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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싱 Jan 21. 2021

찐하고 강렬한 비건의 맛, 비건 탄탄멘

포기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다

채식을 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요리는 대부분 양념 맛이라는 거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하고 단순한 개념을 오랫동안 모르고 지냈다. 고기를 넣지 않아도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데 왜 고기가 필수 재료인 것처럼 생각했던 걸까. 깨닫고 났을 때는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채식을 시작했다는 소리에 뭘 먹고 사냐 묻는다. 그렇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전보다 더 많이, 잘 먹고 살고 있다. 매 끼에 들어갈 재료를 선택하는 것부터 만들기까지의 과정에서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훨씬 늘어난 이유가 크다. 좋은 재료가 있다면 기본양념을 더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하게 맛있고 되려 맛의 높은 수준에 가닿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누구도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거기에 맛있기까지?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채식 생활 이전의 내게 채식은 희고 슴슴한 절임무 같은 이미지였지만, 막상 해보니 절임무가 바다에서 배영하는 소리다.


감자 없는 감자탕, 순대 없는 순대볶음(순없순), 새우 대신 버섯을 넣은 감바스, 어묵 대신 유부를 넣은 떡볶이 같은 요리를 해보면 그 생각은 더 확고해진다. 고기 없인 절대 안 될 것 같던 요리들이 고기 없이 가능한 걸 보면 이제 안 될 게 없다는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긴다.


아이라인 못 잃어 인간이던 과거의 나, 몇 년 뒤 아이라인까진 오케이. 그렇지만 섀도는 진짜 포기 못 한다고 말했던 나. 이젠 쌩눈으로 잘만 산다. 요즘엔 피부 화장도 줄였다. 선크림만 발라도 더 이상 내 얼굴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울을 수시로 보는 습관도 고쳤고, 점심시간에 주머니가 불룩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립스틱을 꾸역꾸역 챙겨나갔던 나는 이제 립밤만 가볍게 챙긴다. 삼 년 전 생애 처음으로 숏컷을 하던 날 잃지 못할 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게 더 멋지다는 생각도 함께.


고맙게도 채식은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게 더 많다. 몰랐던 식재료를 알게 되고 몰랐던 맛을 느낄 수 있다. 물과 숲, 곡물 자원을 아끼고, 메탄가스 배출을 줄이며 몸은 활력을 얻고 건강해진다. 최종적으론 먹지 않아 살릴 수 있는 생명이 있다. 한 번이라도 죄책감 없는 식사를 해봤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누구도 죽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을, 그리하여 눈앞의 음식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가볍고 편안한 마음을.


이 날은 탄탄멘을 만들었다. 사골 육수와 다진 고기 고명이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탄탄멘이었지만 식물성 재료만으로 고소하고 진득한 맛을 냈다. 향신료와 양념장을 요리조리 조합하고 뒤섞다 보면 내가 알던 그 맛이 나오니 신기할 따름이다. 채식을 시작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강렬하고 진한 맛을 경험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미식의 즐거움 덕에 오늘도 요리는 놀랍고도 재미있는 시간이 된다.




비건 탄탄멘 레시피


재료

국물 채수용 다시마 2-3개, 건표고버섯, 물 200mL, 두유 250mL 양념 타이시아 피넛 월남쌈 소스 5스푼(피넛버터 등으로 대체 가능), 두반장 2스푼, 간장 4스푼, 설탕 2스푼, 다진 마늘 1/4스푼, 라유 내 맘대로(필수!), 식초 쪼록, 후추 쪼록  아무거나 토핑 파, 버섯, 유부, 콩단백, 청경채, 숙주 등 집에 있는 재료


RECIPE


1. 다시마 2-3장과 말린 버섯을 넣어서 팔팔 끓여 채수를 만든다.

2. 라유와 땅콩 소스, 간장, 설탕, 다진 마늘, 두반장, 식초와 후추를 넣고 넣고 두유를 부어 섞는다.

3. 면은 미리 삶아 건져둔다.

4. 탄탄멘 위에 올릴 고명을 먹기 편한 크기로 자르고 볶는다.

5. 만들어둔 채수에 양념장을 넣고 끓여준다.

6. 그릇에 면을 담고, 국물을 부어준 뒤 고명을 올린 뒤 라유를 한 번 더 뿌려준다.


더 매콤한 맛을 원하면 라유를 더 두르거나, 보다 진득한 질감이 좋다면 두유와 다시마를 좀 더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본래 비벼먹는 형태의 요리지만 나는 좀 더 국물이 많은 느낌을 원해서 만들었으니 취향에 따라 채수의 양을 조절하면 될 듯하다.


*하루비건(@haru.vegan)님 레시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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