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심상치 않기는 했다. 어제까지는 분명 맑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에는 비가 불규칙적으로 온다고 하기도 했고, 금세 그친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비 오는 대만. 사실, 얼마나 낭만적인가. 운치 있고. 분위기까지 더해진 대만은 어떨까 기대하며 밖을 나섰다.
그리고 사건은 대만 하면 빠질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진리대학교, 홍마우청) 관광을 마치고 오던 길부터였으니.
'바리'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배가 안 오지 않았다. 심지어 기다리는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께 여쭈어봤지만, 배는 올 거라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없을까' 하고 의문이 들 때쯤, 그제서야 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이지카드(대만의 교통카드)를 들어 배값을 내려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손을 저으시면서 안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얼른 매표소 방향으로 몸을 틀어 표를 구매하러 뛰었다. 그렇게 긴박한 상황을 속에서 겨우 타게 된 배. 그런데, 우리 일행 4명을 포함해도 배에 있는 인원은 10명도 남짓 되지 않았다.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배 안을 자세히 보니 좌석에 물기가 흥건했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니, 양 옆에 전부 창문이 없는 게 아닌가.
작은 우산을 들어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약 10분간의 짧은 운항이 많은 상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배 안에 있는 구명환과 구명조끼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가 세차게 불더니 창문이 없는 배 사이로 엄청난 비가 들어왔다. 우리는 2인 1조로 3단 우산 하나에 몸을 기댈 뿐이었다. 10분쯤 지나자, 기다렸던 '바리'가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비를 많이 맞았던 터라 얼른 근처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몸을 녹이려고 했다. 그런데, 어딘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거리에 별로 없고, 조명이 대부분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른 휴대폰을 열어 우리가 알아왔던 카페를 검색해 봤다. 하지만, 곧바로 눈에 띈 건 빨간색 글씨의 '휴무일'. 다른 가게를 검색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간절히 바랐던 맛집인 '대왕오징어' 집도 굳게 닫혀 있었다.
여기서 도무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20분간의 기다림과 폭풍 운항은 덤이었다.
다음 일정(저녁 식당) 까지는 또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 단수이 강을 따라 걷기로 했다. 그러다 발견 한 곳, 바로 스타벅스였다. 대만까지 와서 스타벅스를 가야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지만, 현재 우리에게 스타벅스는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앉을 곳이 없는 게 아닌가. 결국, 뿔뿔이 흩어 앉아 각자의 메뉴를 주문하며 잠깐의 사색에 잠겼다.
그런데,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따뜻해지게 되었으니. 바로 스타벅스 커피. 대체 이게 뭐라고, 한국에서 의 그 고향 감성을 불러일으켰을까. 분명, 스타벅스가 우리나라 브랜드가 아니지만, 커피와 디저트의 맛에 온 몸이 녹게 되었다. 만국 공통의 맛이라 그런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