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하루종일 비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사제관에서 1박 2일 김치 대장정이 있었다. 성전건축기금 마련 바자회에서 팔 김치를 담그기 위해 스무명 가까이 되는 본당 형제 자매님들이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김치를 절이고 헹구고 양념을 만들고 속을 넣어 버무렸다.
어릴적 어머니를 도와 김장을 한 뒤 몇 십년만에 김치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한결같이 쉽지 않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함을 보았다.
많은 얼굴들이 웃고 떠들고 온갖 이야기를 한다. 헛기침, 아이고 아픈 소리는 추임새고 잠시 비추는 햇살은 덤이고 부는 바람은 밉다.
사람을 계속 살게 하고 심지어 자기 것도 아닌데 하게 만드는 이것은 무얼까?
책임일까, 의무일까, 사랑일까?
사랑은 늘 도망간다. 도망가는 사랑을 탓하며 뒤돌아서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 사랑을 쫓아가는 사람도 있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도 그 사랑을 바라보며 계속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왜 이리 힘든지, 왜 이리 아린지 몰라도 그 사랑을 가게 두지 않고 붙잡으려는 사람이 있다.
사랑은 쉽지 않다. 내 것을 내어주고 내 것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대하게 하는 사랑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사랑은 늘 도망가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난 그것을 은총이라고 믿는다. 조금 따라가면 더 도망가는 사랑, 포기하고 싶지만 그래도 놓치 못하는 사랑은 신에게서 온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은 밥이나 돈이 주지 못하는 배부름을 준다. 이상하게도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벼워지는, 아이고 소리가 노래 소리가 되는 그런 아이러니를 체험하게 한다.
조금 쉬어가면 좋을텐데... 그래도 자기만의 페이스로 멋진 레이스를 펼치고 있으니 나도 감히 더 사랑하고 싶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