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도착 1시간 전.
네 번째 미션: 커피를 마시고 홍차를 구매하시오.
버스를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소호에 도착했다. 오, 여기가 소호란 말이지! 우선 스타벅스부터 가실게요. 여긴 관광객이 많은 런던이잖아. ‘그 스벅맛’을 주겠지. 또 철석같이 믿고 벤티사이즈를 주문했다. 과연 우리는 라떼 상처를 극복했을까? 맛은.. 영국이었다. 우씨. 그래도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니 다시 걸어보자. 아끼고 아끼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우리가 무려 런던에서 무려 쇼핑이라는 걸 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홍차를 물처럼 마시는 이스탄불에 살면서 한창 홍차를 즐기던 때였다. 훗, 이 정도는 살 수 있지. 반나절 런던 여행에서 가장 화려한 장소에 도착했다.
포트넘 앤 메이슨. 이곳은 상품 진열부터 패키지까지 눈이 즐거운 곳이었다. 놀이동산에 온 느낌이랄까. 마케팅은 이렇게 해야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즐거운 쇼핑을 마쳤다.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뭔가 갸우뚱하다. 런던이.. 우리 스타일이 아닌가..? 유럽만 오면 정신을 못 차리는 우리의 마음이 잠잠하다. 이상하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우리가 뭘 알아!!!! 계속 걸어!!
다섯 번째 미션: 좋아한다면 주저하지 마세요.
도심 곳곳에 공원이 있는 런던. 오전에 우연히 들렀던 세인트 제임시즈 파크에서 런던의 공원이 심상치 않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서 토트넘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40분을 공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렇다. 또 공원이다. 아무리 바쁜 관광객처럼 보내자고 다짐해도 K와 내가 가진 특유의 여유로움을 버릴 순 없었다. 타야 할 지하철 노선과 가까이에 있는 그린파크에 도착했다. 어쩜 이름도 ‘그린’인지. 벤치에 앉아 비 온 뒤 강하게 퍼지는 풀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작은 공원에는 파란색 재킷을 입고 지팡이를 내딛는 멋쟁이 할아버지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기, 빨간색 플랫슈즈를 신은 엄마, 맞춤 정장을 입고 킹스맨 우산을 손에 쥔 남자, 몇몇 조깅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갈 뿐 아주 조용했다. 벤치 외에는 요란한 장식이나 편의시설도 없었다. 나무와 잔디가 이만큼 있으면 됐지, 공원에 무엇이 더 필요하냐는 듯이. 여기서 보낸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누구든 쉬어갈 수 있는 공원이 이렇게 많다는 건 분명 부러운 일이다.
마냥 앉아 있고 싶었지만 우리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찍어야 한다. 오후 3시 반. 아쉬움을 뒤로하고 토트넘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아침부터 계속 걸으며 런던의 여러 조각들을 기웃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지하철에서 ‘토트넘’이라는 글자를 보니 다시 마음이 두근두근하기 시작했다. "우리 꼭 프리미어리그 직관하러 가자.", "실제로 직관을 하게 되면 토트넘이랑 어느 팀이 경기할 때 가고 싶어?", "맨시티랑 토트넘 경기를 볼 수 있을까? 표를 못 구하겠지?" 2년 동안 주문 외우듯 똑같은 대사를 매일 읊었다.
그날이 왔다. 오전 4시 30분 비행부터 시작된 오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