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타시와 겡끼데스!
회사원일 때는 아침 출근길부터 퇴근길까지, 그리고 업무 시간 짬을 내서라도 항상 수다 수다 또 수다. 하루도 메신저 방이 조용할 날 없었다. 그땐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었는지 점심 메뉴를 아침 댓바람부터 정하지를 않나, 누구 하나 공공의 적이 생기면 한마음 한뜻으로 까대기 바빴다. 회사 동료 이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멤버의 대부분이었던지라 각자만의 시시콜콜한 개인 사담까지 나누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갈 정도였다. 수다는 업무 시간에 해야 제맛인 것처럼 퇴근 후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동 음소거 톡방이 되어도 누구 하나 서운해하지 않고 알아서 존중하는 그런 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보듬던 동료들이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도 있는 달이면 한 달 전부터 생일자가 좋아할 만한 선물 리스트 후보를 서로 던지며 의견을 내고 맞춤 케이크를 주문하고 케이크 위에 적을 글자까지 있는 센스 없는 센스 다 모아 정하며 축하와 화합을 도모했다. 멤버들 중 몇몇의 생일이 몰린 달에는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내색 없이 모두가 서운하지 않도록 서로의 기념일을 챙겨주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출산휴가 시작을 하루 앞둔 날까지도 만삭의 몸 따윈 아랑곳없이 그저 이들과 함께하는 회사생활이 (잠시) 끝나간다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정 넘치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휴직자는 퇴사자가 아닌 잠깐의 부재자가 되는 것인데도 마치 마지막처럼 뜨거운 안녕을 고하는 충만한 작별의 시간까지 준비해준 그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남아있다. 그러고부터 어느덧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이어지는 지난 6개월 동안 그 메신저 방에서 나는 점점 우리의 공감대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우린 회사로 이어진 인연이 아니라며 퇴사해도 계속 볼 사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때가 무색하게 점점 할 말이 사라져 갔고 그중 누구도 육아의 경험이 없고 가까운 미래에 계획도 없다는 작은 이유로 매일매일 수다 떨던 그 방은 이제 내게 가끔 아기 사진이나 올리며 생존신고를 하는 그저 그런 단톡방으로 전락해 버린 것. (방금 ‘전락’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웠다 다시 쓰고를 반복하며 ‘우리가 이 정도까지? 아니야 그렇게까진 아닐 거야’하며 다른 부드러운 단어가 있을지 고민했지만 현재의 상황을 직시해 보면 딱히 다른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는 마음이 드는 게 한층 섭섭해진다.)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도 그들에게 그들도 나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듣고 싶은 대답을 줄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로의 근황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하거나 공감받을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아 보였다. 나도 그 방보다는 지금의 나처럼 육아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맘들과의 대화가 훨씬 편하고 하루하루 아기를 키우며 엄마의 마음을 배우고 있는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음에 사소한 것조차 궁금하고 시시콜콜 사담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느라 바빴다. 뜨거운 한 시절이 지나갔구나 느낄 때면 코끝이 시큰해지지만 더는 연연하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그들과 나 사이에 부재하는 건 단 하나, 바로 공통의 관심사였다. 공통 관심사란 것이 인간관계에 이렇게나 중요한 거로구나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멤버 중 누군가는 그 사이에 퇴사를 하였고 어떤 이는 이직에 성공했으며 남은 사람들은 마지막에 남는 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자존심(?) 같은 이유로 이대로 계속 회사를 다니는 게 맞나에 대한 끝없는 물음표를 품고. 누군가는 무료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들도 나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며 심심한 위안을 삼아 본다.
아기가 있는 나는 특히 이 시국 외출도 쉽지 않고 그들이 가벼이 던진 ‘아기랑 같이 놀라오라’는 한마디에 우울해지곤 하였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알면 그렇게 생각 없이 말할 수 없을 텐데! 이제 막 6개월이 넘은 아기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까지 가는 수고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던 적도 있었다. 나의 외출이라곤 가끔 아기 낮잠시간과 수유 텀의 타이밍이 잘 맞을 때 정말 너무너무도 답답할 때 겨우 아기랑 집 앞에 슬리퍼 신고 슬렁슬렁 유모차 끌고 몇 분간의 산책을 하는 게 거의 전부인 터. 이런 나의 삶을 그들이 이해할 수 없겠지. “솔직히 이제 외출해도 되잖아~” 하며 쉽게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그때는 아기가 더 어려 하루하루 육아가 진짜 전쟁이었던 와중에 들었던 말이라 더 상처가 되었는지도. 그래.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나도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지 않았던 시절, 미리 겪은 친구에게 이제야 아 그때 내가 실수했네 하며 미안한 기억이 종종 떠오르기도 하니까.
이런 대화들이 반복되다 보니 내쪽에선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느껴 서운하고 그쪽 입장에선 내가 너무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다고 여길 수도 있겠단 사실에 서글퍼진다. 이렇게 어긋나고 멀어지기는 싫은데. 우리가 함께 즐거웠던 기억이 이렇게 선명한데. 우리 사이의 간격은 어느 정도 벌어져야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들이 육아 전선에 뛰어들기 이전에는 아마 힘들지 않을까? 그래 나도 그랬으니까 하며 육아휴직자의 외로움은 이런 걸까? 자문하는 내 모습이 조금 처절해 보이기도. 설마 출산 후 포텐 터졌던 호르몬의 노예 시절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건가. 나만 서운한 것은 아니길 빌어보는 소심한 작자는 오늘도 나의 안부를 스스로 묻고 토닥여본다.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