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은 모든 게 계획대로 다 되리라는 착각 속에 두 딸과 함께 온 후, 완전 딴 판인 현실에서 살아내느라 아이들 챙길 정신이 없었다.
둘째는 오기 싫은 캐나다를 엄마와 언니가 간다 하니 어쩔 수 없이 온 경우다.
한창 사춘기, 친구 좋을 나이에 친구도 없고, 영어가 능통한 것도 아니고, 엄마 언닌 다 바쁘고, 아이가 마음 붙일 곳이 없던 걸 몰랐다.
6학년 생활을 한국에서 20일, 캐나다에서 3개월도 못해보고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나의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다 보니, 짧게 6학년을 보낸 친구들이 진학하는 중학교를 못 가고, 다른 동네의 중학교로 가게 되어서, 그나마 알던 친구들마저 없는 상항이었다.
난 등교와 실습, 집에 오면 간단한 살림과 과제로 밤 12시 넘기는 건 예사여서, 씩씩한 애니까 잘하겠지 라는 나만의 믿음으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학교에 등교를 안 했어. 처음이 아니야."
분명히 등교하는 걸 봤고, 오후에 만나면, 잘 다녀왔다고 하던 아인데, 처음이 아니란다.
맹세코, 상위권을 바라진 않았지만, 내가 모르고 있던 결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에게 학교에서 연락받은 것을 알리고, 이유를 물었다.
"그냥 걸었어."
"난 여기서 전혀 행복하지 않아!"
별다른 설명도 없고, 그냥 걸었단다.
고맙다는 말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적잖은 희생을 치르고 있는 중이어서, 어린 나이에 캐나다까지 와서 유학도 하고 넌 좋겠다 싶었던 내 자만심이 산산조각 났다.
수업시간에 혼자 걷고 있던 딸을 발견한 내 친구가 아이를 데려다 라면을 먹여 보내 놓고, 나한테는 혼날까 봐 말 안 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말해줬다.
매달릴 곳이 학교밖에 없었고, 마침 교사와 학부형이 1:1 면담을 할 수 있는 날(Curriculum Night)이 다가와서 그날을 활용했다.
강당 벽 쪽으로 과목별 교사가 앉아있고, 내가 원하는 교사 대기 의자에 앉아서 차례대로 면담을 받는다.
시간 제약은 없지만, 대부분 5분에서 10분 정도로 하는 분위기였다.
체육선생님만 아이가 적극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높은 점수를 주셨고, 영어, 수학 등의 주요 과목에선 점수도 그다지 높지 않고, 너무 조용하고 참여가 적다는 평가에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 한 건 아니었지만, 밝고 학교가 항상 즐거웠던 아이였다.
공부보단 친구가 먼저였던 아이여서, 친구가 없어서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 같으니 아이가 친구를 사귈 수 있게, 교실에서 자리배치나 조 그룹 형성 등의 배려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한국인 튜터를 찾았다.
캐나다까지와서 사교육을 시키는 건 내 원래 계획에도 없었고, 돈도 없었지만, 누군가 아이를 빨리 도와줘야만 했다.
나 : 공부는 덜 해도 되니 학교생활 어려운 점등의 하소연 좀 들어주시고, 여러 조언 부탁드려요. 얘가 친구가 없어서 마음도 못 붙이고, 그래서 공부도 안 하는 것 같아요.
튜터 : 여기 애들도 공부 잘하는 애 좋아해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서 공부 안 한다고 보시기보다는, 공부를 잘하게 되면, 본인의 자신감도 올라가고, 인기가 많아져서 친구가 더 많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보세요.
완전히 내 사고방식을 뒤집는 멘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가 밝고 적극적이다라는 것은
바쁘고 힘든 내 상황 속에서, 너만은 제발 이랬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었지,
아이가 실제로 그런 건 아니었다.
아이도 힘들 때가 있는 건데,
우리 집 막내에겐 '넌 항상 기쁜 아이'라는 타이틀을 주고, 힘든 우리 셋을 위해 재롱을 떨어주길 바랬던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쭉.
놀랍게도, 모든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여러 방법을 제안해주셨고, 특히 수학선생님께서 수업 전이나 점심시간에 본인의 교실로 오면 좀 더 지도해주시겠다며 자신을 무료 튜터로 이용하라고 하셨다.
쑥스러워하던 딸은 선생님 방에서 점심도 먹고, 그 덕에 친구도 생기고, 성적도 오르며 조금씩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딸의 생일날, 선생님께서 점심시간 그 방에 모인 친구들과 같이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해주셔서 우리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학기가 끝나던 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까 고민하다 솔직하게 이메일을 썼다.
'감사드리는마음 어떻게 전달할지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기프트카드 드리면 이거 뇌물일까요? 여기 문화를 잘 몰라서요' 하는내용으로 보냈더니, 작은 선물은 괜찮다고 하셨다.
딸과 정성껏 카드를 쓰고, 소정의 액수가 담긴 기프트카드를 드렸다.
학교 선생님들과 튜터 선생님의 현실적인 지적으로 자칫 엇나갈 뻔한 아이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보고 싶은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 있는 그대로 보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