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싱 Feb 10. 2021

만나는 걸음걸음, 길거리 토스트

걷다 보니 궁금해졌다

강아지와 함께 살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산책을 하게 된다. 별 다른 일이 없다면 계속해서 반복될 일이나, 천재지변에 가까운 긴 장마가 이어졌던 지난해엔 예외로 둔 기간도 있었다. 올해로 11살이 된 강아지 쪼꼬는 이 시기를 아주 침울하게 보냈다.

 

산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모르는 사람을 마주할 때 대체로 설렘보단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섣부른 만남이 어려운 이 시국에선 때때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반갑다. 대부분은 산책하는 강아지와 그와 함께 걷는 반려인을 만날 경우다. 가끔은 길에서 나누는 몇 마디가 그날의 첫마디가 되기도 한다.

 

"인사해, 안녀엉~"

"아유, 귀여버라. 몇 살이에요?"

"아이고, 언니네~”

“반가웠어, 잘 가!"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이렇다. 마스크를 썼지만 마음의 표정을 읽는 건 어렵지 않다. 마스크와 함께 광대가 올라가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서 말끝은 부드럽게 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다. 반려인끼리는 한 마음이 된다. 그때 강아지의 마음을 대변하는 대리인이 되어 내가 강아지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는 '강아일체'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10초든, 5분이든 강아지들과 사람들은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자신이 매일 걷는 길을 따라 유유히 걸어간다.

 

그런가 하면 놀랄 때도 있다. 지난밤엔 패딩을 입은 아저씨가 앞으로 휙 지나가다 "뿌왕!" 하고 방귀를 뀌었다. 쪼꼬도 나도 흠칫했다. 밤이라서 그런 걸까? 우리가 있는 걸 몰랐을 수도 있다. 뒤늦게 우릴 발견하고 얼굴이 화끈해졌을지도 몰라. 그래도 담배 피우는 것보단, 길에 침을 뱉는 것보단, 마스크를 안 쓰는 것보단 방귀가 낫지. 그런데 길엔 방귀 뀌는 사람보다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거나, 마스크를 쓰지 않는, 혹은 이 모든 걸 다 하는 중인 사람이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와중에 패딩 아저씨의 의중이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걸음을 멈추진 않는다.

 

종종 아침에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출근 전 빠르게 배변을 시켜주기 위해서다. 분단위로 움직이는 출근 시간이다 보니 마주치는 인물들이 겹칠 때가 많은데, 그중엔 토스트를 파는 부부 사장님도 있다. 언젠가 집에서 친구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걷고 싶은 기분이 들어 동네 산책을 했다. 아침 시장은 분주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시장이 열리기에 6시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우린 열지 않은 조용한 시장을 걸었다. 사람이 없는 것은 문 닫은 밤의 시장과 마찬가지인데, 오늘의 새로운 사람들이 이곳을 향해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요상했다. 곧 움틀 것 같은 곳이 낌새 하나 없이 고요했다. 조금 더 걷자 고요를 깨뜨리는 전자음으로 가득한 인형 뽑기 가게가 나왔고 몇 천 원을 잃은 끝에 곰인형 하나를 안았다. 또다시 걷다 보니 아까는 없던 토스트 포장마차 하나가 시장 초입에 나타나 문을 열고 있었다. 시장보다 먼저 시장의 아침을 여는 이는 어떤 분들 일지 궁금해졌다. 마침 배가 고풋해지기 시작했다. 밤새워 술을 마시며 안주도 쉬지 않았건만. 우린 간이 의자에 앉아 햄치즈 토스트를 하나씩 주문했다.

 

두 사장님은 이곳에서 수년째 매일 같은 자리에서 토스트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하루 종일 그 자리를 지키는 건 아니고 사람이 가장 많을 오전 시간에만 장사를 하다 출근시간이 끝날 무렵 문을 닫는다. 한 사람이 먼저 나와 장사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이 와서 정리를 돕고 함께 포장마차를 끌고 밀며 돌아가는 식이다. 그게 완전한 퇴근은 아니다. 남자 사장님은 곧바로 아파트로 출근을 하고, 여자 사장님은 오후까지 눈을 붙인다. 그러다 어둑한 저녁이 되면 새벽까지 호프집에서 속을 채워도 채워도 시장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편안하진 않지만 자꾸 하다 보니 버틸만하다고,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한다.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건너편 앉은 여자애들에겐 쿨피스 하나씩 건네줄 여유도 있다. 다음에 호프집에 놀러 오라는 얘기도 잊지 않는다.

 

밤을 새 술을 먹다 걸었던 사람은 몰랐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듣고 나니 부끄러움과 함께 뭔지 모를 힘이 났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았다. 토스트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하늘은 푸른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길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어 온 손님의 주문을 받느라 사장님들은 정신이 없다. 그 뒤로 토스트집에 몇 번 더 갔다. 아쉽게도 이 집의 기본 메뉴는 햄치즈토스트이고, 햄과 치즈, 계란으로 만드는 토스트를 이젠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순 없지만 그날의 대화는 가끔씩 떠오른다. 피곤하고 몽롱한 느낌, 어둑한 배경, 차가운 공기, 그렇지만 힘을 내는 사람들.


오늘도 어김없이 포장마차와 함께 돌아가는 사장님들을 마주친다. 마음으로 작은 응원을 보내고 나면 점차 그들 뒤로, 옆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들 어디로 향하고 있나, 또 어떤 이야기를 품은  걸음을 재촉하고 있나.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을 거라는 어림만 하며 그저 궁금해할 . 냄새를 맡고 흔적을 남기며 가끔은 달리는 강아지와 함께 오늘도 부지런히 동네를 걷는다.


 


비건 길거리 토스트 레시피


재료


호밀식빵, 당근, 양배추, 파, 물, 부침가루, 카레가루, 소금, 비건 슬라이스 치즈, 케첩, 식물성 마요네즈, 설탕


RECIPE


1. 팬 혹은 에어프라이어에 식빵 2조각을 구워준다.

2. 당근과 양배추, 파를 채 썰고 재료가 뭉칠 정도로만 물과 부침가루, 카레가루, 소금을 넣고 섞어준다.

*두부가 있다면 물기를 빼고 넣어줘도 좋다. 달걀의 부드러운 식감을 낼 수 있다.

3.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익혀준다.

4. 반죽이 익으면 반으로 나누고 슬라이스 치즈를 얹은 뒤 다시 반으로 접어 치즈를 녹인다.

5. 구워진 빵 위에 식물성 마요네즈를 발라준다.

6. 빵 위에 패티를 올린 뒤 케첩과 설탕을 취향껏 뿌려주고, 채 썬 양배추를 올려 남은 빵으로 덮어주면 완성!




이전 06화 스님의 틱톡과 정월대보름, 나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