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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Aug 24. 2024

순리

그냥 쓸 뿐이다.

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재능? 이런 건 모르겠다. 더 이상 내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쓸 뿐이다.


남편과 산책을 했다. 남편이 읽는 책에서 브런치를 언급했단다. 이제는 작가 되기가 싶다고.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라고 했단다. 부글부글 씁쓸한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명함을 내밀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분석을 들으니 그냥 기분이 상했다. 작가 되기는 싶고 독자는 없다. 칫. 그런 게 어딨어.


남편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말고 남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란다. 나는 쓰고 싶은 글도 잘 못 쓰는데 어떻게 남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란 말인가.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툴툴거리며 공원을 걷는데 귀뚜라미가 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매미가 울었는데 갑자기 귀뚜라미로 바뀌었다. 이렇게 무더워도 가을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순리. 그래, 세상에는 순리가 있다. 때가 되면 귀뚜라미가 울 듯이  나도 쓰다 보면 작가가 되거나 말거나겠지. 억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독한 무더위도 귀뚜라미의 출현을 막지 못했다. 그래도 무더위는 속상하지 않을 것이다. 가을을 잠식하려고 맹위를 떨쳤던 것은 아닐 테니까.


무언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막연하게 작가를 꿈 꾸지만 그냥 글을 쓰는 그 자체가 좋다. 그러다 보면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작가 되기는 싶다는 그 표현이 서운했다. 나는 작가 되기가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밤공기를 마시며 괜히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나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내 인생의 순리는 어떤 것일까. 상념에 잠겼다.


                                                                2024.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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