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힘듦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날이 오기를
남편과 다투는 패턴은 늘 똑같다.
남편이 내 행동에 대해 고쳐주었으면 하는 것, 또는 상처 받은 일을 이야기하면 나는 사과를 가장한 말 바꾸기와 떠넘기기 화술로 교묘히 상대의 화를 돋운다. 결국 사과를 듣는 상대는 오히려 점점 더 기분이 더러워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저러해서 미안하긴 한데 난 이런 이유가 있었고(핑계) 결국 너의 기분이 상했다면 정말로 미안해. 근데 있잖아 아까 그럼 너는 나한테 왜 이랬어? (갑자기 이야기의 본질에서 벗어나 상대에게 없는 탓을 돌린다. 굳이 굳이 찾아서) 우리 사이의 갈등에서 나만의 잘못만은 아니고 싶으니 원인제공의 책임을 어떻게든 나누려는 억지, T.P.O에 맞지 않는 자존심 부리기, 갑작스레 결부된 얼토당토않는 이유로 연기하는 피해자 코스프레, 상대의 대화 중단 선언(“지금 너 대화할 이성과 상태가 아닌 것 같아”),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결과로 결론지으려는 말 바꾸기의 말 바꾸기의 말 바꾸기의 비논리 향연, 결국은 대화의 파국. 끝의 끝의 끝까지 가서야 몇 시간 동안 퍼붓고 번복한 모든 언행을 깨달아버린 작자의 진심 어린 사과, 이미 상처는 받을 대로 받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앞으로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 상대(이쯤 되면 대화는커녕 마주 보는 일 자체의 회피로까지 번지는 일도 허다함)
그렇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내가 얼마나 혀를 끌끌 찰만한 안하무인의 고약한 이기주의로 가득 찬 작자인지 알겠는가. 자기반성을 주제로 글을 쓴다지만 눈앞에 마주한 현실은 늘 이렇듯 시궁창이다.
마음속에 깔린 피해의식, 나만 힘들다는 착각에 자주 빠져 살며 서로가 힘든 상황이 생길 때면 어느 정도 실수하고 엇나가는 일들에 대해 이해와 포용으로 감싸는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지만 절대 절대 영원히 그럴 수는 없을 것만 같은 사람. 스트레스에 최약체라 뱉으면 후회할 말들만 끊임 없이 뱉어내고 평생 후회와 회한을 늙어 죽을 때까지 안고 살 것 같은 분노와 감정 통제 불능자.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모든 것이 팩트이므로 스스로도 가끔은 혐오스러움에 치가 떨린다. 나는 얼마나 많은 걸 참고 넘기는데 왜 넌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는 굉장히 공허한 헛 착각에 빠져있는 것도 모자라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사과해도 거짓 사과에 묻혀버린 진실 속에 허탈해지는 서로. 끝은 보이지 않고 또다시 미안해야 할 일들만 계속해서 생성하는 도돌이표.
할 수만 있다면 이제 이런 나를 멈추고 싶다. 그저 저밖에 모르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철철 들끓는 새파란 피를 가진 나를 하루하루 더 증오할 뿐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회복 불가능한 싸움을 반복하고 서로 포기하는 지점만 늘어가는 현재 진행형의 깊은 한숨은 아무런 힘이 없다. 우리 관계에 남은 건 두렵기만 한 미래. 긴 긴 시간이 덮이고 덮여 미움도 뛰어넘는 무감정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