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어렸을 적에는 빗소리를 들으며 과자를 먹으며 만화책이나 소설,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매우 좋아했다. 그게 퍽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밀린 평가서를 쓰며 빗소리를 듣는데 감정이 복받친다. 나는 이곳에서 교사로 서 있어도 되는 것이가. 입에 담을 수 없는 혐의를 갖고 다시 새학기를 맞이해도 되는 것인가. 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이 얽히고 눈물이 흐르며 기분이 가라앉는다.
고요히 내게 집중할 수 없음이 감사하면서도 힘들다.
고요히 내게 온전히 집중한다면 나는 아마 길고 긴 마음의 땅굴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아침을 준비하며 생각해 봤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삶을. 의외로 자유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음을 깨닫고 혼자가 되었을 때, 친정 근처의 투 룸 오피스텔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아마 밑반찬 따위는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하루 한 끼니만 먹던가 하겠지. 그토록 바라던 날씬함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흘렸다.
결혼이 문제였나. 지역이 문제였나. 직장이 문제였나.
크리스천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가. 학창 시절 누린 자유와 행복이 뭐가 그렇게 잘못이기에, 이렇게까지 나를 엉망으로 만든단 말인가. 한 번도 여유가 없었겠냐만은 나의 어른 시절은 언제나 퍽퍽하고 긴장되고 불편했다. 그 퍽퍽하고 불편한 긴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투정일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징징댄단 말인가. 다그치고 혼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투덜거린단 말인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차단한 채 살고 있다. 그렇게 나의 현재 상황을 읍소했어도 내게 괜찮냐,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 먼저 물어봐 주는 사람은 친한 언니 한 명뿐이었다. 언니의 문자를 보고 펑펑 울었다. 안부를 물어봐 주는 사람. 나는 그 한 명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 한 명이 있음에 감사했다. 나는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있는가. 차마 안부를 묻지 못할 때가 있다. 나의 우울함이 그들에게 전이될까 이제는 두렵기도 하다.
삶이 요즘처럼 어렵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어퍼컷이 지금처럼 아팠던 적이 없다. 배신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교사인 줄 알았고 나의 학생인 줄 알았다. 화내도 될 정도의 사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모든 눈망울이 무섭다. 화내도 될 정도의 사이는 없다.
무덥고 변덕스러운 여름을 온몸과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다. 고요히 정리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반드시 오고야 말 듯이, 이 긴 터널을 나는 반드시 건널 것이다. 노년의 어느 날, 나의 삶이 찬란하게 다이나믹했다고 말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의 행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