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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도 우십니까?

영화 <탄생>을 보고

지난해 김대건 안드레아 탄생 200주년을 맞아 제주도에 있는 용수성지를 찾아갔다. 실제 크기의 라파엘호를 보면서 과연 이렇게 작은 배로 페레올 주교님을 모시고 상해를 떠나 한달 가까이 표류하다가 차귀도에 표착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육로가 막히자 바다로 눈을 돌려 누구도 가지 않던 길을 찾아 나섰던 조선의 첫번째 사제, 스물 네 살의 김대건 안드레아를 새롭게 만난 것도 차귀도에서였다.


https://brunch.co.kr/@frhpaul/216


오늘 조선의 첫번째 사제인 그를 이어 4547번째 사제가 된 나는 사제관 신부님들과 영화 <탄생>을 보았다.


영화를 영화로 보았다고 하기에는 주인공과 나의 간극이 너무 가까웠던 탓일까, 엥베르 주교님께서 더 이상 신자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수하면서 도망가라고 보낸 모방, 샤스탕 신부들마저 자수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정하상 바오로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에서 눈물이 터졌다.


'그대들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엥베르 주교님의 모습은 참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예수님이셨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를 만나 수줍고 고마웠다.


알지도 못하는 사제가 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순간에 바로 가겠다고, 가고 싶다고 말했던 소년은 내 안에 담긴 사제 성소를 돌아보게 했다. 


넒은 세상을 보고 배우면서도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조국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아버지, 가족, 지인들을 죽여도 조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외세로부터 지켜려 했던 마음이 내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는 평등한 세상, 지상에서 천국을 살 수 있도록 천주님이 우리 가슴에 와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자리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과 김대건이 뿌린 씨앗 덕분이다.


신자들을 위해 울었던 조선의 첫 사제, 그를 바라보며 존경하며 누구보다 아꼈기에 울었던 수많은 사람들, 오늘 나도 김대건의 눈물을 흘린다.


"신부님도 우십니까?"


그를 취조하던 관리가 의연하게 있다가 갑자기 우는 김대건에게 묻자 그는 말한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더 이상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나도 마지막에는 더 이상 지킬 사람이 없는, 끝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제이고 싶다. 


영화 <탄생>의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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