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찾아 삼만리 - 돈므앙 공항에서의 밤
스리랑카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약 4시간이 걸려, 새벽 4시쯤 방콕 돈므앙 공항에 도착했다. 일주일간의 방콕 여행이 시작된다는 설렘과 두근거림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건 숙소 때문이었다. 애초에 예약한 숙소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둘러 수하물을 챙겨 공항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을 쓰고 있는 왜 그때 예약을 하지 않았는지, 글을 쓰는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하지만 석 달 전의 나를 회상해 보니, 아마 배낭여행자의 '즉흥 낭만'을 즐기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는 이들처럼, 그날그날 묵을 숙소를 정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거 같다. 아무튼, 우리는 공항 근처의 숙소 찾아 삼만리 일정이 시작되었다.
무거운 캐리어와 배낭을 짊어진 채, 우리는 근처 게스트하우스의 빈 방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며 약 게스트하우스의 10여 곳을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지도에서 'guest house'라고만 검색한 다음, 거기에 등장한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열 곳의 게스트하우스에 설마 친구와 나, 우리 둘 머물 방 하나 없을까.
처음 찾아간 게스트하우스를 보니, 아주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카운터에 아무도 없어 벨을 누르자 직원이 나왔다. "Can we chek in? but we didn't reserve", 돌아온 대답은 "Sorry". 첫 번째 시도였으니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몇 번의 시도 끝에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여러 게스트하우스들을 뻘뻘 돌아다녔지만, 아예 불이 꺼져 있거나 문이 잠겨 있었다. 결국 열 개의 게스트하우스를 모두 훑었지만,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우리는 다시 길가에 주저앉아 '돈므앙 공항 숙소'를 검색했다. 새벽 비행으로 몸은 천근만근 피곤했고, 당장이라도 씻고 따뜻한 침대에 눕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쭈그려 앉아 열심히 검색한 끝에 돈므앙 공항 안에 '슬립박스'라는 작은 숙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줄기 빛을 본 듯 우리는 서둘러 뛰어갔다. 그런데, 방이 있다는 소리에 안도하기도 잠시, 요금을 확인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 안에 있어서인지, 방콕 기준으로도, 아니 한국 기준으로도 너무나도 비싼 금액이었다. 겨우 다섯 시간 잠자는데 방 하나가 한화로 10만 원이라니! 너무나 충격적이었지만,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슬립박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성 찾는 로망에 시달리다 보니 진작 지갑은 거덜 나고 있었다.
물론 숙소 안은 쾌적하고 좋았다. 하지만 다섯 시간 잠자리에 5만 원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침대에 눕자마자 분통이 터졌다. "대체 왜!" 만성 'J'인 내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앞으로는 더욱더 철저하게 계획하고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즉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낭만은 때로 고통과 비용을 동반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말이다. 내게는 아무래도 예측 가능한 편안함과 안정감이 즉흥적인 설렘보다 값진 거 같다. 방콕에서의 짧은 밤이 내게 이번에 똑똑히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