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도 상처도 관계회복도 빨리빨리만 외치는 작자

# 무턱대고 사과하지 않을게요

by 별솜별

성격이 급해서 비빔밥도 비비지 않고 옷 단추조차 제대로 채우지 않고 다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굉장히 빠르게 해치우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데 이 습성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까지 적용하려고 했던 게 늘 화근이었다. 누군가와 다투거나 서운한 부분이 생긴 순간에도 빨리빨리 후딱후딱 처리해 버리고 싶어 하는 나라는 작자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도 얼른 정리하고 어떤 결론이든 마무리해보자는 강한 본능으로 가끔은 완전히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관계를 망치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과’의 타이밍 같은 것 때문이다. 이제 막 문제의 서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의 마음은 벌써부터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분명 사과하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 아직 아닌데 (그걸 알고 있지만) 내 안의 나는 우선 먼저 사과를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아우성인 것이다.


이런 모습들로 인해 상대로부터 ‘진실성 결여, 회피성 사과 아니냐’는 반문을 받고 한동안 의아해하기까지 했다. “아니 내가 토를 달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사과를 하겠다는 건데…” 이렇게 생각 없이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관계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면 ‘선 사과 (한참) 후 깨달음’ 일지언정 그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급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차근히 풀어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내 모습이 그저 자기 마음 편하자고 사과에 급급해 지금 순간을 모면하려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은 미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배려 없이 앞 뒤 살피지도 않고 무턱대고 사과하는 행위 자체가 아주 이기적인 모습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몇 번의 관계를 망치고 나서야.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떨쳐내려 상대방을 위한다는 핑계로 내가 먼저 손 내민다는 잘못된 의미부여, 관계 회복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이미지를 얻고 싶은 쿨함에 대한 과몰입,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때 이른 사과부터 내던졌던 것이다.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면 먼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마땅하고 차근히 대화하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가장 어려운 걸 은근슬쩍 넘기려 가장 중요한 걸 간과한 셈이다. 진짜 나라는 작자 왜 이래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침 받아야 하는 거야. 오늘도 나의 무수한 반성들에 치이고 치인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우연히 듣게 된 랜덤 음악의 가사에 갑자기 집중하게 되어 몇 자 적어본다. 이 가삿말이 그동안 내가 잘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마음 같아서이다. “저 때문에 상처 받으셨나요? 그렇다면 사과할게요! 우리 빨리빨리 해결하죠.”라는 식으로 대했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관계에서 만큼은 왜 이렇게 한없이 나이만 먹은 어른이 인 걸까. 나는 정말이지 언제 진짜 어른이 되는 걸까?



내가 얼른 자라서 네가 힘들어도 니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을게 내가 어른이 될게 그러니 겁먹지 마 네가 지치기 전에 내가 먼저 어른이 될게


https://soundcloud.app.goo.gl/3twZsMig4zbvY6ja9


성급한 모면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면 미안해요. 아니다 성급한 모면 맞네요. 맞아. 내 마음 편하자고 무턱대고 사과했던 모든 이들에게 사과합니다. 아 또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먼저 사과하고 있네요. 저 진짜로 무턱대고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이제 어른이 될게요.라고 노래로 대신 마음을 전해 보는 밤이다.

keyword
이전 08화아무도 일상을 궁금해하지 않는 나라는 육아휴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