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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

해가 지는 해변을 걷다가

해가 진다. 긴 하루가 저문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보내야 한다. 쿨하게 윙크를 날려야 한다.


서둘러 삼양해수욕장을 찾았다. 지는 해에게 서루트(salute) 하기 위해.


놀란 것은 일몰 예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걷는 사람, 일찍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 이들은 모두 지는 해에게 예를 표하기 위해 바닷가에 모여 들었다.


지는 해는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해에게서 비롯된 에너지가 이제는 사그라들고 남은 마지막 기운으로 보는 이에게 전해지는 까닭에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이는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설 수 밖에 없다.


바닷가에 내려가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발을 담그었다. 따듯하다. 걷기 시작한다. 편안하다. 오래도록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지만 여운은 남아 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지는 해의 여운과 함께 남은 기운으로 다가온다.


지는 해를 보내는 실루엣의 사람들


모래가 발바닥 전체에 와 닿는다. 부드럽다. 따스한 바닷물이 갑자기 차가워진다.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만나는 지점이다. 성급히 발을 빼지만 정신이 번쩍 든다.


그때, 도로 인도 위에서 '순아(Soona)' 카페 사장님이 나타났다. 내가 아는 세 번째 제주도 사람이 삼양해수욕장에 나타나 내게 인사를 건넨다. 집이 바로 이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삼양해수욕장 끝에 '이솔라(Isola)'에 가보라고 한다. 맛있는 피자와 맥주가 있으며 주인장이 열심한 신자이며 딸이 대구에서 활동 중인 생활성가 그룹 '팍스(PAX)' 싱어였다고 한다.


이렇게 좁은 세상이 있나! 갑자기 나타난 순아 주인장은 하느님이 보낸 천사인양 목적지를 가르쳐 주고는 총총이 사라졌다. 그래서 늦은 시간이지만 이솔라(섬이라는 뜻의 외국어)에 올라 생면부지의 지인을 만났다. 그저 같은 대구에서 왔음으로, 혹은 어디선가 스쳤다는 사실로 공감의 대화를 나누었다. 


삼양해수욕장의 섬, 이솔라


밤에 해변에서, 우리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현종 시인은 '섬'이라는 시에서 노래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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