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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내기 권선생 Jun 10. 2024

고열, 오한이 나도 병원은 안 갈래

 온몸이 쑤시고, 으스스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목을 넣었는데, 팔이 옷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찌릿하고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떨리고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에어컨에 오래 쬔 탓일까. 아니다, 분명 다른 때와 똑같이 틀고 잤는 걸. 곰곰이 생각해 보면, 타이베이부터 타이중, 그리고 가오슝까지 없이 달려왔다. 계획적인 J의 성격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배가 되었다. 시간 단위로 쪼개어 맛집, 관광지 동선까지 모든 걸 계획했다. 계획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재미가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했던 거 같다. 


 심지어 전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 5시에 기상해야 했고 다른 숙소로 한 번 더 옮겨야 하는 탓에 짐도 부랴부랴 쌌다. 그렇게 투어를 끝내고 나니, 휴대폰에 찍혀 있는 걸음은 총 20000걸음.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코인세탁소로 향했고,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서로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었지만 어쩌면 이 과정이 꽤 피곤한 과정이었을지도. 


여러 원인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보통이라면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온 다음에야 온몸이 쑤시고, 못 잤던 잠이 미친 듯이 오던데. 이번만은 아니었다. 출국 하루 전날부터 여독이 시작한 셈이었다.


 조식을 먹어야 했다. 아프기에 밥을 먹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었지만, 사실은 지불했던 조식 비용이 아까웠는지도. 친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게 죽과 수저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타이레놀 한 알을 꺼내 주었다. 문득 또다시 짐을 가볍게 한다며, 웬만한 건 전부 한국에 두고 온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무거운 친구 덕에 이번 여행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예전 같은 몸 상태는 아니더라도, 몸살 기운은 확실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남은 일정은 다시 타이베이로 올라가 숙소로 체크인, 그리고 그 유명하다던 진천미 식당까르푸쇼핑이 남았다. 일정에 지장이 생길 줄 알았는데, 나쁘지 않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약 기운이 떨어져서였을까. 타이베이 숙소에 도착하자, 또다시 몸이 으스스했다. 친구에게 다시 타이레놀을 받아 물로 벌컥 삼켰다. 다시 한번 몸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했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진천미 식당'으로 향했다. 그 유명하고 맛있는 식당이었지만,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이 가격으로 이 음식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삼키기만 했다. 친구는 음식에 대해 감탄을 자아냈지만, 정말이지 무(無) 맛이었다. 혀가 마비된 거 같았다. 


 이번에는 타이레놀 효과가 먹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온몸이 추워지고, 떨리기 시작했다. 까르푸는 제쳐두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고열과 오한이 시작되었다. 친구가 빌려주는 갖가지 외투를 껴입고 이불을 덮어도 온몸이 추웠다. 앓는 소리를 하며, 친구의 타이레놀만 다시 찾았다. 몸의 반응을 외면한 탓이었다.


 연신 휴대폰만 보며 친구는 입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5분 있다 다시 들어오더니, 친구는 구글 번역기로 근처 병원이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그 어떤 헌신도 마다하지 않는 친구를 보며, 난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제일 가깝고 큰 병원이 숙소 근처에 있다고 했다. 이렇게 빨리 병원을 찾아주는 친구가 놀라웠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병원을 가는 상황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갑자기 해외에서 병원을 갔다 병원비 폭탄을 맞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오히려 더 힘들었다는 블로그 포스트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이 사실은 못 말하겠고, 조금만 숙소에 있어보겠다며 이 일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친구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우리는 여행자 보험을 들었고 번역기 사용하면 증상을 잘 말할 수 있다며 나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래도 가기 싫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타국에 가서 병원 침상에 누워있을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병원에 가는 순간, 대만에서 좋았던 순간들을 전부 부정하는 거 같았다. 또 친구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더욱 그랬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친구와 또다시 병원 문제로 몇 시간씩 씨름하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약효가 다시 든 모아양이었다. 열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고, 몸살 기운도 조금씩 없어지는 거 같았다. 숨 쉬기도 버거웠는데, 이제야 정상적으로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좋은 말로 배려했다 하지만, 솔직히 그 지독한 배려심에 또다시 내 몸을 외면한 셈이었다. 고열, 오한이 나도 해외에서 병원은 가지 않았던 당시의 선택은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절대 병원은 안 가겠다고 한 나의 행동은 과연 친구를 위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위한 일이었을까.


 한국에 도착하자, 예상했던 대로 다시 몸이 스멀스멀 아파왔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수액을 맞고 나서야 정말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즐겁자고 떠난 여행의 마무리가 조금은 이상해진 거 같아 씁쓸했다. 여행에서 성장한다는 건 이런 과정도 포함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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