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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길

캄보디아 수상마을에서

안나스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쓰라쓰롱이라는 마을이 있다. 푸삿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도 가장 가난한 이유는 마을 옆이 쓰레기 매립장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곳에서 재활용품을 모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가난하고 더러운 곳, 하지만 그곳에도 아이들은 뛰놀고 나무는 자란다. 그래서 우리는 오렌지 나무와 한국에서 모아 온 옷가지를 들고 길을 나섰다.


가져간 옷을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다가 지켜보고 있던 아이 엄마에게 화사한 드레스를 챙겨주니 밝게 웃는다. 신발도 하나 챙겨드리고 옷가지들을 골라 드리니 '행복합니다'하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필요없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된다니 낯선 느낌이다.


척박한 먼지 투성이 땅을 파고 오렌지 나무를 심고 물을 준다. 학생들 모두 기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 나무가 잘 자라 많은 오렌지를 맺기를 바라는 그 마음, 그래서 나도 집주인에게 언젠가 와서 이 나무가 자라 열매 맺은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렌지 나무를 심고 나서


우리는 오렌지 나무만 심은 것이 아니다. 캄보디아 어린이의 미래를 심었다.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의 미래도 같이 심었다.


대학 4학년이 주류를 이루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해외봉사단이 캄보디아에서의 체험을 통해 그들 인생에서 남들처럼,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오후 늦바람에 갓 심은 오렌지 나무가 흔들린다.




캄보디아로 오기 전에 <아바타 2: 물의 길>을 보았다. 물이란 인간을 살게 하고 이어주는 것, 가족이란 함께 하고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새기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깜롱루엉 수상마을을 방문하면서 아바타의 물의 길이 계속 떠올랐다.


캄보디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같은 톤레사프 호수에는 그곳에 집을 짓고 수상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아바타2의 멧카이나 부족처럼 바다에 정착하여 사는 나비족이다.


깜롱루엉 수상마을 사람들은 배를 집으로 삼고 바다와 같은 호수에서 살아가는데 그들 대부분은 베트남에서 도망쳐 온 난민이자 이방인이다. 조국을 잃고 아무도 살지 않는 호수로 와서 정착한 안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법적으로 등록되지 않아 이방인으로 차별받고 아이들도 육지 학교를 다닐 수 없다.


무엇보다 많은 베트남 난민들이 가톨릭 신자인 까닭에 수상마을에는 성당이 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성당, 그 옆에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있고 또 그 옆에는 운동장이 있다.


땅을 밟지 못하는 아이들은 가로 10미터 세로 40미터의 성당 마당에 와서 뛰어논다. 그들에게는 세상 어느 곳보다 크고 넓은 곳일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1시간동안 페이스 페인팅, 태권도, 줄넘기, 비눗방울을 만들면서 온 몸으로 함께 놀았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잘 짜여진 어떤 프로그램보다 함께 뛰어노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간식을 주고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포옹을 한다. 그리고 또 헤어져야 한다. 작은 나룻배를 가득 채운 30-40명의 아이들을 떠나 보내며 만감이 교차한다. 이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매일의 시련, 불안한 미래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가족이 있다. 이들을 지키는 아버지가 있고 이들을 먹이는 어머니, 그리고 같이 뛰어 놀 형제자매가 있을 것이다. 가족의 자리를 나와 우리 학생들이 채울 수는 없다. 비록 배 위에서 살아가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갈 것을 믿기에 웃는 얼굴로 오래도록 손을 흔든다.


어쩌면 화려한 도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외로운 삶을 사는 우리보다 그들이 서로에게 더 끈끈하고 친근하게 어울려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니 나의 섯부른 판단이 미안했다.


바다든 도시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며, 사람은 누구나 가족을 필요로 한다.


캄롱루엉 수상마을 성당 운동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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