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심리의 과정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고받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친구가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 커플도 몇 차례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내가 헤어질 것을 권하자 친구는 말했다.
"영아, 6년 연애를 했다는 건 가족이 되었다는 거야."
아, 그렇구나. 시간이 쌓는 무게감은 그러한 거구나. 나는 그때 친구의 말에서 연인이 쌓는 시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깨달았다.
작품 속 이수와 도화도 그렇게 오래된 연인이다. 그러나 도화는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 도화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결국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 소설 뒷부분에서 알고 안도했다. 도화는 아무렇지도 않으면 안 됐다. 그들이 함께 이뤄 온 시간이 얼마인데. 아무렇지도 않으면 암, 안 되고 말고.
도화가 이별을 선택하는 데 특별한 뭔가가 작용한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이수의 발이 너무도 사랑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이다. 도화는 그것을 내게서 뭔가가 빠져나갔다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 무뎌진 감정 때문에 이별을 선택했다고. 이수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수는 도화와의 이별을 두려워했다. 현재의 건너편 도화가 없는 세상을 예측하기 힘들어했다. 도화는 그 건너편을 보지 못했다가 이별 후 마주했다. 같은 곳인데 이수가 없는 과거의 건너편 세계. 머리가 멍해지고 블랙아웃 상태를 경험한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는 꽤나 힘들었다. 내 세상의 전부였던 그 사람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내 인생에서 쑥 빠져 버렸다. 힘들어 죽겠는데 그 힘듦을 위로받을 뭔가가 없었다. 그 사람이 힘들다는 소식을 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도 힘들어했다는 것을 아주아주 나중에야 들었다. 그것이 내겐 큰 위로가 됐다. 내 사랑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책을 읽는 내내 도화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도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별을 준비해 왔다. 이별을 통보할 적절한 때를 잡지 못했을 뿐 마음은 언제나 이별 상태였다. 이수는 달랐다. 이수는 도화에게 늘 잘 보이고 싶어 했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도 도화를 신경 썼다. 무뎌진 것은 맞지만 사랑의 크기가 줄어들어 보이지 않았다. 다만, 특별함이 일상이 되었을 뿐. 내가 도화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이 사랑하여 연인이 되었듯이 이별도 둘이 해야 한다. 한쪽 마음이 식어버린 일방적인 통보는 글쎄, 무언가 불편했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어떻게 이별을 둘이 할 수 있는가?" 나도 방법은 모른다. 내가 겪어 본 이별을 둘이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상대가 준비될 수 있도록은 해 줘야 할 것이다. 하루아침에 쏙 빠진 첫사랑을 통해서 내가 내린 나의 합리화가 그러하다.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이별이었다. 그 사람은 내 인생에 불현듯 나타나더니 불현듯 사라졌다. 사귀는 것 자체를 망설일 때 그는 일방적으로 내 안에 들어왔다.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다가 감동으로 부수고 쑥 들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가 버렸다. 물론 그에게는 갑자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사랑에 눈이 멀어 놓치고 있던 그의 시그널을 하나하나 깨달았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내게 이별 통보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이수도 그랬을 것이다. 도화가 주는 시그널도 몰랐을 것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이수의 마음과 처지가 너무 공감돼서 도화를 좋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순 도화의 마음도 이해됐다. 중요한 감정이 빠져나갔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다.
나도 남편에게 큰소리쳤던 적이 있다. 돈이 없어서 단칸방에서는 같이 살 수 있어도, 사랑이 없어지면 살 수 없다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만큼 함께하기 위해 전제 돼야 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 무엇도 사랑보다 힘이 셀 수는 없다.
만약 사랑이 빠져나갔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들은 이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과연 빠져나간 것이 사랑일까? 사랑으로 포장된 단순 설렘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마지막 장면에서 도화가 마주한 건너편의 실체는 설렘이 빠진 여전한 이수에 관한 사랑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함께 쌓아 올리는 시간은 실로 무거운 것이지만 그 무게가 설렘을 누른다. 연인과 부부는 항상 설렐 수 없다. 일상의 많은 일들이 그들을 소원하게도 하고, 서로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게도 한다. 당연하게 있는 사람이 될수록 그 당연함이 사랑을 가리기도 한다. 남편과도 종종, 아니 자주 싸운다. 그 싸움의 원인은 편해짐에서 오는 선 넘음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히 말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음이 아니라고. 잠시 선을 넘었을 뿐이라고.
김애란은 도화와 이수의 이별을 <건너편>이라고 표현했다. 참 멋있는 표현이다. 현실의 감정 건너편에는 진짜 사랑이 있다는 것 아닐까. 헤어지고 나서야 깨닫는 그 사랑을 이렇게 현실적이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나는 도화의 블랙아웃 상태를 그렇게 이해했다. 지혜로운 자는 눈에 드러나는 감정의 건너편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작가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