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푸, 아프기 싫어서 시작한 샴푸 없는 삶
뜨거운 김이 퍼지는 욕실. 부드럽고 동그란 거품이 이는 향기로운 시간. 샤워를 하며 이따금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샴푸가 만들어내는 이런 몽환적인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슬픈 마음도 모두 사라지게 하는 샴푸의 요정도, 흔들리는 꽃향기 속에서도 당신의 샴푸 향이 느껴진다는 가사가 탄생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흩날리는 바람을 타고 머리칼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에 대한 로망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진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로망은 내게서 사라진 지 어언 반년이 넘어가고 있다.
시작은 생리통이었다. 늘 크고 작은 생리통을 달고 살아온 터라 고통에는 나름 익숙한 편이었다. 고등학생 때 심한 생리통으로 한 번 쓰러진 이후로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의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대개 이런 식이다. 배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시작되면 설사를 하고, 온몸이 저리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역질이 나고 몸은 파르르 떨린다. 갑자기 강한 추위가 느껴지는데 배는 점점 더 강하게 조여 오고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말았다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고통은 잠잠해진다. 순간적으로 혈액 순환이 되지 않으면서 의식도 희미해지는 상황. 이건 아마 쇼크 상태가 아닐까 싶은데,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머쓱할 정도로 멀쩡해진 상태가 되어 잔잔한 요통과 불쾌감 속에서 남은 4일을 보내는 것이다. 일하고 퇴근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그런 척하며.
다행히 서울에서 이런 식으로 크게 아픈 적은 많지 않다. 그런데 한 번씩 목포에 내려가면 꼭 강한 통증이 찾아왔다. 갈 때마다 자주 아프니 처음엔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의 집보다 서울 집 방 한 칸이 더 편안하게 느껴진 지 오래였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나, 싶어 스스로 무던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통증이 서울 집에서도 찾아오더니 주기가 올 초 들어 점점 잦아지는 것이다. 그간 약(게보린-타이레놀-이지앤식스의 계보)과 배에 올릴 뜨거운 물주머니, 고통이 느껴지는 부위에 겔 스티커를 붙여 전류 자극으로 고통을 덜 느끼게 해 준다는 전자기기(효과가 정말 좋아서 한 동안 통증 없이 살기도 했었다.)까지 갖춘 나는 느닷없이 찾아올 고통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템빨로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절망적이었고, 일상생활이 불가해지는 상황이 오자 생리는 불쾌감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그런 나를 보자 동생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제목은 <아니요 스트레스성 아닌데요>. 병원에 가면 늘 ‘스트레스성’이라 진단받은 증상들이 화학제품을 끊으면서 완화되는 자발적 생체 실험기다. 그중엔 생리통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작가 역시 집이 바뀔 때마다 심해졌던 고통의 패턴과 매우 유사했다.(나만 이런 줄 알았다.) 그는 원인이 평소에 쓰던 샴푸와 달라지면서 몸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추측, 샴푸를 끊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매달 생리를 전후로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졌을 뿐 아니라 평생을 괴롭혔던 트러블과 각종 통증, 체질마저 점차 완화되고 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작가는 바디워시, 치약 등의 화학 약품을 끊어나가며 늘 ‘스트레스성’이라 부정당해왔던 병의 원인을 하나씩 해결해나간다.
책을 읽고 나니 지푸라기라도, 아니 내 머리칼을 잡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당장 시도해보기로 했다. 방법은 이렇다.
1. 머리를 감기 전 5분 이상 충분히 빗어준다.
2. 미온의 물을 사용한다. (유분과 노폐물을 더 효과적으로 씻고 싶다면 밀가루를 물에 섞어 씻어낸다.)
3. 지문을 활용해 두피를 꼼꼼히 씻는다.
4. 드라이어로 바로 말려준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리고 이 간단한 변화가 가져온 변화는 드라마틱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