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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작자의 고민들

#프롤로그_물음표

by 별솜별


무언가를 계속해서 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회사원 시절에는 항상 시간에 쫓겼고 여유란 것은 거의 없다시피 살았어서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나름 반 백수로 살아가고 있기에 글쓰기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육아로 하루 종일 바쁜 휴직자, 그리고 주부, 엄마의 삶을 사는 지금의 나는 다행히도 틈틈이 짬을 낼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여러모로 자주 생긴다. 해야만 하는 일들 사이에서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조금이라도) 읽을 시간, 멍하니 듣고 싶은 음악을 (잠시나마) 즐길 시간 정도는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다 말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어쨌든 글을 쓸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전보다는 많이 생겼다는 건 반갑고 즐거운 일. 하지만 아무리 내게 여유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 시간을 할애해 매일 다른 주제의 글을 쓴다는 건 한편으로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이 귀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갈망하고 때론 완전히 휩싸여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나의 심리적 안정감. 이것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가 내게는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깨달았다 싶으면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물음표를 사정없이 찍어대는 것(나에겐 그것이 무수한 관계를 맺으며 생기는 어떤 감정들로 설명이 된다)에 대해 나는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터. 굉장히 심오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관계 속에서 느끼는 다양하고 아주 소소한 사건이나 질문, 문제에서 종종 나는 흔쾌히 또는 섣불리 답을 내리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를테면 엄마와의 관계 같은 것. 왜 나는 엄마만 보면 화가 날까? 라든지 엄마를 사랑하는 건 확실한데 사랑의 표현보다는 짜증과 이기주의를 보여줄 때가 나는 왜 많은 걸까?처럼. 때때로 나는 가족, 친구, 그리고 남편처럼 가장 가까운 존재를 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어린 시절 뚜렷한 사춘기 없이 10대를 보내서인지 오히려 나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가장 가까운 관계들을 마주할 때 늘 밀린 숙제 같은 어려운 입장과 감정들이 쏟아지곤 했다. 그래서 어떤 주제의 글을 쓸지에 대한 결론은 내 감정의 정리,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내가 느끼는 모든 심리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내가 바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을 맴도는 말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복직 후 회사생활에 도움이 될 마케팅 관련 자료를 모아 공부한다든지, 남은 휴직기간 동안 육아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기록하는 육아일기처럼 조금 더 정보 기록성이 강하고 생산적인(?) 주제에 대해 쓸 수도 있었겠지만, 이토록 귀한 여유 시간이야말로 나를 돌아보며 내 주변의 관계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 같았다. 한마디로 그동안 외면했던 것을 마주할 어떤 계기가 필요했던 것.


평소 고민이 많이 되는 분야다 보니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관계에 대한 정의나 태도에 관한 글은 수도 없이 봐왔지만, 정작 나는 진심으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없다. 내겐 너무 어려운 문제이기에 이런저런 책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어 보아도 그저 ‘나는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소시오패스인 걸까나’ 같은 정도의 결론으로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일쑤였고, 지금도 사실은 정확하게 내가 어떤 부분에서 이렇게 고민이고 힘든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깊이 있는 생각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여겨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며 마음의 물음표들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이 짧디 짧은 시간이 그 무수한 고민을 풀어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시간을 정해두고 무언가에 몰입하여 골똘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내겐 의미 있는 일일 거라 확신한다.


글쓰기에 앞서 써 내려갈 글감들에 대해 대략 말해보자면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떠나서 무작위로 그날그날의 상황이나 마음 감정에 따라 정할 것이며 순서는 따로 없다. 육아휴직에 들어서며 회사생활보다는 집에서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건과 생각들에 대해 먼저 풀어볼 생각이긴 하다.


덮어두고 영영 꺼내고 싶지 않은 감정들도 있겠지만 그런 감정들 속에서 마저도 내가 결국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마음에 시작도 하기 전부터 마음이 한결 설레고 편해진다. 차분하게 글을 쓰며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기꺼이 나에 대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글쓴이인 저를 ‘작자’로 칭합니다. 작자의 사전적 의미에는 ‘글을 쓰는 사람’ 외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있죠. 하지만 저는 종종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나 자신을 되려 낮추어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찰나의 순간은 늘 왜 항상 후회로 거듭될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하고 반성하고 번복하는 일을 계속하는 나의 모습을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어 스스로 정확히 직시하려 합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무수한 입장에 따라 써내려간 자기고백적 반성문을 통해 ‘나’라는 작자의 이상과 현실을 감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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