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여자와 동물을 떠올리며
띵동, 틱톡에서 알림이 왔다. 오늘은 정월대보름이고 정관 스님이 먹방 유튜버와 함께 사찰 음식을 만들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고 했다. 벌써 대보름이구나. 스님도 틱톡 라이브를 하는구나. 알림을 터치해 라이브를 켰다. 스님은 잡곡밥을 짓고 햇볕에 말려두었던 나물을 잘 익히고 양념해 그릇에 소담스럽게 담았다. 그 안엔 사계절이 들어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진행자는 완성된 요리를 들고 토핑으로 올라간 나물을 하나씩 맛보며 외쳤다. “자, 봄 들어갑니다. 여름 먹어볼게요. 음, 이번엔 가을이에요. 자, 마지막 겨울이에요!” 그는 능력 있는 방송인이었던 것 같다. 그걸 보자 군침이 돌고 나물이 먹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했던 표현대로 ‘거칠거칠한’ 그런 나물 말이다.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나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달갑지 않다. 명절이나 제사가 끝나고 남은 나물을 처리하기 위해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반복적으로 자리하고 있어서다. 친가는 문중의 큰집이었고 엄마는 그 큰집의 장남의 아내이자 유일한 며느리였다. 그리고 우리 집은 딸만 넷. 그래서 A성씨의 대는 끊어졌다. 우리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끊었다는 표현이 조금 뭣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끊어져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한. 아무튼 우리 가족이 친가에 간다는 건 추석이나 설날, 시제,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제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신 등 어떤 이슈가 있다는 것. 이는 일가친척들이 모인다는 것을 의미했고, 결국 엄마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꼴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많은 없던 딸들은 단 한 번도 멀쩡한 차림으로 조부모님 댁에 가본 적이 없다. 늘 추리닝이나 고무줄 바지, 티셔츠 위주의 편한 ‘일복'을 입은 채로 아빠 차에서 내렸다. 청바지를 입고 가는 날이면 자줏빛 바탕에 꽃무늬가 잘게 그려진 할머니의 고무줄 바지를 빌려 입곤 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내어준 것이었지만, 어렸을 땐 할머니 몸빼 바지를 입는 게 그저 억울하기만 했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으면 고모네 아들과 딸들이 말끔한 옷을 입고 속속들이 도착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나도 예쁜 옷 입고 가고 싶다며 떼를 쓴 적이 있는데, 엄마는 어차피 갈아입을 건디 뭐단디 좋은 옷 가져가냐고, 그냥 편한 거 입고 가야, 하며 나를 타일렀다.
그리고 만드는 각종 요리들. 고기며 전이며 맛있는 음식은 대부분 고모들과 이름 모를 당숙, 작은할아버지와 고모네 가족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대부분의 딱딱하고 냄새나는 생선과 각종 나물들은 우리 차지였다. 물론 맛은 있었지만 늘 잔반 처리반이 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와서 이 많은 음식을 만드는데, 조상들이 먹고 남기고, 그중에서도 남들이 남기고 간 것들만 우리 것이 되는구나, 싶었다. 잔반 오브 잔반 때문에도 그랬지만, 그게 우리 가족의 입장인 것 같기도 해서 서럽고 화가 났다. 늘 우리는 뒷전, 남들에게 양보하고 퍼주기만 했던 엄마가 싫었고 옆에서 별생각 없었던 아빠는 미웠다. 그러고 나면 우리 집 식탁엔 제사상 그대로의 나물과 생선이 올라왔다.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우리 집이 대소사를 책임져야 할 진짜 큰집이 되었지만 이전만큼 사람들이 모이는 일은 드물다. 엄마는 일 년에 7번 지내던 제사를 3번으로 축소했다. 이제 완전히 없애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도 엄마는 그래도 이건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래도 해야지’라는 말엔 늘 ‘이거라도 해야 너네가 복 받지.’ 같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 따라왔다. 엄마, 조상복이란 걸 받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우리 집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 같아. 게다가 때맞춰 밥 안 준다고 복 대신 벌을 주겠다는 조상이라면 그건 조상치곤 좀 쫌생이 같다. 내가 조상이라면 후손들이, 그것도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도 아닌 다른 집안의 여자가 힘들게 만들어 바치는 음식을 굳이 먹고 싶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간 우리 집 딸들과 엄마의 허리와 근육을 갈아 집안사람들이 편하게 절을 해왔던 거면 이제는 안 하고 안 받을 때가 됐다. 기리고 싶다면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기억하면 되는 것을, 그 뒤에 누군가의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고통이 추가될 필요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숱한 나물과 제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정월대보름. 여기서 ‘정월'은 천지인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천지인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중요한 건 이 셋에 있어 우선순위나 특별한 비중을 둔 게 아니라 모두 동등한 위치에 두고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많은 생명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단백질 보충이라는 신화 앞에, 보양이라는 핑계 앞에, 맛이라는 욕구 앞에 돼지와 닭과 소가 일방적이고 반복적으로 고통받아야 할 이유는 아무래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스님이 틱톡 라이브를 켤 만큼 많이 변했다.
정월대보름 아침엔 부럼을 깨야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이명주를 마셔야 귀가 밝아지고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 들으며 오곡밥과 나물을 먹어야 액운을 쫓고 풍년을 부른다고 한다.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누군가의 희생이 수반되지는 않으니 나는 마음껏 기분을 내보기로 했다. 잡곡밥을 지었고 무나물, 시금치나물을 만들었다. 예전엔 제사 후 반찬통에 담겨있던 무나물이 썩 달갑지 않았는데, 만들어보니 들기름의 고소한 향이 마음을 동동 띄워주었다. 시금치도 데친 후 마늘과 소금, 깨와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하니 금세 완성되었다. 기분이다, 먹고 싶었던 곤약 버섯 장조림과 연근 샐러드도 만들고 전날 만들어둔 버섯 된장국도 데웠다. 그리곤 이명주를 겸하여 비건 맥주 호가든을 꼴깍꼴깍 비워냈다. 아, 정월대보름의 풍습 중 또 한 가지는 달맞이다. 가장 먼저 달을 본 사람은 1년 내내 운수가 좋다고 하던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날 밤 달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여자도, 동물도 아프지 않고 자유롭게 해 달라고. 그렇게 한 해의 첫 보름달을 만났다.
무나물 레시피
무 1/2개, 마늘 1큰술, 들기름 2큰술, 설탕 1/2큰술, 식용유 1큰술, 다시마 육수 100ml, 참기름 1큰술, 깨
1. 채 썬 무에 소금을 뿌려 20분간 절여둔다.
2. 헹구고 물기를 뺀 무에 마늘, 들기름, 설탕, 식용유를 넣고 버무려준다.
3. 2를 팬에 볶다가 다시마 육수 100ml를 부어 마저 익힌다.
4. 불을 끈 뒤 참기름과 깨를 뿌려주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