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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차귀도를 바라보며 해변가에서 미사를 바치다

200년 전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18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한국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 호를 타고 귀국하던 중 큰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제주도 차귀도에 표착하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조국 땅을 밟았으니 그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리고 그날이 바로 주일이었으니 일행은 차귀도 해안가에서 한국 사제의 최초 미사를 봉헌하였을 것이다.


오늘 아침 일찍 동료 사제와 함께 '성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이 있는 용수성지를 방문했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유네스코 선정 올해의 세계 인물을 만나러 가는 것만이 아니라 김대건 신부가 표착한 차귀도에서 우리의 미사를 봉헌하고 싶었다.

 

용수성지 @google.com


무인도인 차귀도에 들어가는 유람선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까닭에 우리는 차귀도가 보이는 수월봉 부근 해안가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바로 눈앞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국 1호 사제가 최초로 봉헌한 미사를 기억하며, 4547호 사제인 나는 김대건 신부가 바친 미사를 다시 봉헌했다.


차귀도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생각하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느님을 믿고 목숨을 다 바쳐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걷는 것, 이것이 김대건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그는 아무 계산도 없이, 어쩌면 아무 소득도 없이 삶을 죽음과 바꾸었다.


젊은 사제 둘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하신 스승님의 말씀에 따라 차귀도를 바라보며 김대건을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176년 전에 이미 죽음을 경험한 김대건이 바쳤을 첫 미사에서 그가 드렸던 기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주님, 이제 저는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차귀도에서 조국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김대건 신부는 다시 마음을 잡고 더 용기있게 예루살렘을 향해 걸었다. 이듬해 1846년 관헌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과 조정의 온갖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그해 9월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안타깝고 슬픈 인생이 아니겠는가! 십년 가까이 신학생으로 외국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사제가 되어 조국에 돌아와 단 1년만에 목숨을 바쳐야 했으니 그 삶이 허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차귀도를 바라보며 해안가에서 봉헌한 미사


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가장 먼저 한국 성직자의 길을 걷다가 스물 다섯 나이에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친 김대건을 기억하며 그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기에 그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김대건은 그의 삶을 뒤따르며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 


차귀도 해변가 파도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지난 7월 차귀도를 바라보며 쓴 글을 다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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