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편 되기
자기 비난을 넘어, 나에게 다정한 사람 되기
<붓다처럼 살기> 첫 챕터는 '자기 편 되기'이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얼마나 내 편이었는지를 스스로 질문해 보면 책장을 넘기려던 손을 잠깐 멈추게 된다.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세요. 나는 나 자신에게 좋은 친구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에게 너무 비판적이거나,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거나, 자신이 하는 일을 너무 하찮게 여기고 있을지 모릅니다. 부당한 대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이나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남에게 이야기하는 일에 너무 무심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너무 쉽게 체념하고 받아들이거나, 행복한 삶을 위해 마음속으로나 실생활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데 너무 소극적일 수도 있지요.
생각해보면 10대와 20대를 통틀어 나는 나 자신의 좋은 친구가 아니었던 순간이 많았다. 많은 순간 나는 나 신에게 '못된 말만 골라서 하는 재수 없는 친구'였다. 오랜 시간 모범생이자 착한 딸로 살아오면서, 늘 타인이 내게 원하는 것은 기막히게 알아챘다. 내 마음속에는 그 데이터를 기준으로 확립한 '바람직한 00의 상'이 있어서, 늘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그 기준에 맞지 못하면 늘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외부의 비난이 들어오면 '더 ~했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라고 나 자신에게 '2차 가해'를 하곤 했다.
몇 년 전 회사 생활에서 정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실제 맞지만 않았을 뿐 매일 매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 날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부족해서, 약해서, 또는 약해 보여서, 꼼꼼하지 못해서, 빠릿빠릿하지 못해서, 더 aggressive하지 못해서 이런 일들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건희니 정주영이니 하는 온갖 유명한 기업가들을 데려온다고 해도 당시 내가 처한 그 직급, 그 상황, 그 조직 속에 꽂아 넣는다면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는 것보다는 '이런 대우를 받을 만큼 내가 뭔가 부족하구나'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아팠다. (나는 그 시기를 겪은 후 왜 성추행 피해자들이 '내가 처신을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했나'라는 심리 기제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나는 피해자였다. 누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나는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나를 감쌌어야 했다.
복직 후 한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단순히 쉬다가 일을 시작한 데서 오는 피로감만은 아니었다. 쉬면서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그림이 있었는데 막상 회사라는 현실에 적용하자 원하던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나는 인생이 마치 엑셀처럼, 수십 개의 수식을 입력해 놓고 엔터만 치면 촤르륵 원하던 결과값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휴직기간 내내 내 인생의 수식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정성스레 입력해 왔는데 막상 부딪힌 현실은 엑셀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구체적으로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나를 비난하는 나'였다. 너 너무 순진했다, 왜 다른 것도 좀 - 해보지 않았니? 왜 좀 더 열심히 - 해 보지 않았니? 애초에 그럼 휴직은 왜 했니? 하는 가장 재수 없고 얄미운 친구나 할 말들을 내가 나 자신에게 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기 편 되기'를 위해 이런 수련을 제안한다.
- 하루에 몇 번씩 나는 내 편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이롭도록 행동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하기
- 어린이나 애완동물 등 어떤 대상을 아끼고 사랑할 때 수반되는 느낌- 따뜻함, 다정함, 관심, 옹호, 보살펴 주고 싶은 마음 등을 충분히 느껴 보기. 누군가의 편에 선다는 느낌이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해 보기.
- 그 느낌을 현재의 나 자신에게 적용해 보기.
- 내가 내 편이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느끼고, 기억해 두기
- 내가 내 편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은 무엇인가? 질문하기
- 그 행동을 최선을 다해 행동으로 옮기기
며칠 동안 이 내용을 적용해 보면서 느낀 것은 내가 나 자신의 편이 된다는 느낌이 무척 낯설다는 점이다. 나는 늘 가장 섬세한 현미경을 들고 나의 결점만 찾아다니는 사감 선생님 같았기 때문이다. 아기는 누워서 천장만 봐도 예쁘다, 귀엽다, 잘한다고 칭찬받는다. 내가 마치 그런 아기가 된 양, 작정하고 아끼고 칭찬할 마음으로 내가 나를 대하는 것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간질간질하고, 어색하고, 그런데 싫지는 않았다. 음, 이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칭찬받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을 지갑에 끼우고 넣고 다니며 그 아이를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을 확장시켜 보라고 제안한다. 앨범을 뒤져 찾은 어린 시절의 나는 밝고 활기넘치고 자신만만했다. 파마머리를 하고 원색의 옷을 껴입고는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다녔다.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랑받을 거라고 믿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당당함이 있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동안 나는 그 아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해 주었나.
내가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라면, 그래서 나를 스스로 아끼고 인정하지 않고 가장 모진 비난의 말들만 퍼붓는다면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다. 늘 마음이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처럼 공허할 텐데 어떤 성취와 어떤 관계로도 그 허함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오직 그 구멍은 오직 나 자신만이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내가 나의 편이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고슴도치처럼 자기 자식을 예뻐하고, 세상 무엇보다 얘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궁금해하는 것, 누가 자기 자식에게 뭐라고 하면 '아니 얘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하고 분연히 일어나는 모습, 어떻게든 내 아이는 지키겠다는 결기 같은 것이다.
오랜 자기 비난의 습관을 멈추고 이젠 내가 나의 편이 되어 주고 싶다.
성난 어미가 새끼를 지키듯 무조건적이고 저돌적으로 나를 보호하고 싶고
가장 다정한 어미새의 노래처럼 나에게 다정해지고 싶다.
그림 출처: <Mother's love and care>, fine art america
이제는 비바람 속에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우산을 씌워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