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부터 너가 내 언니 할래?
한 살 터울 여동생은 늘 나를 졸졸 좇아다니는 소위 말해 언니 바라기였다. 그녀는 잘난 것 하나 없는 언니가 어디가 그렇게 좋았을까.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녔고 내가 먹는 것이라면 배가 불러도 꼭 같이 먹어야 직성이 풀렸으며 못된 언니가 가끔 했던 ‘너랑 안 놀아’ 한마디에 ‘언니 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하고 바로 비위를 맞춰주던 세상에 하나뿐인 착한 내 동생. 한 살 터울이라지만 동생은 12월생이고 나와는 거진 20개월 차이가 나서인지 또래보다 더 작고 더 동생 같은 귀여운 아이였다. 자라면서 첫애에 대한 은근한 편애가 있던 우리 집에선 내가 잘못해도 동생을 탓하기 일쑤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엇나가거나 삐뚤어지지 않았던 녀석. 나에겐 부모님의 그런 편애가 때론 버겁고 부담스러웠는지 오히려 부모님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보였)던 동생이 부러웠다. 동생보다 유독 몸이 허약해서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 그래서 더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했었는지도 모른다.
유치원 때였던가. 어느 날 부모님이 동생에게 언니를 잘 돌봐주라고 언니가 힘없어 보이면 이 음식들을 챙겨주라고 부탁하며 외출을 하신 날이었다.
엄마가 직접 만든 크로켓이었는데 평소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라 먹고 기운 차리길 바라는 마음이셨던 것 같다. 물론 동생과 나누어먹을 몫까지 충분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도무지 그 좋아하던 크로켓이 당기질 않는 것이었다. 동생은 먹고 싶은 눈치였지만 언니인 내가 먼저 먹으면 같이 먹으려고 한 모양이었다. 그때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배고프면 지금 네가 이거 다 먹을래? 그리고 언니 소원이 있는데..” 동생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무슨 소원? 언니 소원이라면 뭐든 들어줄게.” 나는 비밀을 말하듯 동생에게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제부터..너가..내 언니 할래?”
동생은 가만히 그 말을 듣더니 나를 한동안 빤히 쳐다봤다. 자기에겐 하나뿐인 언니가 너무 소중한데 갑자기 그 존재가 자기의 위치를 내려두고 도망가려는 것처럼 보였을까. 지금까지 내 말에 한 번도 동의하지 않은 적 없던 동생은 그날 처음으로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이상하고 귀엽고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언니, 그건 안돼 아무리 언니 소원이라두.. 언니가 얼마나 좋은 건데 왜 그래. 만약 내가 언니가 되면 그럼 언니는 내 동생이 되는 거야? 난 언니한테 절대 언니처럼 못해줄 걸. 그럼 너무 슬프잖아. 그리고 난 언니가 되기엔 키도 너무 작아. 머리도 짧고.. 아마 아무도 내가 언니라고는 안 믿을 거야. 대신에 내가 엄마 아빠한테 한번 부탁해볼게. 언니에게 언니를 만들어달라고. 그럼 언니도 동생이 되는 거야 나처럼! 그럼 나도 언니가 계속 있고 언니도 동생이 될 수 있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께 동생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은 참 흔하지만 언니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은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맹랑 그 자체라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나는 더 자유롭고 편해 보이는 동생이란 그 자리가 탐이 나 그녀의 대답에 한동안 삐쳐있던 것 같다. 동생이 말을 걸어오면 대답도 안 할 정도로. 그때의 나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놀자고 다가오는 동생에게 매번 ‘이제 너랑 안 놀아(속으로는 그러니까 너가 내 언니 했음 되잖아)’라는 말만 반복했던 기억이다. 동생이 그 후에 엄마 아빠에게 무슨 부탁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껏 나에게 언니가 (당연하지만) 따로 생기지도 않았으니 아마 엄마 아빠는 동생이 뭔 헛소리를 하나 하고 흘려듣지 않았으려나. 나에겐 추억 속에 너무도 예쁘게 아로새겨져 있지만.
딱히 잘 챙겨주거나 다정하게 보듬어준 적 없는 차가운 언니에게 그토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었던 동생. 물론 청소년기에는 내내 울며 불며 불같이 다투고 여느 자매들처럼 옷 하나 가지고도 네 거 내 거 소리소리 지르며 살벌하게 싸웠지만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려 보면 나는 그냥 마음이 아득히 뭉클해진다.
그때의 동생이 나를 위해, 언니의 터무니없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자기 딴엔 최대치의 애정을 담은 대답으로 마음을 전해준 것이 벌써 30년도 넘은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담담하게 자기의 감정은 누르려 애쓰며 나를 바라보고 약간은 어눌하고 더듬더듬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대답해주었던 그녀에게 고맙다. 그 맘을 내 마음속 깊숙한 서랍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을 만큼. 한 번도 말해 본 적은 없지만.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고 한집에 같이 살지 않게 되면서 예전처럼 자주 만나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애틋하고 늘 마음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는 동안에도 언제나 나는 언니가 아닌 동생처럼 한발 늦었고 늘 동생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언니처럼 나에게 잘해주었다. 마음 씀씀이도 언니인 나보다 100배는 어른스러웠다. 나도 나름 노력했지만 그 마음을 넘을 만한 그릇이 아니었나 보다. 항상 내가 100을 주면 200으로 돌려주는 동생이었기에 어느 순간 더 잘해줘야겠다는 다짐보다는 늘 지금처럼 가장 가까운 곁에서 살피고 보살펴주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언젠가 동생이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고민이나 힘든 일이 생겨 나에게 털어놓는다면 나도 그때의 동생같이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 편에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전부 해 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나라는 작자는 왠지 모를 쑥스러움으로 철부지 같은 모습 속에 숨어 동생에게 ‘울집 와서 밥해주라 너 그거 잘하잖아~ 네가 해준 게 젤 맛있어서 그래~’ 또는 ‘우리 집 놀러 올 때 아이스크림~’하며 언니답지 않은 동생의 역할을 꾸준히 자처한다.
혹시 동생은 어린 언니의 그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서 혹시 언니가 또 그런 말을 언제 할지 몰라 손 많이 가는 언니인 나를 순순히 또 보듬고 보듬는 걸까. 그렇다면 또 한 번 나는 고마울 따름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는데. 나는 동생의 은혜가 더 하늘 같다. 너무 높고 푸르고 깊어서 항상 마음이 맑아지는 그런 하늘 같은 동생에게 무한히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