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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여덟에 쓰는 사명선언서

남은 인생을 위한 나와 세상을 향한 약속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춰섰을 때 저는 <신영복 평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삶에서 제 자신을 만났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삶은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28세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기까지의 훈습의 시기, 교도소라는 대학에서 무기수로 산 20년의 학습의 시기, 그리고 1988년 가석방되어 죽기까지 28년의 각성의 시기입니다. 


제 삶도 같은 시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27세에 신학교에 입학하기까지의 훈습의 시기, 신학교에서 배우고 사제로 서품을 받고 산 20년의 학습의 시기, 그리고 2020년 3월 어느 날, 저의 삶이 앞으로는 각성의 시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의 삶입니다. 


지금 제 나이가 마흔 여덟입니다. 인생의 내리막길인 것은 확실한데 뭐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이 시기에 신영복 선생이 무기수로 있다가 가석방 되었을 때의 나이가 마흔 여덟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십년하고 이십일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갑자기 세상으로 내보내졌을 때 선생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치만 선생의 삶을 보면 무엇인가 새롭게 익히고 시작하기에 마흔 여덟이라는 나이는 그리 외람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제게 27년의 시간을 더 주고 싶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보낸 20년 학습의 시기를 기준으로 해서 훈습의 시기와 각성의 시기를 28년씩 산 것처럼, 저 역시 신학교와 사제로 산 20년 학습의 시기를 전후로 27년씩의 삶을 허락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75세에 저는 하느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사제로 서품된지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게 주어진 각성의 시기 27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동안 배운 것을 가지고 변화와 실천을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을 가장 잘 해야 하며, 그리고 해야 할 것을 잊지 않고 사는 길, 그 길을 ‘예언자의 길’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예언자는 예루살렘 밖에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 그 길을 가야합니다. 


여기서 저는 ‘사명’이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목표가 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드러내고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산을 오르며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며 나의 자유와 자아성취, 그리고 행복과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다리(bridge)가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다리로 희생하는 삶,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하나의 과정이 되는 삶을 바랍니다. 달리 말하면, 두 번째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주인이 제가 아니기에 저는 하느님의 종으로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희생을 통한 기쁨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합니다. 


사람을 만나 알고 사랑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그동안 저와 세계를 가둔 갇힌 사고와 문맥, 곧 자본, 이데올로기, 왜곡된 관계성을 깨고 벗어나게 만들겠습니다. 나는 관계며, 세상도 관계임을 성찰하면서 당대 사회의 과제를 비켜가지 않고 저의 삶으로 끌어안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처럼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예수처럼 사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저의 근심은 오직 하나, 예수처럼 살지 못하는데 있을 뿐입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I fear death, but I made up my mind). 나의 가장 친한 벗인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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