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창밖은 밝았지만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납처럼 몸은 가라앉아 있었다.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 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고, 모든 감각이 안갯속에 파묻힌 것 같았다.
그다음 날도 눈을 떴지만 어제와 오늘이 같은 날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 내 얼굴은 무표정했고,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날 핸드폰이 울렸다. 한참을 화면만 바라보다가 친구 이름을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입술을 열었다 다물었다만을 반복하며 침묵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