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카페의 미래를 발견하다

스토리가 있는 제주도 카페

제주도에는 멋진 카페가 많다. 민트빛 제주도에 어울리는 소라빛 카페, 치자 꽃 향기 가득한 카페 마당, 눈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입에 침을 고이게 하는 커피와 독특한 디저트, 제주도에는 그저 바라만 봐도 행복한 카페가 많다.


그동안 제주도에서 나는 여러 카페를 방문했다. 오후의 에스프레소 더블을 즐겨 마시는 나는 어느 카페든

에스프레소 투샷을 종이컵이 아니라 잔에 설탕과 함께 준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몇몇 아름다운 카페가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고, 그 카페들을 보면서 카페의 미래를 발견했다.


첫번째, 카페의 미래에는 역사가 있다. 제주 구도심에 있는 '순아(Soona)'는 일본식 건축물을 거의 그대로 쓴다. 처음 가게를 열 때 멋지게 리모델링을 할려고 했으나 인테리어 업자의 제안에 따라 옛날 모습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갈려면 신발을 벗고 위태로운 계단을 올라야 한다. 2층 다다미 방에 오르면 옛날 가구와 장식품이 펼쳐져 있다. 


음료에도 역사가 있어 옛날 제주도 사람들이 약으로 먹었던 '댕유지'와 식혜 비슷한 '쉰다리'가 있다. 다다미 방에 앉아 댕유지를 마시며 오래된 창문으로 바라보는 제주 구도심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의 흔적을 되새기게 한다.


카페 순아의 2층


두번째, 카페의 미래에는 스토리가 있다. 서귀포시에서 유명한 '허니문 하우스(Honeymoon House)'는 한때 이승만 대통령 별장으로, 후에는 파라다이스 호텔로 80년대 신혼부부들의 최고 허니문 장소로 각광을 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고 대한항공에서 인수한 후에도 오랫동안 문을 열지 못하다가 2018년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허니문 하우스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풍경과 지중해식 건물이 방문자를 낯선 세상으로 데려다 준다.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와 당근케익은 펼쳐진 서귀포 앞바다의 환상적인 풍경과 함께 옛 영화를 그대로 들려준다. 허니문 하우스에는 사랑의 풍경과 스토리가 가득하다.


 카페 허니문 하우스 입구


세번째, 카페의 미래에는 생명이 있다. 과거 한림항에서 제분공장으로 쓰였던 건물을 있는 그대로 살린 '엔터러사이트(Anthracite)'는 카페를 통해서 역사와 스토리가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것을 보여준다. 흔히 사람들이 도시와 문화의 '재생(regeneration)'을 말할 때 옛 것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의 생명력을 최대한 지키며 과거의 전통과 삶을 현재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엔트러사이트는 흔한 프랜차이즈나 화려한 건물의 카페가 아니라 그냥 봐서는 창고와 다를 바 없는 제주 시골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건물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고 새론 지역 문화 생명이 커피향, 이끼와 함께 자라고 있다.


카페 엔트러사이트


카페의 미래는 역사와 스토리, 생명력에 달려 있다. 미래에 우리와 함께 할 카페는 우리 삶의 일부로 역사와 문화가 녹아드는 공간이며, 그곳에서 건물, 문화, 사람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은 이제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좋은 카페에 가기 보다 멋있는 커피를 마시러 특별한 카페에 간다.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편안하면서도 상상을 자극하는 생명력이 카페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작지만 소중하고, 낡았지만 의미있는 카페에서 나는 제주도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그리고 누구나 이곳에 와서 특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공간,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카페야말로 앞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카페의 미래다.


이전 19화 제주 맥주 기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