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삶이 고되다. 타지에서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평생을 성찰하며 맑고 깨끗하게 살고자 했던 젊은이. 그의 마음결이, 생각이 시로 남아 고스란히 전해진다.
윤동주 문학관 전시품 자기를 돌아보며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라던 젊은 시인 윤동주. 그의 삶이 참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시대가 한 젊은이를 죽였다. 소신껏 양심껏 살았기에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욱 우리나라 식민지 역사가 아프다.
연세대학교 시인이 다녔던 학교를 둘러보았다. 시인은 이곳에서 창창한 미래를 꿈꿨을 텐데 그에게 펼쳐진 미래는 수명이 짧았다. 연세대 언더우드관을 보며 캠퍼스를 누볐을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연세대 윤동주 기념관이 매우 알찼다. 시인의 자필 원고와 삶의 흔적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짧고 굵게 살았던 윤동주. 그가 얼마나 문학을 사랑했는지를 잘 보여주었고 평범한 유학생이었을 모습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는 단지,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평범한 유학생에서 범죄자가 돼 버렸다.
27살. 젊디 젊은 나이. 오히려 너무 어린 청년의 삶이 사그라들었다.
무더운 여름날, 도서부 아이들 여덟 명과 윤동주의 자취를 밟았다. 훌륭한 우리 애들은 관람 에티켓도 약속 시간도 잘 지켜 주었다. 내 교사 인생에서 이렇게 수월했던 외부 활동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종로의 윤동주문학관에서 모여서 관람하고 함께 신촌 연세대로 이동했다. 학식을 맛있게 먹고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음료 한 잔을 한 후 윤동주기념관을 관람하였다.
도서부 리더인 D군은 미리 지도를 통해 동선을 익혀서 왔다. 어느 방향으로 가서 몇 번을 타고 어디서 내려서 어떻게 가는지 등등.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맘 놓고 D군을 따라다녔다. 길치인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스마트폰 길 찾기를 연 채 긴장하고 있었는데 D군이 다 해 주니 너무도 다행이었다. 이 친구는 방향감각과 공간 지각능력이 뛰어나 보였다. 그리고 너무도 잘 따라준 우리 부원들. 무더위에도 그저 웃으며 진심으로 견학을 해 준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너무도 기특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가 있니. 멋지다.
방학 마지막 날, 우리는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다.
2024. 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