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용문객잔’을 소환하다

멘토가 필요해_무림고수 K

by 무림고수 K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소 잡는 이가 있었다. 이름은 포정(包丁). 칼을 들어 소를 가르면 설겅설겅 소리가 나는데 음률에 꼭 들어 맞았다. 칼이 이르면 뼈와 살이 떨어져 나가는데 거칠 바가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임금이 물었다. “훌륭하도다. 재주가 어찌 이런 경지에까지 도달했는가”. 포정은 “그것은 재주에 앞선 도(道)입니다”라고 답했다.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보였다. 그러나 3년이 지나자 소가 보이지 않았다. 눈과 귀 감각 작용을 버리고 정신을 따라서 손을 움직였다. 그 뒤로 소를 수 천 마리나 잡았고 칼은 십구 년이나 썼는데도 칼날은 숫돌에 새로 갈아 나온 것과 같았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나오는 포정해우(庖丁解牛) 고사다. 장자의 이런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문학적 필체를 나는 좋아한다.


이쯤에서 무릎을 탁 칠만한 사람들이 있을 테다. 한 때라도 ‘무협’에 심취해 본 이들이라면 대번에 영화 ‘신용문객잔’을 떠올릴 거다. 양가휘와 임청하, 장만옥이 주연을 맡아 1992년에 개봉한 바로 그 유명한 홍콩 영화. 천하를 어지럽히는 악의 집단 우두머리는 검술의 절정고수인 탐관. 무술깨나 하는 주인공들이 연합공세로 나섰으나 탐관이 휘두른 칼날 아래 하나둘씩 속절없이 쓰러져갈 무렵. 홀연 식당 주방장이 소 잡는 부엌칼 하나를 꼬나 들고 나서더니 그 허접한 칼로 탐관의 다리 살을 순식간에 발라 버리는 충격적 장면. 주방장은 검술을 익힌 적 없으나 ‘검의 도(道)’를 깨우친 것이다. 그 역시도 3년이 지나자 오감에서 사물이 사라지고 오직 정신만으로도 칼을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가 바로 초절정 고수 포정이라 하겠다.


이런 식의 무협 스토리텔링 최고봉은 진융(金庸)이다. 나는 내 소년기 전부를 진융한테 빼앗겼다. 소설 ‘영웅문’을 시작으로 그의 무협소설들을 얼마나 읽고 또 읽었던가. 영웅문은 실로 수 십 번을 읽었다. 그만큼 반복해 읽은 책이 있던가. 인생의 책 한 권을 꼽으라면 나는 무조건 영웅문이다. 그 소설에 나오는 최고의 무술 초식 중 하나가 ‘항룡유회(亢龍有悔)’. 나중에 주역을 보다가 이 사자성어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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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가 된 관우와 초선에 마음을 빼앗긴 여포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영웅 항우 이야기를 좋아했다. 이처럼 수 백, 수 천 년 동안 인류에 영감을 불어넣어준 고전 읽기를 좋아한다. 고전을 읽다 보면 만년필로 필사를 하고 싶어 진다. 책을 통한 사숙(私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면 쓰고 싶은 욕구가 끓어오르기 마련이다. 나는 글쓰기를 내가 기자로 일한 신문사의 뛰어난 선배들한테 배웠다. 그렇게 나도 신문사 선배로 나의 첫 수습기자였던 J를 가르쳤다.


물론, 멘토는 스포츠 영역에서도 필요하다. 내가 정식으로 배운 스포츠는 딱 세 가지다. 한국 전통무예인 십팔기(十八技), 테니스, 골프다. 나는 축구, 야구, 수영, 탁구, 배드민턴, 스노 보드 등 숱한 종목을 독학으로 깨쳤다. 하지만 내가 정식으로 배운 이 세 종목은 현명하고 뛰어난 멘토, 그리고 레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성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경험을 빌어 말할 수 있다.


나는 1991년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대학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대학마다 전통무예 동아리가 붐이었다. 캠퍼스 잔디밭에서 검은색 도복을 입고 창과 칼을 휘두르는 일단의 무리에 매료돼 십팔기 동아리에 들어갔다. 신촌 네거리의 십팔기 도장에 나가던 선배들이 만든 동아리였다. 나는 무술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으므로 선배들을 따라서 도장에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께 무예를 배웠다. 몸을 만들고 움직여 쓰는 법, 호흡하는 법,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가르침인지 몰랐다. 당시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선생은 온화한 성품에 한학에도 조예가 깊은 선비 같은 분이었다. 그렇지만 무술을 시전 할 때는 마치 호랑이와도 같았다. 선생의 움직임은 젊은 사범들도 흉내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무예수련에 평생을 쏟은 선생은 “무술 하는 몸을 이루려면 3년의 공(功)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대학, 대학원 시기 동안 그 공을 쌓았다. 칼과 창을 휘두를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놀랍게도 젊은 시절 수련한 무술이 나이 들어 골프를 치는 자양분이 됐다. 무술을 할 수 있는 몸을 만든 것이, 몸 쓰는 과학인 무술 동작을 배웠던 것이 골프를 쉽게 칠 수 있게 해 줬다. 그 옛날 도장 사형들은 “주먹과 발차기는 용수철을 튕겨내는 것 같은 탄력으로 쏘아내야 한다”고 했다. 땅에 다리를 굳건히 박고 허리를 틀었던 힘으로 부드러운 가운데 강력한 타격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나는 그때 유능제강(柔能制强)을 몸으로 깨우쳤다. 부드러움이 종국엔 강함을 이긴다.


다음, 테니스. 골프로 전향하기 전까지 나는 진짜 못 말리는 테니스광이었다. 주말 새벽이면 라켓 두 자루를 가방에 꽂고 코트에 나가서 한나절씩 단식을 쳤다. 사철 얼굴이 새까맣지 않을 때가 없었다. 나는 로저 페더러 광팬이었고, 앞으로도 영원한 광팬일 것이다. 따라서 페더러가 쓴 윌슨 라켓으로 그의 원 핸드 백핸드를 익힌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테니스에도 꽤나 소질이 있어서, 내 퍼스트 서브가 상대 코트에 꽂히면 나를 레슨 한 코치들도 받아내기 어려워했다.


아, 골프 차례다. ‘골프의 신’ 벤 호건은 저 유명한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갤러리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전 세계가 안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스포츠를 배우기 시작하면 책을 통해 이론부터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나의 골프는 호건이 쓴 불후의 명저 ‘파이브 레슨즈’에서 출발했다. 골프 역사상 최고의 볼 스트라이커. 젊은 시절 호건의 스윙을 보라. 지금 PGA 프로 누구와 견줘도 그 우아함이 빛을 잃지 않는다. 생사를 오간 교통사고 후유증을 극복해 내고 그립을 뉴트럴로 바꿔 잡은 이후 호건은 메이저 9승을 포함해 PGA 64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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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와 로리 맥길로이는 전 세계 골퍼들의 우상이자 나의 우상이기도 하다. 나는 골프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그들의 스윙에 탐닉해 왔다. 골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윙이다. 나는 지난 십 수년간 그들의 스윙 메커니즘과 밸런스, 리듬, 스윙 궤도를 모방하는 일에 열중했다. 내 골프의 팔 할은 그 모방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맥길로이는 2025년 4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뒤 그린에 꿇어앉아 포효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었다. 그리곤 눈물을 터트렸다. 천하의 맥길로이가. 그린재킷을 입은 그는 "2011년 마스터스에서 4타 차 선두를 놓친 이후 14년간 도전했다. 그때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그러면 어느 순간 그 꿈이 이뤄져 있을 거라고......"라고 말했다. 우즈는 "타고난 재능이란 인간들이 만들어 낸 꿈에 불과하다. 나는 슬럼프에 빠지면 평소보다 더 연습해서 정상을 되찾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멘털까지 닮고 싶어 했다.


나는 운 좋게도 훌륭한 프로들한테 골프를 배웠다. 그중 호주투어 출신 프로는 스윙이 훌륭했고, 교수법이 뛰어났으며,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떤 골프 프로를 만나느냐에 따라 당신의 골프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골프를 잘 치고 싶다면 마음 맞는 좋은 프로부터 찾아야 한다. 내친김에 진융의 소설 '영웅문'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사부 홍칠공이 없었다면 곽정이 어디 천하제일고수가 될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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