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딩이 내게 준 의미
여행 준비 중, 우연히 알게 된 지역 '컨딩'. 대만의 최남단에 위치한 이국적인 휴양지이자, 자연이 유난히 돋보였다. 다들 스쿠터로 이곳을 많이 여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워낙 뉴스에 사건 사고가 많이 보도되다 보니, 슬슬 걱정되다 못해 포기하게 되었다. 시작은 호기로웠으나 끝은 결국 허무했다. 점점 보수적이고 민감해지는 게 원인이 무엇인가 싶어 쓸쓸해지다가도, 당연한 순리이지 싶어 금세 당당해졌다.
버스 투어로 시작한 첫 번째 목적지는 '타이완 국립 해양 생물 박물관'이었다. 사실 컨딩 투어 목적지 중 제일 뜬금없다고 생각된 목적지이기도 했다. 실내에 있는 수족관이 아무리 좋다 한들, 부산 출신인 내게 있어 '아쿠아리움'은 상당히 익숙한 편이었기에 큰 기대가 없었다. 그래도, '투어'라는 게 결국 가고 싶지 않았던 장소도 하는 수 없이 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에게는 편하고 저렴하게 컨딩을 투어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선택지 외엔 없었다.
버스를 타는 내내 가이드께서 이곳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설명을 해주셨지만, 솔직히 크게 와닿지 않았다. 목적지에서는 실물 크기의 혹등고래와, 돌고래 등 해양 생물 조각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는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박물관 안부터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사방으로 해양 생물이 보일 수 있게 만든 터널이 정교함을 넘어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적어도 박물관 안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해양 생물들에게 이방인이었다.
긴 꼬리와 찢어진 입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보여주는 가오리를 보니,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옆으로는 부드러운 피부과 거대한 흰색 몸을 가진 돌고래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벨루가'였다. 두 마리의 벨루가가 고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속는 셈 치고 입장했던, '해양 생물 박물관'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되고 있었다.
대만에서 제일 아름다운 해변이라 불리는 '사도해변'이 더 궁금해졌다. 사도 해변은 순도 98% 모래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냥 모래가 아닌 조개가 파도의 침식 작용에 부서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무분별하게 모래를 담아가는 관광객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대만 정부에서는 현재는 사도 해변 자체는 개방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옆 해안가에서만 관찰할 수 있었다.
소문대로 바다와 모래는 엄청났다. 에메랄빛 바다와 새하얀 이국적인 모래. 하지만, 관광객 때문에 온전히 사도 해변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리에 쪼그려 앉아 모래 한 줌을 손으로 쥐어봤다. 반짝이고 아름다운 모래를 바람에 날리며, "이게 뭐라고.." 하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옆으로는 여러 관광버스가 줄지어 대기 시작했다. 괜히 모래를 더 만지작 거려봤다.
반면 옆으로는 휴양 온 사람들이 보였다. 발개 벗고 있는 아이와 시원하게 물장구를 치고 있는 가족이 괜히 미소 짓게 했다.
그럼에도 이번 투어 중 최고의 장소는 '룽판 공원'이었다. 룽판 공원의 드넓은 초원과 너머의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 가슴이 뻥 뚫렸다. 가이드께서는 현지인에게 '일출 명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나였어도 여기서 일출을 보고 싶을 거 같다. 대만의 남쪽 끝에서 보는 일출이라. 얼마나 낭만적인가. 끝없이 펼치지는 지평선 위로 태양이 솓아오르는 장면을 눈을 감고 상상해 봤다.
그러다 어릴 적 갔던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떠 올랐다. 여러 바위들이 협곡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때의 절경이 이곳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처음 보는 절경에 가슴 어딘가 먹먹했던 경험을 한 거 같았다. 또 뚫려있는 경치를 보며 마음 어딘가가 시원했던 거 같았다. 잊고 살았던 그때를 다시 회상하게 해 주다니, 이곳의 존재에 감사해졌다.
"자 이제, 버스에 탑승하셔야 합니다." 이곳을 떠나기 싫어졌다. 한두 시간이지 바위에 앉아 멍하니 파도만 바라보고 싶었다. 오직 내게 들리는 건 바람 소리, 그리고 멀리서 작게 들리는 파도 소리였기에. 여행이라는 건 참 신비롭다. 모든 걸 벗어던지고, 현재에 푹 빠져들게 하여 모든 근심을 내려놓게 만드니.
이곳은 꼭 다시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