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라면이란?
"대한민국에서 라면 못 끓이는 사람도 있어?"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라면도 끓일 줄 아냐는 여자 주인공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더니 물과 스프의 양, 면 익힘 정도까지 상대에게 묻는다. 꼭 라면 끓일 줄 모르는 사람처럼. "솔직하게 말해 봐, 라면 처음 끓인 거지?"라는 여자의 장난 섞인 물음에 대답한다. "아니야, 나 혼자 먹는 거 아니고 너랑 같이 먹는 거고, 또 둘이 처음 같이 먹는 거잖아. 더구나 너하고 나하고 앞으로 어? 천 번도 넘게 이 라면을 먹을 수 있는데 네 취향을 정확히 알아둬야 내가 나중에 맛있게 끓여서 둘이 같이 맛있게 먹지."
간편하고 신속한 식사를 할 때는 물론 "라면 먹고 갈래?" 같은 이제는 너무 가벼운 유혹과 이렇게 담백한 프로포즈를 할 때마저도 라면만 한 게 없다. 대체 한국인에게 라면이란 무엇일까. 주어를 나로 바꿔 생각해보면 몇 가지 답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유년기에는 평소에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엄마의 패스트푸드 금지령에는 라면도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집 애들에게는 생일에나 끓여달라고 졸라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검정 고무신 세대 아님) 그렇게 끓여도 채 한 개를 다 먹지 못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일을 시작하면서 내 안에 이상한 허기가 생겼다. 전엔 남기거나 둘이 나누어 먹던 라면 한 개를 다 먹는 건 물론 밥까지 말아 싹싹 긁어먹을 수 있을 만큼 위 용량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다행이었던 건 고시원 찬장에 열라면은 가득히 채워져 있다는 것이었고, 덕분에 저녁 밥값을 아낄 수 있었다. 찬장에는 ‘쟁여두기 금지. 필요할 때 하나씩 끓여 드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입이 궁금할 때면 공용 주방에서 몰래 한두 봉지를 챙겨와 아그작 아그작 과자처럼 뿌셔 먹었다. 그리고 채식을 하는 지금도 맘 편히 먹을 수 있어 다행인 음식이기도 하다.
이날은 복잡하게 먹고 싶지 않아 라면으로 투움바 파스타를 만들었다. 투움바 파스타는 두툼한 페투치니 면에 크림 소스, 그리고 매콤한 고춧가루를 더해 만든 요리다. 미국의 아웃백 스테이크 메뉴로 탄생되었으나 미국에선 단종, 한국에선 불티나게 팔렸다. 고소함을 좋아하고 매콤함은 완전 사랑하는 한국인에겐 사랑받지 않을 수 없다. 멋진 한국인은 라면으로 투움바 맛을 기막히게 비슷한 정도로 재현하는, 그리고 아주 빠른 시간 이내에 간단하게 만드는 법을 발견했고, 지금에 와서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레시피이다.
나는 식물성 재료로 만든 풀무원 정면으로 요리했다. 정면은 채식인에게 기쁨이요, 빛과 같은 존재다. 채식을 시작하고 한참 후에 정면을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식물성 재료로 만든 라면이라니, 게다가 마트 가면 쉽게 살 수 있다니,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라면이라니! 맛있고 자극적인 비건 투움바 라면은 빠르면 5분 안에 만들 수도 있다.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에 따르면 살아가면서 천 번도 넘게 먹을 음식이니, 그 중 50번 정도는 색다르게 즐겨봄이 어떠신지.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