. 나는 그 여자가 너무 못생겨서 놀라고 또 그 여자가 꼭 아이처럼 웃고 있어서 놀란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고 불평하고, 한 시간이라도 누가 애를 봐주면 좋겠다 소원하면서도, 동시에 나라는 인간이 이만큼 쓸모 있게 쓰인 적이 있었나 싶다.

아이는 하루 종일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 찾는다. 잠시 내려두고 화장실에 가면 나라 잃은 사람처럼 음마, 음마 하고 대성통곡을 하며 운다. 아기는 이를 닦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을 보듯이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본다. 빨래를 개고 있으면 꼭 옆에 앉아 갠 빨래를 다시 헤집어놓고는 관심을 끌려고 내 머리를 끄집어당기고 무릎에 올라타 치근덕거린다.






어렸을 때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자기가 키운 손녀딸이 지금 아기를 낳아 키우고 있단 걸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일로 여기는 할머니는 가끔 전화를 해서 묻는다.

니 새끼 잘 크나. 이쁘재?

나는 투정을 부린다.

할머니, 애는 너무 이쁜데 애 보는 게 힘들다.

늘 나의 투정을 받아주던 할머니는 육아 앞에선 단호하다.

아이고, 니도 그리 컸다!

니는 낮밤 바뀐 애여서 밤마다 니 업고 할아버지랑 맨날 운동장 돌았다 아이가. 낮에 못 자게 할라고 박수치고 꼬집고 옆에서 난리난리를 쳐도 니는 낮에만 잤다. 니 새끼는, 니에 비하면 양반이다.

할머니는 마른기침을 잠깐 하고는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니 새끼 옹알이하재.
할매는 잠 못자서 힘들어도, 니가 옹알이하는 거 보면 이뻐서 깨물어주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눈 감으면 니가 걸음마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매는 살면서 니 키울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울 강생이,
우짜든 열심히 해라. 알긋제. 열심히.

할머니가 나에게 뭔가를 열심히 하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서 모든 학부모들이 목청 터지게 내 새끼 좀 더 빨리 뛰라고 응원할 때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었다.

아이고, 천천히 뛰어라! 그거 빨리 갈 필요 없다! 엎어진다!

그랬던 할머니는 애는 열심히 키우라 한다. 시간은 가고 아기는 자라고 우리는 늙으니, 아기가 주는 기쁨과 사랑을 백 프로 누리라고, 힘든 것에만 눈이 가려 그 행복을 외면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돌봄은 나를 어마어마하게 소모시키지만 또 동시에 가득 채워준다. 아기를 키우며 나는 한 살의 나를 다시 마주한다. 나도 이렇게 예뻤을까. 나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갔을까. 나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닳게 하고 또 기쁘게 했을까.


내가 이뻐서 깨물어주고 싶었다던 할머니는 기저귀가 나올 때마다 매번 끓는 물에 삶아 빨아가며 나를 키웠다. 엄마는 천기저귀 삶는 법부터 시작해서 할머니의 양육방식에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았지만 "애 맡긴 죄인"이라 말을 아꼈다. 아빠는 지친 두 여자 사이에서 나를 부지런히 실어 나르며, 할머니랑 헤어질 때는 할머니를 부르며 울고 엄마랑 헤어질 때는 엄마를 부르며 우는 나를 달래기 위해 온갖 동화를 외워 차 안에서 들려주었다.

아기를 낳고 키우기 전엔 맞벌이 때문에 할머니에게 나를 맡겼던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돌봄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서 다른 이에게 외주를 준다 해도 공짜가 아니다. 돌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벼워지려 기를 써야 겨우 조금 그 무게를 던다. 할머니에게 나를 맡기고 돌아오는 밤이면 나에게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오늘 밤은 좀 푹 잘 수 있겠구나 싶어 들떴다던 젊은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낮잠을 자다 깬 아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엉금엉금 기어 올 때, 나는 내 안에 없는 줄 알았던 다정함으로 말을 건넨다.


잘 잤어?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었구나. 엄마랑 같이 더 자자.


그 다정함은 분명 그들에게 배운 것일 테다. 먼 옛날 그들이 날 안았듯이 아기를 꼭 껴안고, 그들이 내게 알려준 몸짓으로 둥기 둥기 박자를 타며 자장가를 부른다. 그 순간은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방이 더이상 적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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