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메뉴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나라는 작자

# 모두의 마음에 들 베스트 메뉴를 알 수 없음에…

by 별솜별

회사 생활을 할 때도, 결혼 전 남편과 데이트를 할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는 먹고 싶은 음식 메뉴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소심한 작자이다. 그래서 한때 ‘혼밥’이 유행했던 시절 그렇게 혼자 맘 편히 식샤를 하고 다녔더랬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고른 메뉴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굉장히 바보 같은 대답인데 사실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싫거나 불편한 것은 전혀 아니다. 메뉴가 어떻든 ‘나는 아무래도 좋아’라고 생각했고 행동했지만 나의 그런 모습들을 돌아보니 내가 왜 그랬는지 새삼 궁금해져서 이유를 따져보았다. 결론은 나는 누구의 마음에도 다 들고 싶고 미움 같은 건 조금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큰 채로 살았었던 것 같다.


밥 메뉴 하나 고르는데 무슨 미움 타령이냐 할 수도 있지만 나처럼 흠 많은 작자가 관계라는 부분에서는 특히 더 병적으로 늘 완벽함을 추구했다. 작은 일에도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엄청 살폈고 타인에 대한 나의 평가가 늘 두려웠다. 눈치가 눈치를 낳았고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핵심을 완전히 빗겨나가) 밥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일에서조차 내 의견을 말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남들이 보면 저렇게 소심한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판단할 수 있으나 굉장히 모순적으로 나는 심각한 쿨병 환자였어서 아무도 내가 이런 작은 일들로 눈치를 볼 거라고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눈치라는 것도 남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쟤는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라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몰래 속으로 볼뿐이었다. 눈치는 눈치대로 보느라 속은 지칠 대로 지치고 겉으로는 쿨한 척하느라 또 지쳐 실수와 반복으로 점철된 지난 나날들. 정말로 눈치가 필요할 땐 아닌 척, 눈치 보지 말아야 할 곳에서 온갖 신경을 다 갖다 쓰는 등 하등 쓸 데 없는 곳에서 힘을 너무 뺀 나머지 항상 삐그덕 댔다. 그래서 지금처럼 나는 오랜 시간 후회와 반성을 일삼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는다는 어떤 노래 가삿말의 의미를 이제는 안다. 한때 나는 누구에게나 베스트이고 싶었으니까. 언제나 사람들이 찾는 1순위의 사람이 되고 싶었고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무한히 동경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낙인을 늘 품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대다수에게 사랑받는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 때문에 어떨 땐 어쩔 수 없이 외면받는 소수에게 미움을 사기도 했다. 당연히 모두에게 나눠질 마음이란 것은 한 사람의 몫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진심을 전달받기에는 시간을 쪼개고 나눠 쓰는 나에게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급기야 음식 메뉴 하나를 고를 때에도 모든 선택권을 상대에게 주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인생을 살기로 한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서 남에게는 만족을 주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만족을 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자의적 헌신적인 행위를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까? 내 의견이 어떻다 한들 존중해줄 사람이 많다고 믿지만 두려움이 앞서는 답답한 모습에 가끔은 혀를 내두른다. 내 마음의 여유에 달린 거란 것도 잘 안다. 이제는 내 마음의 내 주장의 선택권을 갖고 싶다. 누구도 빼앗지 않은 내가 원하는 결정, 나의 선택을 하고 싶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별 것 아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고도 괜찮을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싫어할까 저런 말을 하면 이 사람이 미워할까 따위의 고민 없이. 이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에게 질타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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