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도 늘 리셋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고야 마는 작자

# 손절 요청 금지

by 별솜별

어떤 관계에서도 제발 리셋하고 싶은 순간이 절대적으로 예외 없이 찾아오는 나라는 작자. 오래된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새롭게 인연을 맺은 관계일지라도 반드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오고야 마는 내가 지겹다.


누군가는 노력이란 걸 하긴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관계는 일방적인 노력으로 끝나기도 하고 상대방을 위한다고 여겼던 잘못된 방향의 노력으로 관계를 오히려 망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쉽게 비난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니냐고 가끔은 소심하게 되묻고 싶다.


관계에 있어 ‘리셋’을 원한다는 건 말 그대로 개선의 여지나 희망 따위가 더는 없는 상태인 것이다. 상대에게 더 이상 바라는 것도 화가 나는 것도 없고 그냥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여겨지는 그런 시점. 흔히 누군가에게 분노하는 감정이 느껴진다면 아직 열정과 애정이 남아있는 거라고들 하지 않나. 그런 관계는 리셋이 아닌 잠깐의 ESC 버튼이 필요할 뿐 관계 회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다시 말해 리셋을 원하는 감정이란 리셋하지 않는 한 도무지 방법이 없는 것이다.


보통 미화된 리셋의 개념을 따져보면 힘든 것은 잊고 다시 좋게 시작하도록 새로운 문을 연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의견엔 반대한다. 긍정이나 부정 그 어떤 방향으로도 한 치의 진척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인트인데 여기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마 현실세계에서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생각하는 관계 리셋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서로의 존재와 관련된 기억을 물리적으로 지우는 방법 정도면 적합하다. 이미 스위치를 꺼버렸으니 모든 건 0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 열에 하나 좋았던 기억이 있다 하더라도 그마저 없던 일처럼 전부 다 삭제되는 시스템. 다시 시작이 아닌 새 시작. 혹은 시작할지 말지조차 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얼마나 깔끔한가!


한번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는 쉽게 인연의 끈을 잘라내기 어렵고 어떻게든 언젠가라도 다시 엮일 가능성이 0.01%라도 있다는 사실이 싫다. 이놈의 작자 말본세가 예민 끝판왕이네?라고 생각하신다면 인정합니다. 싫은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요즘엔 ‘손절’이란 표현과 행동도 습관처럼 유행처럼 번지고 쉽게 행해지고 있지만 말이 손절이지 맘속에 남고 가끔 생각나는 정도만으로도 버거운 관계가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언제 어디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소식을 들을 수도 있는데 내 눈앞에만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억지로 차단하는 게 내 마음을 오래도록 편하게 할 리는 만무하다. 컴퓨터 전원을 끄듯 깔끔하게 너와 나 사이의 모든 관계가 OFF 상태로 놓일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그런 미래를 꿈꾼다. 이른바 ‘관계 리셋 제도’ 같은 시술이나 법이 도입된다면.. 하며 엉뚱한 상상도 더해본다.


누군과와 엇나가고 틀어진 관계는 고치고 노력해도 언젠가 다시 그 틈을 허용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게 시간문제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많다. 켜켜이 쌓인 상처와 실수들은 상대방과의 다음을 기약할 때 때론 무력하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잘못이 내게 있다 해도 마음이 불편하고 상대편에 있다 해도 마음이 무겁다. 한 번도 노력해보지 않은 관계는 있어도 한 번만 노력해본 관계는 없다는 게 나의 주장인데 타인의 마음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기에 속 시원한 해결책은 없을 것 같아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으로 누군가에게 손절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라는 작자의 극단적인 유약함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저도 관계 리셋을 몹시 추구합니다만, 저기 혹시 제발 저에게 손절요청은 말아주시길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관계 리셋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우리 조금만 너그럽게 최소한 한번은 꼭 (서로에게)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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